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로 여행한다? 뭐 볼 것이 있다고…' 대구 하면 '섬유 도시' '안경 도시' '패션 도시' 정도가 떠오른다. '여행 도시 대구'는 상상이 잘 안 된다. 유명 여행지로는 팔공산과 갓바위 정도가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구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여행 도시 대구'를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바로 걸으면서 대구의 구석구석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이 꼭 가 봐야 할 '한국 관광 100선'에도 꼽힌 대구근대골목에서 근대 역사로 시간 여행과 함께 엄마·아빠·할아버지·할머니의 추억 속으로 떠날 수 있다. 서문시장 등에서는 '먹방 투어'가 가능하다. 팔공산에는 가을 정취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힐링 올레길이 기다리고 있다.
정겨운 골목에 근현대사까지… 대구 볼거리가 이렇게 많았나 서울은 걷기 좋은 도시 중 하나다. 도심 곳곳에 옛날 골목길도 있고 성곽길도 있다. 그 길엔 맛집들도 즐비하다. 따뜻한 가을볕 속에서 천천히 걷다 보면 눈과 입이 즐겁다.
대구도 그런 곳이다. 도심 속에 20세기 근현대사를 담은 골목길인 대구근대골목이 있다. 대구 도심은 400여 년 영남의 정신적·지리적 중심지인 데다 한국전쟁의 피해가 적어 근대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대구시는 근현대사의 공간과 사람이 많은 구 도심인 중구에 2008년부터 근대 골목을 조성, 현재 총 5개 코스를 운영한다.
각 코스는 저마다 특색이 있다. 1코스는 경상감영달성길, 2코스는 근대문화골목, 3코스는 패션한방길, 4코스는 삼덕봉산문화길, 5코스는 남산100년향수길이다. 이 중 가장 인기 있는 곳은 2코스 근대문화골목이다.
다섯 코스 중 가장 먼저 조성되기도 한 근대문화골목은 2시간가량 걸리는 비교적 짧은 코스며 볼거리가 많다.
우선 '진골목'은 오랫동안 형성된 옛 골목길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진골목'의 '진'은 '길다'의 경상도식 발음 '질다'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비가 오면 온통 진흙탕길이 된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얘기도 있다. 대구시 중구의 이영숙 골목문화해설사는 "과거 동네 사람들 사이에서 진흙길 때문에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전해져 오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시대 때부터 존재한 진골목에는 대구 유지들이 많이 살았다. 대구 토박이 달성 서씨 부자 서병국과 그 형제들이 모여 살았고, 코오롱 창업자 이원만 회장, 금복주 김홍식 창업자도 이 골목에서 살았다.
부자들이 떠나면서 저택은 화교 협회와 정소아과의원, 식당 등으로 남아 있다. 1937년 지어진 정소아과의원은 대구 최초의 서양식 주택으로 대구 갑부 서병직의 저택이었다. 1947년 정필수 원장이 구입해 소아과 건물로 사용하게 됐으며 지금도 아들이 아버지의 뒤를 잇고 있다. 진골목에서 지금도 노인들의 약속 장소로 통하는 전통 다방인 미도다방을 만날 수 있다.
진골목을 지나면 조선의 과거길인 영남대로가 나온다. 현재 약령시장의 뒷골목 정도지만 조선시대 9대 간선도로 중 하나로, 부산 동래포에서 한양까지 이어졌던 도로였다. 이 길 곳곳에 과거 영남대로를 떠올리게 하는 벽화들이 그려져 있다.
영남대로에는 조선시대부터 이어 온 3대 한약재 전문 시장이 있어 한약 냄새가 가득하다. 약령시 한의약박물관에서 한방차 시음이나 건강 상태 체크, 족탕·한방 비누 만들기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근대문화골목에서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곳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로 유명한 항일 시인 이상화 선생과 국채보상운동을 시작한 민족운동가 서상돈 선생의 고택이다. 이들 고택은 초고층 건물이 건설될 때 철거될 위기에 처했으나 시민들의 서명운동과 후원으로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고택을 벗어나면 계산성당과 3·1만세운동길·동산선교사주택(청라언덕)으로 이어지는데 사진을 찍기에 딱 좋은 곳이다. 경상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계산성당은 우뚝 솟은 쌍탑에 고풍스러운 건축미로 대구 시민들은 물론이고 유명 인사들이 웨딩 촬영이나 결혼식을 하기 위해 찾는 장소다. 3·1운동 당시 대구 학생들이 일본 경찰을 피해 이동한 3·1만세운동길은 계단 상부에서 내려다보이는 곳이 포토존이다.
대구골목투어 중 2코스 말고도 최근 뜨는 곳이 5코스 남산100년향수길이다. 프랑스의 루르드 성모 동굴을 본떠 건축한 성모당을 비롯해 샬트르성바오로수녀원, 김수환 추기경이 공부한 100여 년 전통의 성유스티노신학교 등이 있어 천주교 성지순례길로 인기다.
