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단독인터뷰]'2번'의 붉은 물결 박항서②2002 황선홍 세리머니 진실…"나에게 안기라고 한 적 없다"
등록2018.09.28 06:00
◇못 다한 2002년 이야기
2002 한·일 월드컵 신화. 주인공은 거스 히딩크 감독 그리고 박지성·이영표·홍명보·황선홍 등 태극전사들이었다. 당시 수석코치였던 박 감독 역시 4강 신화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냈다.
그렇지만 박 감독은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코치라는 역할이 그랬다. 철저한 조력자였고, 주연을 빛나게 해주는 숨은 그림자였다. 4강 신화의 감동과 기쁨 속에서도 이를 표현할 수 있는 인터뷰를 하지 않은 이유다. 모든 공을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에게 돌린 채 뒤로 조용히 빠졌다.
16년이 흐른 뒤에야 박항서 수석코치의 4강 신화 소감을 들을 수 있었다.
-4강 신화 예상했었나.
"나 뿐만 아니라 모두가 4강까지 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홈에서 하는 대회니 16강에 들 수 있다고는 믿었지만 4강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히딩크 감독님이 '세계를 놀라게 하겠다'라고 말한 것을 기사로 봤다. 믿음이 갔다. 프랑스에 0-5로 지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히딩크 감독님은 흔들리지 않고 꿋꿋이 나갔다. 이용수 기술위원장도 모든 부분에서 일을 잘 수습해 나갔다."
-언제부터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가졌나.
"크게 변화될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다. 월드컵 직전에 치른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와 평가전이었다. 전에 프랑스에는 0-5로 졌다. 평가전이 잡혔을 때 내부에서는 '너무 무리다. 너무 강팀들이다'라는 우려가 나왔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님은 '한국이 그런 강팀과 언제 한 번 해볼 수 있겠나'라고 말했고, 실제로 대등한 경기를 했다. 이 경기를 통해 선수들이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 그때 참패를 했다면 월드컵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대등한 경기를 해서 한국이 할 수 있다는 의지가 생겼다."
-히딩크 감독과 선수들의 소통 역할을 잘 해냈다는 평가다.
"선수들이 너무나 잘 따랐다. 그래서 히딩크 감독님과 선수들의 소통, 가교 역할을 확실히 해낼 수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정해성 코치도 역할을 잘 해냈다. 주로 감독과 선수들의 메신저 역할을 했다. 감독과 선수들이 서로 기분 나쁘지 않게 노력을 했다. 히딩크 감독님과 나 그리고 통역만 알고 있었던 것도 많았다. 내가 순화시켜서 전달하기도 했다."
-외국인 감독을 보좌하는데 어려움은 없었나.
"감독님이 외국인이었다. 내가 한국 코치였다. 히딩크 감독님이 최대한 존중을 해줘 큰 어려움은 없었다. 문화적 차이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왔다. 히딩크 감독이 오해하지 않도록 충분히 보충 설명을 해줬다."
-어떤 경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가.
"매 경기 모두가 감동적이었다. 조별리그부터 4강까지 의미가 없는 경기가 없었다. 16강 상대가 이탈리아로 결정됐을 때 이길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하지 못했다. 8강에서도 스페인을 만났는데 체력적으로 힘들어 힘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히딩크 감독님의 지도력이 빛났고, 선수들이 노력을 해서 4강에 올랐다. 그래도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첫 경기 폴란드전이다. 월드컵 역사상 첫 승을 거둔 감동이 나에게는 크게 다가왔다."
-4강에 올랐을 때 심정은.
"당시 대표팀 내부에서 '우리 이러다 요코하마(월드컵 결승전이 열리는 장소) 가는 거 아닌가'라며 기대하기도 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꺾었는데 독일을 꺾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체력적으로 너무나 지쳐 있었다. 결국 독일은 넘지 못했다."
-선수들이 얼마나 지쳐있었나.
"월드컵이 모두 끝난 뒤 황선홍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월드컵을 3번 치렀다. 그동안 한국은 월드컵에서 조별리그만 경험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 등 강팀과 3번의 평가전을 치렀다. 월드컵 조별리그 3경기를 치른 것만큼 힘들었다. 그리고 월드컵 본선에서 조별리그 3경기를 치렀다. 토너먼트로 올라가 4경기를 더 치렀다. 월드컵 3개 대회를 연속으로 치른 것 같다. 육체적으로 너무 피곤했다. 또 정신적으로도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월드컵을 준비하던 6개월이 일본에 있었던 2년 보다 더욱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정말 월드컵 3개 대회를 연속으로 치렀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폴란드전 황선홍 세리머니의 진실은.(황선홍이 폴란드전 선제골을 넣고 히딩크 감독이 아닌 박항서 코치에게 달려가 안겨 많은 뒷이야기가 나왔다.)
"정말 내가 정확하게 말해주겠다. 이에 대해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데 이번에 확실히 짚고 넘어가겠다. 폴란드전이 월드컵 첫 경기였다. 폴란드전 전날 밤, 선수들이 긴장하고 있을 것 같아 직접 방으로 찾아가면 부담스러울 테니 호텔 방에서 선수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솔직히 폴란드전 선발 멤버를 알고 있었다. 선수들은 자신이 선발로 나설지 모르는 상태였다. '첫 경기다. 긴장하지 말고, 잘 자라'고 선수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다들 '네 알겠습니다'라고 끊었다. 황선홍 차례였다. 그런데 선홍이가 '저 내일 선발이에요?'라고 물었다. '나는 모르지'라고 둘러대고 있는데 선홍이가 '느낌이 좋습니다'라고 말을 하더라. 그래서 나는 '그래? 잘 준비를 해봐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문뜩 안정환의 스코틀랜드전 반지 세리머니가 생각났다. 그래서 선홍이에게 웃으면서 '네가 골을 넣으면 세리머니를 와이프에게 하지 말고 이번에는 벤치에 한 번 하라'고 농담을 던졌다. 정말 농담이었다. 나에게 안기라고는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선홍이가 폴란드전에 골을 넣을지 몰랐다. 정말 골을 넣었는데 나한테 안겼다. 나도 선홍이가 왜 그런지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전날 내가 한 말이 기억났다. 선홍이도 골을 넣고 순간적으로 그게 생각이 났었나 보다. 다시 말하지만 정말 나에게 안기라는 소리는 하지 않았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