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롱하게 빛나는, 진주같은 배우의 발굴이다. 오랜시간 영글어 가장 빛날 수 있는 타이밍에 발견 되는 것도 '복'이자 '천운'이다. 최근 몇 년간 인생 작품과 인생 캐릭터를 갈아 치우고 있는 배우 유재명(45)은 늘, 어디에서든 연기하고 있었던 오랜 시간을 드디어 '연기해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로 보답받고 있다.
2001년 영화 '흑수선(배창호 감독)'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후 주·조연으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꼬박 18년이 걸렸다. tvN '응답하라 1988' 동룡이 아부지, '비밀의 숲' 이창준에 이어 '명당' 구용식이다. 유재명이 '명당'을 배우 인생의 전환점이 될 작품으로 꼽는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적응할 새도 없이 빠른 '대세' 전환에 최대한 열심히, 최선을 다해 연기했지만 마음을 탁 풀어놓지는 못했던 시간. '명당'은 그런 유재명에게 '즐거움'이라는 선물을 선사한 작품이자 현장이었다.
그 옆엔 '행복한 인연' 조승우가 있었기에 더욱 가능했다. '비밀의 숲', '명당' 그리고 JTBC '라이프'까지 세 작품을 연달아 함께 하게 된 두 사람은 이제 '호흡'이라는 단어가 무색할 정도로 눈빛만 보면 통하는 사이가 됐다. 조승우는 "재명이 형과 나, 카메라 한 대, 딱 셋만 놓고 내버려두면 30분짜리 단편은 나올 수 있을 것이다"며 유재명과의 만남과 추억을 흡족해 했고, 유재명은 조승우를 '형 같은 동생'이라 칭하며 "즐겁게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평생의 인연을 약속했다.
옥탑방 세간살이를 접은지 2년 차. 진짜 명당인지 아닌지는 알 길은 없지만 지금의 유재명에게는 분명 명당이었던 곳이고, 명당으로 기억될 곳이다. "꽤 아까워 아끼는 후배에게 넘겼다"며 미소지은 유재명은 이제 자신의 인생을 또 한 번 뒤바꿀 두 번째 명당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 10월 늦깍이 결혼식을 올리는 유재명에게 신혼집이 될 곳. 산동네 어디즈음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모습이 좋아 냉큼 선택했다는 이유는 명당의 조건과, 인간 유재명의 매력을 동시에 신뢰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 '명당'은 어떻게 출연하게 됐나. "'명당'에서 맡은 구용식이 영화 '하루'에서 맡았던 역할 다음으로 크다. 시나리오를 받고 많이 놀랐다. '정말 이렇게 큰 역할을 나한테 하라는 것인가? 할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고민도 많았고 부담감도 컸지만 첫 미팅 때 감독님이 신뢰를 주셨다. '명당'은 나에게 찾아 온 행운이다."
- 구용식도 나름의 캐릭터 설정이 있다.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다. 구용식만의 신념이 있다. 절대 권력을 차지하고 싶어하는 양반들의 신념게 견주어 구용식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아끼는 한 인간의 개인 욕망에 원초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걸 대변하는 인물이다. 곰 같지만 묵직하면서도 표현은 밝게 하려 노력했다."
- 구용식은 결혼도 안하고 평생 박재상(조승우) 옆에 있는건가 했다. "하하. 충분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 구용식도 전사가 있다. 염쟁이 아들이다. 그 시대 염쟁이는 천민 계급이다. 구박받고 멸시받고 있을 때 박재상의 도움을 받는다. 평생의 은인인 것이다. 그래서 박재상이 어려움에 처했을 땐 '빚을 갚을 기회가 생겼구나' 한다. 그런 마음이 바탕에 깔려있다 보니까 평생 함께하는 우정으로 이어졌다.(웃음) 그 친구의 신념을 지켜주고 싶어 하면서도 친하기 때문에 질타도 할 수 있는 정의있고 의리있는 인물이다."
- 연기는 만족스러운가. "'조금만 더 릴렉스 할 걸, 조금만 더 간절한 모습을 보일 걸' 했다.(웃음) 모든 배우들이 자신의 연기에 늘 아쉬워 하듯 나도 그렇다. 난 특히 더 심한 것 같기도 하다. 다만 오랜만에 맞는 옷, 편안한 옷을 입은 느낌이다. 고무줄이 다 늘어져도 입으면 편한 옷이 있지 않나. 그것만 찾게 되고. '명당'의 구용식은 그나마 자유로운 옷을 입은 것 같았다."
- 더 심하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 "울렁증이 있다. 촬영만 끝나면 다시 하고 싶고, 집에 가만히 누워 있으면 재촬영 하고 싶다. 욕심이다. 결국 감독님과 동료들을 믿고, 그들도 나를 믿고 있다는 신뢰를 마음에 단단하게 새기면 되는데 그래도 나만 못하는 것 같고 그렇다.(웃음) '명당'은 개인적인 아쉬움과 별개로 큰 스크린에서 멋진 배우들과 호흡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행복했다." - '명당' 자체에 대한 만족도는 큰 것 같다. "좋았다. '조화롭다'는 말이 어울리는 작품 아닐까 싶다. 정말 조화롭게 완성됐다. 연기, 테마, 음악, 미술, 빠른 편집, 거기에 간간히 느껴지는 배우들의 눈빛까지 난 다 좋았다."
- 새롭게 얻은 것들이 있다면. "배우 인생에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됐다. 영상에 대한 적응이 아주 조금 된 것 같다고 해야 할까? 연극과 영화, 드라마 모두 연기를 하는 사람은 '배우'라는 같은 직업으로 표현되지만 매체 성격에 따라 다른 방식의 작업들을 하게 된다. 너무 잘하고 싶은데 알게 모르게 겉돌았던 마음이 '명당' 현장을 통해 어느 정도 적응되지 않았나 싶다."
- 이전에도 불안함은 보이지 않았는데. "잘하고 싶다는 바람 때문에 조심스러운 지점들이 있었다. 그래서 이전의 다른 작품들에서는 마음 상태가 좀 굳어 있었던 것 같다. 전에는 그저 '해야지!'라는 생각이 강했다. 불안할 땐 열심히 연습해 캐릭터를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수 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적응의 시간은 필요하더라." - 이젠 좀 풀어진 것 같은가. "현장에서는 많은 인물들과 함께 즐기는 것이 고수다. 어떤 셰프 분이 맛을 표현할 때 '재미있다'고 하던데 결국 밸런스가 좋아야 한다는 것 아닐까. 다른 배우들의 연기와 잘 어우러지는 연기를 표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명당'에서는 박희곤 감독님을 비롯한 많은 배우들 덕분에 '영화 참 재미있는 작업이구나'라는 즐거움을 느꼈고, 함께 즐겨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