새롭게 조성되는 골목도 있다. 1900년대 요정 130여 곳, 기생 500여 명이 있었던 대구의 요정 골목이 ‘종로 근대문화백년 피어나길’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만경관 맞은편 종로 골목 안쪽에 조성되는 피어나길에서 대구 종로 기생의 역사와 옛 풍류 문화를 만날 수 있다.
서문시장 '먹방 투어' 제대로네… 야시장은 덤 대구 골목길을 걷다 보면 금방 배가 고파 온다. 그럴 때면 따로 식당을 찾아갈 필요 없이 골목 식당으로 쑥 들어가면 된다. 대구의 대표 음식으로 꼽히는 찜갈비를 비롯해 납작만두·무침회·따로국밥 등을 맛볼 수 있다.
대구의 로컬 치킨은 먹어 봐야 하는 음식이다. 중구 종로의 덕산시장 쪽에 있는 뉴욕통닭은 바삭바삭한 얇은 튀김옷이 특징인 치킨집으로,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전화로 예약하면 줄을 서지 않아도 되지만 주문이 많아 1~2시간가량 걸린다.
대구 골목길과 이어지는 서문시장은 대구의 대표적인 '먹방 투어' 코스다. 서문시장은 예로부터 한강 이남에서 제일 큰 시장으로 알려져 왔으며,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시장이기도 하다.
대표하는 먹을거리는 씨앗호떡·꼬마김밥·떡볶이와 납작만두·국수 등이다. 특히 손칼국수나 잔치국수 등 각종 국수를 전문적으로 하는 국수 골목이 형성돼 있어 많은 사람이 찾는다.
오후 7시부터 열리는 서문시장 야시장에서 삼겹살·스테이크·막창·야끼·홍콩육포 등 이색적인 퓨전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가격은 5900원을 넘지 않지만 1인분 값이어서 여러 가지를 사 먹으면 2만원이 훌쩍 넘어간다.
요즘 대구를 찾으면 먹방 투어를 더욱 풍성하게 즐길 수 있다. 대구시는 오는 20일부터 11월 4일까지 가을 여행 주간에 맞춰 '대구미식회' 이벤트를 연다. 대구 11개 먹거리골목·삼송빵집·대구꿀떡·찜갈비 등 먹방 BJ들이 선택한 대구 음식과 서문시장·수성유원지·김광석다시그리기길 등 대구 관광 스탬프트레일 운영지에서 참여할 수 있다.
대구 먹방 투어 시 주의할 점이 있다. 대구 대표 음식으로 꼽는 10미(味)만 연이어 먹지 말라는 것이다. 10미는 대구육개장·찜갈비·복어불고기 등 매운 음식이 많아 끼니마다 먹었다가는 역시 대구 음식은 맵고 짜다는 것을 재확인하게 된다.
팔공산 올레길은 힐링길 먹방으로 에너지를 충전했다면 다음은 팔공산 올레길로 힐링 투어를 하자. 팔공산은 해발 1192m 높이에 전체 능선 길이만 20㎞인 대구의 진산이다.
주봉인 비로봉에서 좌우로 동봉과 서봉이 뻗어 있으며 동화사와 부인사, 파계사 등 천년 고찰을 품고 있다.
특히 맑고 깨끗한 계곡을 따라 등산로가 열려 있는데, 2009년부터 대구 올레 팔공산 코스(현재 8개+연결 코스 4개)가 조성되고 있다. 여덟 코스 중 가장 짧은 코스는 1코스 '북지장사가는길'이다. 왕복 5㎞를 걷는데 1시간 20분 내외가 소요된다. 흙길에 완만한 경사여서 걷기에 좋고 솔숲이 펼쳐져 있어 솔향기를 만끽할 수 있다. 짧은 여행 일정 때문에 시간을 많이 낼 수 없다면 북지장사길만으로도 팔공산 올레길의 매력을 경험할 수 있다.
잠깐이라도 팔공산에 오르고 싶다면 케이블카를 타면 된다. 40초마다 운행되는 카이블카를 타면 7분 만에 870m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정상역인 하늘정원에서 팔공산 최고봉인 비로봉을 비롯해 동봉과 서봉·병풍바위와 염불봉을, 또 이제 막 뻘겋게 익어 가는 단풍을 좀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다. 하늘정원 한쪽에 소원바위가 있는데, 동전을 붙이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한다.
대구시의 관공 홍보 마케팅 조직인 대구관광뷰로 오용수 대표는 "대구에 볼거리가 없다고들 하는데 겉만 봐서 그렇다"며 "곳곳을 걸어 보면 이렇게 볼 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볼거리, 먹을거리, 즐길 거리가 풍부하다. 올가을 대구를 걸으며 놀라운 발견을 해 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