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 창간 49주년, 추석 특집 취중토크 주인공은 '대배우' 김윤석(50)이다. 충무로를 이끌고 있는 선배 라인에서도 '변신의 귀재'라 불리며 끊임없는 작품 활동과 캐릭터 변주고 자신을 갈고 닦는 김윤석. 제5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 주인공이기도 한 김윤석과 백상 이후 4개월 만에 영화 '암수살인(김태균 감독)' 개봉 시즌과 절묘하게 맞물린 시기 가볍게 술잔을 기울였다.
형사·충신·도박사·사제·선생님 등 연기로는 경험하지 못한 직업이 없고, 소시민에서 조직의 우두머리까지 극과 극의 캐릭터를 '모조리' 소화할 수 있는 배우. 사실 김윤석은 '이렇다, 저렇다' 정의 내리기 조심스러운 배우 중 한 명이다. 그럴 이유조차, 필요성 조차 없이 김윤석 앞에는 '신뢰'와 '인정'이라는 '믿음'이 있다.
10여 년 전 '추격자'로 각종 시상식 트로피를 휩쓸었던 김윤석은 "유일하게 백상 하나만 받지 못했다"며 껄껄 웃었다. 오랫동안 이루지 못했던 과업을 드디어 올해 이뤘다. 김윤석은 "영화부문에서 만큼은 '1987'의 축제였다. 이제 시상식은 하나의 페스티벌, 축제라 생각하며 즐기는데. 내가 참여한 작품과 스태프, 배우들까지 호명되니 내심 기분이 좋더라"고 전했다.
지난 1988년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로 데뷔한 김윤석은 극단 연우무대와 학전에서 내공을 쌓았다. 그리고 2004년 영화 '범죄의 재구성(최동훈 감독)'에 등장, 잊을 수 없는 강한 인상을 남기며 '레전드'의 탄생을 알렸다. 그러곤 거침없었다. '타짜' '추격자' '거북이 달린다' '전우치' '황해' '완득이' '도둑들' '극비수사' '검은사제들' '남한산성' '1987'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사에 남을 만한 작품과 캐릭터를 여럿 만들어 냈다.
더 이상 올라갈 곳도 없건만 김윤석은 쉬지 않는다. 내달 3일 개봉하는 '암수살인'은 감옥에서 7건의 추가 살인을 자백하는 살인범과 자백을 믿고 사건을 쫓는 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 실화극이다. 극 중 김윤석은 살인범의 자백을 믿고 사건을 쫓는 형사 김형민을 연기한다. 김윤석의 말에 따르면 '형사 콜롬보'의 주인공 같은 역할이다. 이미 여러 번 형사 역할을 맡았던 그는 또 다른 버전의 형사 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단순히 범인을 잡는 형사물이 아니라 피해자를 찾아가는 신선한 형식의 작품이다.
맥주잔을 기울이면 곧바로 온화한 김윤석이 나타난다. "나 원래는 이런 사람이에요"라는 너스레와 호탕한 웃음은 평소 인터뷰에서는 쉽게 보지 못한 모습. 김윤석은 맥주 한 잔에 연극 무대 출신으로서 자부심과 영화를 향한 일편단심, 맥주 두 잔에는 생각만해도 절로 웃음이 난다는 '팬 사랑'을 아낌없이 털어놨다. 그리고 마지막 잔에는 최동훈 감독과 장준환 감독, 조승우와 하정우·주지훈에 이르기까지 고마움을 동반한 '김윤석의 사람'을 실어 날랐다. 짧지만 굵은 시간 정리된 그의 인생 이야기다.
>>취중토크②에 이어
- '콜롬보 형사' 이야기를 꿈꾼 이유가 있나요. "그것 역시 독특하잖아요. 콜롬보 형사를 연기한 피터 포크라는 아저씨는 당시 할리우드에서 유행했던 미남 형사, 육체적으로 우월한 터프가이, 샤이한 이미지의 배우가 아니에요. 키도 작고, 머리도 감았는지 안 감았는지 모르겠고, 후줄근하게 차려입은 초라한 모습으로 집요하게 범인을 물고 늘어지죠. 심지어 범인은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인물이고요. 어리바리하게 조사하는 듯하면서 사악한 표정으로 바꾸고 거짓말을 처단해 내는 능력이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위화감도 없고요. 피터 포크라는 명배우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봐야겠죠."
