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밍, 핫가이의 시대…김우리
우리는 아직 자신을 가꾸는 남성에게 인색하다. 여성이 아름답게 화장하거나 매력적인 옷차림을 하면 "예쁘다"고 칭찬하지만, 남자가 같은 행동을 하면 입을 삐죽인다. "야, 쟤 왜 저러냐" 또는 "게이냐"라면서 세상이 변했다곤 하지만 아직 우리 사회는 꾸미는 남자를 향한 편견의 시선을 갖고 있다. 김우리. 어쩌면 그의 인생은 이런 세상의 눈 흘김을 온전히 받아 냈고, 마침내 성공한 몇 안 되는 남성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스타일 디렉터 김우리는 김희선, 이효리, 세븐, 권상우 등 당대 최고 별들의 스타일을 책임진 사람이다. 럭셔리한 해외 로케이션 화보 촬영, 소수만 영위하는 근사한 명품 브랜드가 늘 그의 곁에 있었다.
그런 김우리가 최근 아름다워지길 원하는 대중의 길잡이로 변신했다. 자신이 직접 개발에 참여한 화장품을 들고 홈쇼핑에 나서 '완판(매진)'을 해낸다. 특유의 소탈하고 어딘지 아줌마스러운, 하지만 압도적인 남성미를 뽐내면 그 어떤 화장품이라도 대박을 칠 수밖에 없다.
어디 그뿐이랴. 마흔여섯 살, 딸 둘을 둔 가장이기도 한 김우리는 KBS 2TV에서 인기를 끈 '엄마아빠는 외계인'에 가족과 함께 등장하면서 주목받았다. 대중은 26년을 함께 산 아내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또 명문대에 다니는 큰딸과 달리 '홈스쿨링'을 하며 '아빠 바라기'로 사는 둘째 딸을 둔 그의 삶에서 인간적인 면을 발견했다.
한때 그를 향해 "재수 없다"고 욕하던 남성들은 아내에게 말한다. "김우리가 파는 샴푸 있잖아, 그것 한 번 사 봐"라고. 먼 나라 사람 같았던 김우리가 원래는 우리와 다름없는 사람이고, 게다가 멋있으니 따라 하고 싶은 욕망이 생겼을까.
일간스포츠가 '그루밍(스스로를 가꾸는 남성)' 하는 '핫가이'들의 세상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진짜 자신을 보여 주기 위해 가꾸는 남자 김우리를 만났다.
- 요즘 바쁠 것 같다. TV만 켜면 김우리가 나온다.
"내 인생의 황금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황금기라고 해서 어떤 금전적인 돈이나 그런 걸 뜻하는 것이 아니다. 해가 질 때 번지는 붉고 아름다운 노을 같은 시기다. 그전에는 어떤 일을 할 때 뾰족한 것들에 잘 부딪히고, 껄끄러운 돌기도 많았다. 요즘에는 둥글게 잘 흘러간다. 무슨 일이 잘 풀리지 않아도 둥글게 원만하게 나아가니 마음도 편안하다."
- 김우리의 직업은 어떻게 정의를 내려야 할까. 스타일 디렉터?
"'라이프 가드너, 라이프 스타일 디렉터'라고 해야 할까.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보다 아름답고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드는 공간에서 활동하는 사람이 '나'다. 홈쇼핑에서 뷰티 상품을 출시해 소개하고, 멋진 스타일로 여자는 물론이고 남자들도 내 스타일을 따라 하게끔 한다. 그래서 나는 삶을 꾸미는 직업이라는 뜻에서 라이프 가드너나 라이프 스타일 디렉터라고 부르고 싶다. 32년 동안 한 우물만 팠더니 이런 직업을 갖게 됐다."
- 남자가 '꾸민다'는 점에서 '김우리'라는 사람에 대한 편견도 있었다.
"색안경을 낀 분들이 계신다. 스타일 디렉터로 일할 때 내게 대부분 스타들이 먼저 '함께 일하자'는 연락이 왔다. 겉이 화려해 보이는 직업이다. 왠지 밤에만 놀 것 같은 생김새로 본다. 일부는 그런 나를 보면서 '왕재수'라고 표현하더라.(웃음)"
- 남자들이 되레 김우리가 파는 제품을 산다.
"최근 출연한 '엄마아빠는 외계인'이 나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데 도움을 준 것 같다. 배우 박시연이 내게 "오빠가 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수혜자다. 진짜 김우리의 모습을 보여 줬고, 그런 것들이 매력적으로 다가갔다"고 하더라. 항상 연예인과 함께 명품 론칭쇼에 다니며 샴페인을 터뜨릴 것만 같지만 나는 사실 정말 평범한 가장이다. 대학에 다니는 딸, '홈스쿨링'을 하는 둘째 딸을 뒀다. 스무 살 때 만나서 결혼한 뒤 20년 동안 함께 산 아내가 있다. 나는 집에 가면 밖에 나갈 생각을 잘 안 한다. 집에 있으면 온갖 일들이 다 벌어져서 강을 건너고 산을 오르는 느낌이다.(웃음) 가족들이 나의 성장과 변화 그리고 지금의 모습에 많은 도움을 준다."
- TV에 나온 딸들이 예쁘더라. 연예인을 할 생각이 있나.
"전혀 (없다). 연예인을 시킬 마음이 없다. 그런 수혜를 보려고 출연한 것도 아니고. 그냥 '단짠단짠'한 우리 집 사는 모습을 보여 드린 것뿐이다. '넘사벽'이 아니라, 평범한 가족의 모습."
- '그루밍'하는 남자들이 늘었다.
