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커플’ 홍상수 감독(왼쪽)과 김민희가 함께 호흡을 맞춘 다섯 번째 영화 ‘풀잎들’이 오는 25일 개봉한다. 사진=연합뉴스 "비범해 보이세요" "예쁘셔서 그래요.(웃음)"
변함없다. 기승전결 김민희다. 다만 이번에는 비범한 김민희, 화내고 짜증도 내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이고, 결국 예쁜 김민희를 담아내고 싶었다는 홍상수 감독의 마음이 엿보인다.
홍 감독의 22번째 장편영화 '풀잎들(홍상수 감독)'이 16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열린 언론시사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처음 공개됐다. 상영관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텅 비어 있었다. 앞서 제68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제56회 뉴욕영화제 등 해외 영화제와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상영된 탓인지, 아니면 홍 감독과 김민희에 대한 관심이 적어진 탓인지 시사회를 찾는 취재진도 점점 줄어드는 모양새다.
'풀잎들'은 '오! 수정' '북촌방향' '그 후'에 이은 네 번째 흑백영화로 주목받고 있으며,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2015)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 '클레어의 카메라'(2018) '그 후'(2017)에 이어 홍 감독과 김민희가 다섯 번째 호흡을 맞춘 작품이다. 이들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여섯 번째 협업작 '강변호텔'도 이미 찍어 둔 상황이다.
인간의 삶과 죽음을 다룬 '풀잎들'은 주인공 아름(김민희)이 한 카페의 구석에 앉아 저마다 갖가지 사연으로 힘들어하는 각 테이블의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기록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관찰자자 내레이션을 담당한 김민희를 비롯해 안재홍·공민정·기주봉·서영화·정진영·김새벽·이유영이 사연을 가진 인물들로 현실감 넘치는 '생활연기'를 펼쳤다.
삶과 죽음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풀어내나 했더니 그 중심엔 여지없이 '사랑'이 있다. 누군가는 사랑해서 죽음을 고민하고, 누군가는 사랑하지 못해서 죽음을 고민한다. 한 공간에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할 수 있는지,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얽히고설키게 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지, 홍 감독은 10명이 채 안 되는 등장인물로 정확하게 답을 내릴 수 없는 '관계'에 대해 풀어낸다.
그리고 이 사람들을 면밀히 관찰하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엿들으며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척 평가하는 관찰자가 바로 김민희다. 김민희는 내레이션을 통해 콧방귀를 뀌기도 하고, 일침을 날리며 비판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부러워하기도 한다. 어차피 다 죽을 목숨이라고 치부하며 삶을 가볍게 여기면서도, 사랑만큼은 무겁게 다룬다. 홍 감독은 김민희뿐 아니라 배우·작가 등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업계 인물들을 캐릭터로 내세우면서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또 대변하게 만든다. "사랑이 최고야! 나머지는 다 그게 안 되니까 하는 거야." "그냥 영화 한 편을 만든 것뿐이다"라고 말해도 홍 감독과 김민희의 '관계'가 있기에 모든 대사가 의미심장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김민희 입에서 흘러 나오는 "남자 친구가 있다. 우리 둘 다 비슷한데 우리가 좀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라는 대사는 실소를 자아내게 하고, 동생의 여자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결혼을 운운하며 "맞는 사람끼리 만나서 결혼하는게 좋다. 서로 잘 알고 해야지 아니면 무책임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엉망으로 살고 있냐. 모르면 결혼하면 안 된다. 어차피 해도 실패다. 피해 주면 안 될 사람한테 피해 준다"라는 분노 섞인 짜증 역시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인 듯 단순하게 들리진 않는다.
늘 심오한 척하지만 딱히 어렵진 않다. 술은 빠질 수 없는 필수 옵션으로 직설적이지만 두루뭉술한 홍 감독의 화법도 여전하다. 이는 홍 감독과 김민희의 의뭉스러운 행보와도 비슷하다. '덕업일치' 하나만큼은 완벽히 해내고 있는 두 사람이다. 홍 감독과 김민희를 가장 자주 만날 수 있는 곳은 여전히 쇼핑몰. 국내 공식 석상에는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해외 영화제에는 작품을 꾸준히 출품하고 있으며, 조만간 다시 해외에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꾸준히 영화를 찍는 것이야 '사랑도 일도 함께'라는 핑계로 볼 수 있겠지만, 꾸준히 개봉까지 하는 것은 '우리 이야기를 봐 달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개봉하면 할수록 관객 수는 놀라울 정도로 적어지고 있다.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가 8만734명을 동원한 데 반해, 불륜을 발표하며 공개한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5만7110 명, '그 후'는 1만8667명, '클레어의 카메라'는 9430명을 끌어모으는 데 그쳤다. 관계자들은 "이제는 작품성도 잘 모르겠다. 늘 똑같다. 홍 감독 특유의 스타일을 좋아하는 팬들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들만의 불륜 일기처럼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다. 메시지는 찾으려 노력하고 포장하면 메시지가 된다. 그런데 그런 수고를 기울이고 싶지 않다. 업보다"라고 냉정한 평을 내렸다.
홍 감독과 김민희는 2년째 불륜 중이다. 홍 감독은 부인 A씨와 이혼소송에 여전히 얽매여 있다. 이것이 두 사람의 현실이다. '풀잎들'은 오는 25일 개봉한다. 이번 작품을 두고 관객들이 어떤 이야기를 전할지, 전작에 비해 많은 관객이 영화를 찾아 줄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