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전만 해도 대한민국에서, 아니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했던 곳이 있다. 바로 강원도 평창이다. 겨울올림픽이 열려서다. 게다가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서 평창올림픽은 평화올림픽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겨울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모두 끝난 지 5개월가량 지난 지금, 평창은 올림픽 전으로 되돌아갔다. 비록 올림픽의 열기는 식었지만 오는 9월 다시 평창에서 흥겨운 축제 한 마당이 펼쳐진다. 평창효석문화제가 그것이다. 올림픽이 끝난 평창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올림픽의 흔적은 하나둘 사라지고
지난 23일 휘닉스평창. 평창올림픽 스노보드 9개 종목이 열렸던 곳이다. 특히 '배추 보이'이상호가 모두의 예상을 깨고 대한민국 설상 종목에서 최초로 스노보드 대회전에서 은메달을 딴 곳이다. 결승선을 통과한 뒤 눈밭에 누워 감격하던 이상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올겨울 시즌을 준비해야 하는 휘닉스평창은 중장비를 동원해서 슬로프를 올림픽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물론 예정된 일이지만 은메달의 감격이 사라진다는 생각에 섭섭했다.
차를 몰고 20분쯤 떨어진 알펜시아 리조트로 향했다. 알펜시아 리조트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윤성빈이 금메달을 땄던 스켈레톤과 오픈 4인승 종목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던 봅슬레이가 열렸던 슬라이딩센터. 멀리서 보니 경기장은 그대로인 듯했다. 하지만 입구에 '공사 차량 외 출입 금지'라고 쓰인 팻말이 붙어 있어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아직도 어떻게 사용할지 결정하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가끔 이용하는 시설이 있긴 하다. 바로 스키점프대다. 대회가 끝났지만 여전히 예전처럼 일반인들을 상대로 점프대를 운영하고 있다. 관람객들은 모노레일을 타고 스키점프대에 올라 올림픽 선수들처럼 멋지게 활강하는 장면을 연출하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올림픽 때 보지 못했던 시설물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알펜시아 리조트 광장에 세워진 기념탑이다. '평창 세계에 빛나는 별이 되다'라고 적힌 탑이다. 지난 5월 28일 준공했는데 마치 스키 슬로프를 질주해서 날아오르는 듯한 형상이다. 평창의 비상을 알리는 '테이크 오프(TAKE OFF)'라는 테마로 평창의 역동성과 미래를 상징하는 탑이라고 한다.
#가을맞이 한창인 고랭지 밭 육백마지기
이상호의 별명은 '배추 보이'다.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겨울이면 눈이 쌓인 고랭지 배추밭에 아버지가 만든 눈썰매장에서 스노보드를 연습해서 '배추 보이'로 불리게 됐다. 평균 해발고도 700m인 평창은 고랭지 채소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청옥산에 있는 육백마지기가 으뜸이다.
평창과 정선에 걸친 청옥산(1256m)은 예부터 청옥이라는 산나물이 많이 나서 청옥산으로 불린다. 청옥산 정상 부근인 해발 1200m에 육백마지기가 있다. 이런 고산지대에 볍씨 육백 말을 뿌릴 수 있는 평지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물론 평야 같은 곳이 아니고 구릉과 비탈로 이루어진 곳이다. 심심산골이지만 나무 한 그루 없는 밭이 있다니 신기했다.
사연은 이렇다. 약 50년 전에 화전민들이 이 거친 땅을 개간하고 경작했다. 면적을 조금씩 넓혀 가 지금 같은 육백마지기, 약 60만㎡나 되는 넓은 밭을 만들었다. 여기에 배추나 무를 심어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덜컹거리는 비포장도로를 10여 분쯤 올라가니 서서히 밭들이 눈에 들어왔다. 8월 하순이었지만 배추 밭보다 무 밭이 훨씬 많았다. 올해는 날씨가 너무 더워서 배추를 포기하고 무를 많이 심었다고 했다. 이달 말부터 김장용 고랭지 배추를 심는다고 했다. 비닐하우스 곳곳에 배추 모종이 빼곡히 자라고 있었다.
한쪽에 야생화 공원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주차장과 공원, 산책로, 작은 교회, 하트 포토존이 보였다. 이 넓은 지역이 겨울이면 온통 눈으로 덮인다. 물론 이상호가 여기서는 훈련하지 않았지만 이런 고랭지 배추밭에 쌓인 눈 위에서 스노보드를 타던 모습을 상상하니 웃음이 나왔다. 그만큼 열악한 환경에서 따낸 값진 은메달이었다는 생각에 이상호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메밀꽃을 테마로 한 '효석달빛언덕'
평창은 메밀의 고장이다. 이곳에서 태어난 이효석 선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은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라고 표현한 곳이 바로 봉평면이다.
봉평면에 지난 21일 문을 연 문학 테마 관광지 '효석달빛언덕'이 있다. 이효석 선생의 생애와 근대문학의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문학 테마 관광지다. 봉평을 모티브로 책 박물관, 근대문학체험관, 이효석문학체험관, 나귀광장 & 수공간, 효석광장 등으로 이뤄졌다. 근대문학체험관은 1920~1930년대 이효석 작가가 활동했던 근대의 시간과 공간, 문학을 이야기로 풀어내 한국의 근대문학과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체험 공간이다.
달빛언덕 인근에 이효석 생가와 문학관 등이 있다. 거기에 널따란 메밀밭이 주변에 펼쳐져 있다. 이곳에서 오는 9월 1~9일 메밀꽃을 주제로 한 '평창효석문화제'가 열린다.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특별한 추억 여행을 즐길 수 있는 축제인데 올해는 '연인, 사랑 그리고 추억'을 주제로 열린다. 3년 뒤 개봉되는 사랑의 돌탑캡슐, 연의 끈, 사랑 이야기를 메모하는 터널 등 '사랑과 인연'을 간직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마련했다.
나귀를 타고 메밀꽃 밭을 걸어 보거나 메밀꽃 열차를 타고 메밀꽃을 즐기는 이색적인 체험도 준비돼 있다. 이효석문학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문학마당에서 문학 산책, 거리백일장, 독서토론회 등 다양한 문학 행사를 경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