"글로벌 스타들의 스타일이 널리 알려지면서 이제 우리나라의 10~30대 남자들도 비비크림을 바르는 시대가 왔다. 하지만 아직 멀었다. 남자가 꾸민다는 것은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의 결과물이다. 다시 말해서 남성성을 드러내는 것이 그루밍인 것이다. 우리 사회는 여자가 꾸미고 아름다워지는 것은 허용하지만 남자에겐 유독 반기를 든다. 과거 대기업의 사외이사를 한 적이 있는데 회사 안 분위기는 더했다. 남자들이 자기 스타일대로 가꾸고 갖춰 입으면 '너 게이니'라는 소리부터 나온다.(웃음) 남자가 멋지게 꾸미면 '너 바람 났니'라고 묻는 집도 있다."
- 한국 남자들은 여전히 스타일링에 자신 없는 경우가 많다.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많아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꾸미고 싶은 것, 입고 싶은 것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한국 남자들은 여자 친구가 골라 주는 옷만 입었다. 생각해 보면 남자들만의 패션을 아우르는 매장도 별로 없었고. 남자가 잘 꾸며야 회사도 살고 사회도 변하는데."
- 무슨 뜻인가.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오늘 뭐 입을까'라고 생각해 보자. 하늘색 셔츠에 파란색 타이를 해 볼까? 생각하면서 창의도 생기고 고객도 끌어당긴다. 그런데 우리나라 남자들은 셔츠를 두 개로 돌려 입고 같은 바지와 신발을 신는다."
- '김우리 팩트' '김우리 샴푸'가 소위 대박을 쳤다. 제품을 만드는 데 참여했나.
"팩트와 샴푸에 내 DNA가 모두 들어갔다. 제품 개발 총괄디렉터로서 원료와 성분까지 다 따진다. 현장 경험이 많다. 스타들이 원하는 것, 보완점을 반영하니 잘 팔리더라. 그렇다고 수익이 다 내것은 아니다. 난 기획자로서 자질은 있지만 사업가는 영 아니다. 아내도 도움을 준다. 사용하고 나서 '아니다'라고 하면 그 제품은 취급하지 않는다. 고객과 신뢰가 중요하니까."
- 그만큼 안목이 중요할 것 같다.
"김우리 샴푸는 내 경험이 녹아들었다. 나는 10년간 탈모로 인한 이식수술을 무려 세 번이나 했다. 32세부터 머리카락이 빠졌고, 이제 46세가 됐다. 남들이 '왜 그렇게까지 해? 얼마나 산다고'라고 하는데 나는 아니다. 얼마 못 사니까 그 삶을 가치 있고 예쁘게, 내가 원하는 대로 최선을 다해 살고 싶다. 아프지 않은 나이가 70이라고 치면 나는 24년 남았다. 그 24년을 잘 살아야 한다."
- 기억에 남는 스타와 작업은.
"나는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기획을 통한 해외 로케이션 촬영도 그중 하나였고. 또 컬래버레이션 작업도 좋아했다. 엄정화와 이효리를 각각 마돈나와 브리트니 스피어스로 표현해 낸 것이 대표적이다. 뭐랄까. 드라마 같은 요소가 많이 포함됐다."
- 하는 일이 많아서 스타일을 구상할 틈이 없겠다.
"평소 스타일에 대한 생각이 많은 편이다. 딸도 아내도 생각만 하지 말고 표현하라고 할 지경이다. 그렇게 비축한 아이디어를 이거다 싶을 때 적재적소에 사용하는 스타일이다. 어디서 뚝딱하고 나오는 스타일링은 없다."
- 어디서 영감을 받나.
"미아리 근처의 번동에서 자랐다. 지금이야 발전됐지만 그때는 소와 닭을 키웠고, 시냇가에서 가재를 잡았다. 꿩도 날아다녔고.(웃음) 동물들의 깃털을 봤나. 꿩은 은은한 오로라 빛이 나고, 닭의 깃털도 아름답다. 돌이켜 보면 컬러감을 그때 다 배운 것 같다. 지금 명품에서 나오는 컬렉션을 보면 비슷하다. 과거 핑글을 스타일링할 때 드레스를 입혔는데 인어의 꼬리처럼 반짝이는 색감을 사용했다. 어릴 때 경험이 녹아 있었다."
- 스타일을 입힌 연예인이 많았다.
"가수를 많이 했다. 이효리, 성유리, 박효신, 휘성, 렉시, 플라이 투 더 스카이까지. 어느 날 인기가요에 나온 가수들이 1번부터 10번까지 다 내가 스타일링한 적도 있었다. 그 이후 배우로 전향하는 사람이 늘면서 권상우, 차예련, 김희선, 김주혁, 김강우까지 폭이 넓어졌다. 연예인도 옷을 보면 안다. 내 돈을 쏟아부어서라도 좋은 원단, 컬러, 부자재를 아끼지 않았다."
- 자기 관리도 엄격한 것 같다.
"헬스장에 가서 쉬고 오더라도 반드시 간다. 한 번 안 가기 시작하면 습관이 된다. 학교도 그렇지 않나. 숙제를 안 하면 안 가고 싶고, 점점 기피하고…. 헬스장도 그렇다. 평소 옷을 사러 가면 '싫어서 안 입는 옷은 있어도 몸에 안 맞아서 안 입는 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10년 뒤에는 무엇을 할까.
"지금과 변함없이 있을 것 같다. 그땐 우리 딸들이 결혼했을 수도 있겠다."
- 김우리의 꿈은.
"'오늘'이다. 오늘을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자. 나는 20세에 결혼해 불안함 속에서 가정을 꾸렸다. 월급이 나오지 않는 직업이니 내가 남을 찾아가 일해야 하는 순간을 고통스럽게 견뎠다. 그때부터 오늘 하루가 꿈이 됐다. 오늘 하루 동안 에너지를 모두 써야, 방전돼야 내일이 온다."
서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