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열일'을 해 칭찬받는 것이 아니다. 잘했고 또 잘했다. 연기력에 앞서 비주얼로 대중을 사로 잡은 현빈·주지훈·한지민·이나영이 인생 캐릭터를 만나 인생 열연을 펼치면서 연기력만으로 주목받는 것은 물론, 배우로서 깊이를 증명했다. 그냥 쌓인 내공이 아니라는 것을 이들은 작품으로, 또 연기로 고스란히 보여줬다.
매 작품에서 모난 연기를 펼쳤던 것은 아니지만 타고나기를 뛰어난 외모와 피지컬 덕택에 '연기파' 보다는 '비주얼 배우'로 분류됐던 네 배우다. 오랜만에 복귀한 이나영을 제외하고는 대표작하면 드라마가 먼저 떠오르는 탓에 브라운관에 더 잘 어울리는 배우들로도 손 꼽혔다.
하지만 쉬지 않고 두드렸더니 어느새 활짝 열린 문이다. 톱스타 혹은 한류스타로 일찌감치 자리매김했지만 제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부족한 2%를 채우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는 대중의 사랑과 호평. 사랑받을만한 배우는 언제든, 어떤 이유로든 결국 사랑받기 마련이다.
각각 '협상(이종석 감독)', '암수살인(김태균 감독)'으로 생애 첫 악역으로 변신을 꾀한 현빈·주지훈, '미쓰백(이지원 감독)', '뷰티풀 데이즈(윤재호 감독)'를 통해 나락으로 떨어진 인생을 연기한 한지민·이나영은 선택 자체만으로도 '과감함'을 몸소 보여주며 이들의 다른 얼굴에 기대감을 높였다.
'공조(김성훈 감독)'로 1차 변신에 성공한 현빈은 '협상'에서 아예 '극악무도 납치범'이라는 악역의 길을 택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창궐'은 능글맞은 성격에 업그레이드 된 액션까지 종합선물세트로 완성했다. 주지훈도 '신과함께(김용화 감독)' 시리즈에 이어 '공작(윤종빈 감독)'으로 야비함에 슬쩍 담금질을 하더니 '암수살인'에서는 '연쇄 살인마'로 분해 100% 부산 사투리에 노메이크업, 죄수복을 거뜬하게 제 몸에 입히며 모든 노력을 보상 받았다.
한지민과 '미쓰백'은 올해 충무로 최고의 복병이자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세상을 등진 전과자로 학대 당하는 아이를 외면하지 못한 복잡한 감정을 연기한 한지민은 벌써부터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으며 데뷔 이래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6년만에 컴백한 이나영은 10대 소녀부터 20대 엄마, 조선족 정체성까지 '뷰티풀 데이즈'에서만 무려 4가지의 얼굴을 비춘다. 아직 공식 개봉 전이지만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는 등 주목도가 높아 개봉 후에도 컴백에 대한 반가움 만큼 호평 분위기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충무로 관계자들 역시 작품의 흥행을 떠나 네 배우의 선택과 도전에 박수를 아끼지 않고 있다. 한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비주얼을 완전히 내려놨고, 그 틈새를 연기로 채워 넣었다. 어떤 이미지 변신을 해야만 대단한 배우라 칭송받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뭐라도 하는 것이 낫지 않겠나. 물론 배우에겐 이미지가 생명이라고 하지만 이것저것 해보고, 망해도 봐야 성장할 수 있다는 것에 이견을 다는 이들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네 배우를 호평하는 이유는 단순히 '이름값 높은 배우들이 강렬한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는 것으로 반짝 주목을 받게 된 것이 아니라는데 있다. 깊어진 분위기와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으로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모습과 능력을 확인시켰다. '특정 캐릭터를 연기할 때만 두각을 나타내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있을 정도로 다소 애매했던 연기력도 안정권에 접어 들었다. 아역배우가 성인배우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것 이상으로 성인배우의 변화도 어려운 숙제다. 그걸 해냈다"고 분석했다.
인터뷰에서 현빈은 "나에게 가장 보고 싶어하는 연기가 있다는 것을 잘 알지만 늘 똑같은 것만 하는건 제 살 깎아먹기 아닐까 싶다"고 쉼없는 활동과 호불호 갈리는 도전에 대한 솔직한 속내를 밝혔다. 한지민은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던 것이 사실이다.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참여했고, 내가 한 역량에 비해 묻어갔던 작품도 많았다"고 고백했다. 주지훈은 "요즘엔 다작이 대세인 것 같다.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든든한 선배들 사이에서 더 달려야 하지 않겠냐"며 열일을 예고한 바 있다.
배우의 새로운 얼굴 은 늘 반갑다. 너무 잘 아는 얼굴들의 새로운 얼굴은 더 반갑다. 네 배우의 차기작은 공교롭게도 모두 드라마다. 스크린 점령에 성공한 이들이 다시 돌아간 브라운관에서는 어떤 보습을 보여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