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추석, 극장가의 트렌드는 역사의 재해석이다. 4편의 화제작 중 '안시성(김광식 감독)' '명당(박희곤 감독)' '물괴(허종호 감독)' 3편이 고구려 혹은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세 영화 모두 고증과 허구 사이에서 흥미로운 줄타기를 할 예정이다.
오는 9월 19일 개봉하는 '안시성'은 1400여 년 전 고구려 시대에 있었던 88일간의 안시성싸움을 스크린에 담는다. 지난 1월 크랭크인 해 8월까지 7개월간 촬영하며 겨울·봄·여름 세 계절을 쏟아부었다. 다른 영화에 비해 2배가량의 시간이 소요된 셈이다. 게다가 순 제작비만 180억원을 들였다.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 최초로 고구려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영화 팬뿐 아니라 '역사 마니아'들의 기대도 받고 있다. 대형 투자배급사인 NEW는 '안시성'을 올해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으며 스케일과 비주얼로 관객의 마음을 잡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고증에 대한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극 중 양만춘(조인성)의 갑옷 등이 일부 네티즌에게 지적되기도 했다. 기대가 큰 대형 사극인 만큼 개봉 전부터 꼼꼼한 기준으로 평가받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한 '안시성' 측의 입장은 "고증과 영화적 상상력을 모두 담으려 했다"는 것. '안시성'의 한 관계자는 "역사에 남아 있는 안시성과 양만춘에 관한 단 3줄뿐인 기록으로 시작한 영화다. 김광식 감독은 적지만 남아 있는 사료를 통해 고증이 가능한 부분은 철저하게 고증했고, 그 외의 이야기는 영화적 상상력을 더했다. 특히 '안시성'의 포문을 여는 주필산 전투와 2번의 공성전, 영화의 하이라이트인 토산 전투 및 주요 캐릭터들을 살리기 위해 100여 권의 서적을 참고하는 등 잊힌 승리의 역사를 그리기 위해 다방면에서 힘썼다"고 밝혔다.
'안시성'과 같은 날에 개봉을 확정한 '명당'은 땅의 기운을 점쳐 인간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천재 지관 박재상(조승우)과 왕이 될 수 있는 천하 명당을 차지하려는 이들의 대립과 욕망을 그린 영화다. '관상'과 '궁합'을 만든 제작사 주피터필름이 오래전부터 기획해 온 역학 3부작의 마지막 주자다. 조승우, 지성 등 관객의 호감을 사는 배우들이 여럿 포진했다. 영화배급사 빅5로 떠오른 메가박스 플러스엠이 자신 있게 내놓는 작품이다.
극 중 조승우가 천재 지관 박재상을, 지성이 몰락한 왕족 흥선을 맡는다. 모든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박재상은 실존 인물이 아니다. 영화는 허구와 역사를 한데 섞어 이야기를 재창조한다. '관상'과 '궁합'을 통해 이미 역사를 재해석하는 실력을 보여 준 바 있는 주피터필름의 작품이라 신뢰를 얻고 있다. 박희곤 감독은 "'명당' 프로젝트에 합류한 지 2년 정도 됐는데, 주피터필름은 이미 12년 전부터 명당 소재의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자료를 조사하고 역사적 고증도 철저히 거쳤다"고 자신했다.
두 영화보다 앞선 9월 13일에 선보이는 '물괴'는 중종 22년, 역병을 품은 괴이한 짐승 물괴가 나타나 공포에 휩싸인 조선 그리고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건 이들의 사투를 그린다.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한 최초의 크리처 영화다. '조선명탐정' 시리즈에서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코믹 연기를 보여 준 김명민이 내금위장 윤겸을 맡아 같은 사극, 다른 카리스마를 보여 준다.
조선 시대에 나타난 물괴의 이야기는 자칫 허무맹랑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선왕조실록에서 시작된 실화다. 중종 6년 5월 9일 '밤에 개 같은 짐승이 문소전 뒤에서 나와 묘전으로 향하는 것'이 목격됐고, 선조 31년 1월 3일 함경 감사 송언신이 '비상한 물괴'를 봤다고 보고했다. 여러 차례에 걸쳐 '물괴'라는 단어가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돼 있는 것이다. 영화는 실존했던 의문의 생명체 이야기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했다. 제작사 태원엔터테인먼트 정태원 대표는 "조선왕조실록에 나온 형상대로 만들었더니 말 같기도 하고 개 같기도 했다. 고민 끝에 전설의 동물인 해태의 형상에서 발전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온 것이 지금 물괴의 형상이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