일본인 생김새에 언어까지 완벽하니 누가 의심하지 않았을까. 모두의 관심사는 그의 국적이었다. 이정현은 다른 나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한국인이다.
이병헌(유진 초이)과 대립에서도 밀리지 않는 팽팽한 긴장감을 이정현이 보여줬다. 운동선수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 늦게 시작했지만 다른 배우들 이상으로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극중 교수형을 당하고 끝났지만 실제 그 장면이 나오지 않아 후반부에 또 등장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많다.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되지만 지난 6일 만난 이정현은 의외였다. 드라마에서와 다른 너무 차분한 목소리에 볼수록 섬뜩함보다는 귀여움으로 변해가는 얼굴까지. 대화를 나누다보면 '건강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영화 '박열' 촬영할 때 이준익 감독님도 계속 그러셨습니다. '너는 아니야. 볼수록 너무 귀여워'라고. 저 무서운 사람 아닙니다."
-이응복 감독이 뭐라던가요. "너무 미운 역할을 시켜 미안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말 조차도 감사했어요."
-김은숙 작가는. "작가님은 대본 마무리 작업으로 바뻐 만나본 적이 없어요. 종방연에서 뵙지 않을까 싶은데 꼭 뵙고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이병헌과 붙는 장면이 많았어요. "세세한 부분까지 많이 신경 써줬어요. 촬영할때 본인이 생각하는걸 조심히 알려주고요. 내가 대사를 하는데 있어 몰입 할 수 있게 카메라 뒤에서 대사를 해줘요. 쉬어도 되는데 다 도와줬죠. 한 번은 실수 한 적이 있는데 너그럽게 넘어가줬어요. 조언도 해줬고 배우로서 7개월간 가장 행복했어요."
-유도선수 출신이에요. "중학교때 시작해 13년 정도 했어요. 엄청 잘 한 건 아니었고 대학교를 마치는 게 제 목표였죠. 어릴 적 고향인 김제에서 실력이 제일 좋은 유도선수가 우리 학교 선생님이었어요. 친구들도 유도를 많이 배웠고요."
-중간에 유도 생활을 포기한 이유가 있나요. "부상을 많이 당했어요. 또 국가대표의 실력이 아니라면 일찌감치 그만두는게 맞다고 판단했어요. 유도도 해볼만큼 해봤고 큰 미련은 없고 후회도 없다어요."
-원래 어릴 적 꿈이 배우였나요. "어릴 땐 누구나 생각하지 않나요.(웃음) 유도를 하다가 일본으로 교환확생을 갔는데 그때 본 드라마가 '브레인'이었어요. 한국 영화들도 많이 보며 위안을 삼았고 마음에 와 닿았죠. 향수병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라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액션 연기는 수월하겠어요. "아무래도 운동하던게 몸에 익어 있어 조금 편하긴해요. 체력적으로도 남들보다 뒤쳐지진 않고요."
-헤어스타일은 원래 짧은가요. "머리칼을 기르다가 '미스터 션샤인' 촬영 전 잘랐어요. 애매한 길이였는데 대본을 받아봤을때 강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제작진이 시킨건 아니지만 이렇게 해도 되겠냐 묻고 상의해 내린 결정이에요. 혹시 못 알아볼까봐 '해피투게더' 녹화를 앞두고도 애매한 길이라 다시 잘랐어요.(웃음)"
-연기는 따로 배웠나요. "학원을 다니며 익혔고 동료들끼리 스터디도 했어요. 시행착오를 겪으며 단편영화에 출연했고 현장에서 배운게 많아요."
-운동선수에 대한 선입견도 있나요. "선입견보다는 어쨌든 첫 질문은 '왜 운동하다 배우하냐'는 말을 들어요. 운동이 힘들어서 도망친 게 아니고 배우가 하고 싶어 그런거니 거리낌없이 대답해요."
-사람들이 첫인상만 보고 무서워하지 않나요. "무섭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몇 마디 대화를 나누면 귀엽다고 해요.(웃음) 드라마 미팅을 가도 '생각보다 귀엽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박열'때 이준익 감독님도 '너무 아냐. 보다보면 귀여워'라는 말을 많이 했고요."
-사실 광고로 먼저 얼굴을 알렸어요. "2016년에만 10편 정도를 찍었고 지금까지 15편 가량 진행했어요. 배달앱 광고가 최근에 나와 많이 기억하고 재미있어 해줘요."
-부모님의 반응이 궁금해요. "지금껏 아무 말씀 없으셨는데 최근에 어머니가 '잘했다'는 얘길 하셨어요. 드라마·영화·광고로 6년 활동하면서 한 번도 못 들어본 얘기에요."
-부모님이 처음엔 반대하지 않았나요. "'이래라저래라'가 아닌 '네 멋대로 하라'고 내버려뒀어요. 그래서 나도 부모님한테 손을 안 벌리려고 악착같이 일했어요. 올해 설에 내려갔는데 '2년 하고 내려올 줄 알았는데 잘 버티네'라는 말을 듣고 더 기를 썼어요."
-금전적 어려움도 컸을텐데. "운동을 했다보니 퍼스널트레이너도 했고 마사회에서 경비도 했어요. 그런데 돈 벌겠다고 다른 일을 하니 정작 연기하는데 집중을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관련된 일을 하려고 연출부나 아트팀에서도 일했어요. 이것저것 다 해보고 최근에는 무대 세팅 작업도 했고요. 연기하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연기를 해보니 스태프들이 하는 일에 대해 너무 감사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