- 형사들이 인정하는 형사 연기 전문 배우가 됐죠. 형사 역할을 맡은 작품이 나올 때마다 '향후 몇 년간 김윤석이 연기하는 형사 연기는 못 보겠지?' 싶었는데, 주기적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형사로 돌아오고 있어요. "시기가 적절하게 들어오는 작품도 복이지만, 형사 역할을 맡은 작품이 결국 작품으로 인정받아야 내가 계속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평가나 흥행 성적이 안 좋다면…. '그만할 때 됐다'는 말이 분명 나올 거예요.(웃음)"
- 배우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직업이죠. 홍보 활동은 적응이 됐나요. "아휴, 힘들어요. 적응이 될까 싶으면 안 되는 상황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그런데 배우도 사람인지라 스위트하고 편안하게 대해 주는 이들의 배려심을 가장 많이, 잘, 오랫동안 기억해요. 티내지 않아도 다 알죠. 상식에 어긋나는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어요. 그것 역시 상식이죠. '기억하고 있다'가 아니라 '어떻게 기억되고 있다'가 중요한 것 같아요."
- 팬 사랑이 엄청난 배우로도 유명해요. "에이, 난 정말 별로 한 게 없어요. 플래카드 읽어 주는 것? 그게 뭐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요.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예의일 뿐이죠. 팬분들은 그걸 밤새 정성스레 만들고 준비하셨을 것 아니에요. 그리고 우리 팬들은 넘치는 사람들이 없어요. 정도의 선을 지키죠. 그런 분들이 차분하게 오래가는 것 같아요. 매 행사에 찾아오는 것도 아니고, 너무 오버해서 미친 듯이 쫓아다니지도 않고요. 가장 좋은 팬의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 팬들을 통해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죠. "솔직히 힘이 나는 것은 사실이에요. 배우로서 할 수 있는 건 결국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리는 거죠. 그게 또 가장 바람직한 배우의 모습이 아닐까요."
- 최근 연극 '지하철1호선' 10주년 기념 제막식에도 참석했죠. "'지하철 1호선' 원작자인 독일 극단의 폴커 루드비히 할아버지의 동상을 세우는 제막식이었어요. '지하철 1호선'이 1994년도에 처음 막을 올렸으니까 공연한 지 벌써 20여 년이 됐네요. 폴커 루드비히 원작자는 극단 학전 김민기 대표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줬고, 둘은 서로를 굉장히 애정하는 관계죠. 의미 있는 자리인 만큼 나도 갔고, (설)경구, (장)현성이 등 시간이 되는 '올드 보이'들이 다 모였어요. 그러고 보니 어제 김민기 선생이 JTBC '뉴스룸'에 나왔던데,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 방송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문화계 대표 인물이죠. "생방송에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분이 TV에 나오는 것을 본 적 있어요? 한 번도 못 봤어요. 완전 미라클이었죠.(웃음) 손석희 아나운서도 예우해 주더라고요. 우리에게 거의 신화 같은 존재니까요."
- 배우 김윤석을 존경하는 이들이 늘어가는 만큼, 고마운 사람들도 많이 생겼을 것 같아요. "많죠. 그동안 만났던 많은 감독들, 배우들, 관계자들 모두에게 감사하죠. 나홍진·장준환 감독 등 많지만 그중에서도 최동훈 감독은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은인이에요. '배우 김윤석'이라는 사람을 발견해 줬고, 발굴해 준 감독이니까요. 연극 무대 곳곳에서 단역으로 활동하는 날 알아봐 줬고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 추석 계획은 있나요. "제사를 지내러 가야죠. 영화 개봉이 조금 더 빨랐다면 무대 인사를 핑계로 안 갔을 텐데. 그쵸?(웃음) 다들 즐거운 명절을 보내길 바라요. 연휴 이후 찾아오는 '암수살인'도 즐겁게 관람해 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