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대 높은 글로벌 명품 뷰티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에 승부를 걸고 있다. 내로라하는 명품 화장품들이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만 화장품 라인을 론칭하는가 하면, 세계 최대 화장품 유통 채널도 한국 시장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K뷰티'가 아시아권을 넘어 세계적인 트렌드가 되면서 유명 화장품 브랜드는 물론이고 화장품 유통 업체와 패션 브랜드까지 한국 시장에 승부를 걸고 있다는 분석이다.
샤넬·아르마니… 한국은 명품 화장품 '격전지'
프랑스 명품 화장품인 샤넬 뷰티는 지난 1일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남성 전용 색조 화장품 라인 '보이 드 샤넬'을 출시했다. 남성이 흔히 쓰는 스킨·로션이 아니다. 보이 드 샤넬은 피부 표현을 위한 파운데이션과 입술을 부드럽게 하는 립밤, 눈썹 화장을 위한 아이브로펜슬로 구성됐다.
샤넬이 향수와 기초 화장품 외에 남성 색조 화장품을 선보인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샤넬은 먼저 한국에서 시험 판매를 한 뒤 11월 온라인 홈페이지, 내년 1월 전 세계 샤넬 매장으로 판매처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샤넬은 이를 위해 국내는 물론이고 아시아권에서 인지도가 높은 배우 이동욱을 모델로 내세웠다.
샤넬은 왜 한국을 '테스트베드' 국가로 선택했을까. 전문가들은 한국이 세계에서 손꼽히는 화장품 강국이며 소셜네트워크(SNS)와 한류 스타를 통한 유행 파급력이 폭발적인 나라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한국은 전 세계 남성 화장품 시장에서 가장 큰 규모에 속한다.
시장 조사 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남성 화장품 시장은 2011년 8784억원에서 지난해 1조2000억원으로 성장했다. BTS나 엑소 등 K-POP 아이돌이 유튜브나 SNS를 타고 글로벌 10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남성들의 화장 문화를 전파한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입생로랑 뷰티 차이나는 엑소 출신인 중국인 가수 타오를 모델로 기용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화장품 브랜드인 조르지오 아르마니 뷰티도 한국 시장에 공들이고 있다.
지난 1월 전 세계에서 7번째로 브랜드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소셜 팝업스토어인 '아르마니 박스'를 열었다. 아르마니 박스에서만 선보이는 리미티드 아이템과 서비스, 디지털 액티비티를 제공하며 한국 여성들에게 아르마니 뷰티 이미지를 각인했다.
8월에는 서울 신세계백화점 강남 파미에스트리트에 전 세계 최초로 신개념 디지털 매장 '아르마니 뷰티 스토어'를 개장했다.
아르마니 뷰티 본사는 한국 여성을 겨냥한 립스틱인 '엑스터시 샤인 304 코란지'를 단독으로 출시했다. 한국 여성의 피부 톤에 맞춰 특별히 개발된 화이트 피그먼트 베이스 오렌지 컬러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아르마니 뷰티는 최근 1년 사이 한국 시장에서만 리미티드 에디션을 출시하고 특별한 팝업스토어 등을 선보이면서 어필하고 있다. 한국 시장에서 통하고 성공해야 다른 나라의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는 데 효과적으로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글로벌 유통·패션 브랜드도 "한국서 성공해야…"
비단 화장품 업계만 한국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다. 굴지의 글로벌 화장품 유통 채널과 패션 브랜드도 한국에 도전장을 냈다.
세계 최대 화장품 편집숍인 세포라는 최근 한국 시장 진출을 공식 선언했다.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 그룹에 속한 세포라는 미국·프랑스·이탈리아·중국 등 33개국에서 2300여 매장을 운영한다.
그러나 한국과 일본에는 진출하지 않으며 유독 신중을 기했다. 세포라와 비슷한 컨셉트인 헬스앤뷰티(H&B) 스토어가 포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금융 투자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H&B 시장 규모는 1조7170억원으로 전년 대비(1조3400억원) 30% 이상 성장했다. 매장 수도 지난해 기준 약 1350개를 넘어서면서, 최근 3년간 연평균 증가율이 20%대에 달했다. 최근 신세계백화점의 뷰티 편집숍인 시코르 외에도 아모레퍼시픽의 아리따움, LG생활건강의 네이처컬렉션 등이 매장 확대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세포라가 치열한 경쟁터인 한국 진출을 결정하자 업계가 술렁인 이유다.
그만큼 착실하게 준비하고 있다.
세포라는 지난 8월 글로벌 구인·구직 사이트에 "세포라코리아가 2019년 3분기에 오픈한다는 사실을 알리게 돼 기쁘다"며 한국 지사 인사 관리자의 채용을 공고했다. 최근에는 K뷰티 브랜드인 미미박스와 손잡고 '가자'라는 세포라 전용 색조 중심 화장품 라인까지 내놓았다. 유행이 빠른 K뷰티의 특성을 살려 2개월마다 새 제품을 내놓는 컨셉트로 알려졌다. 세포라가 외부 업체와 공동 브랜드를 론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내 화장품 유통 채널의 한 관계자는 "한국은 굵직한 화장품 기업이 접고 나갈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고 시장이 큰 편이다. 세포라의 한국 성공 가능성은 지켜봐야 알 수 있다"면서도 "그동안 한국 진입을 저울질만 해 왔던 세포라가 공식적으로 진출을 선언한 것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패션계도 움직인다.
일본 패스트리테일링 그룹은 자매 브랜드인 GU를 지난해 9월 국내서 론칭했다. 패스트리테일링 그룹은 이미 한국에 유니클로를 안착시켜 큰 성공을 거둔 바 있다.
비슷한 컨셉트인 GU를 한국에 또다시 상륙시킬 경우 서로의 이미지와 매출만 깎아 먹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 배경이다.
그러나 GU 측은 한국 시장을 아시아권 성공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으로 보고 있다. 오사코 히로후미 GU 한국사업책임자는 "패션 선진국인 한국에서 배운다. 시장 규모가 큰 한국에서의 성공은 아시아에서의 사업 확대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