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자이언티((Zion.T·본명 김해솔·30)는 세상과 멋지게 인사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트레이드마크인 얄팍한 선글라스를 벗고 자신을 둘러쌌던 높고 두꺼운 벽을 한 겹 걷어 냈다. 전시회나 미술관 구경도 잦아졌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평소 열렬한 팬심을 드러내 온 레드벨벳 슬기와 협업한 '멋지게 인사하는 법'을 발매하고, 매일같이 라디오 방송국 출근 도장을 찍으며 "어떻게 하면 방송을 더 잘할 수 있나요?"라는 궁금증도 생겨났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의도치 않은 신비주의 가수가 된 자이언티. '양화대교'의 빅히트 이후 음악은 더 이상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세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대중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무모한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 모습을 보여 주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음악을 만들자"는 다짐이 첫 번째였다.
자이언티는 그 다짐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술을 즐기지 않는 그가 취중토크에 응한 것도 이 때문이다.
>>1편에 이어
- 이문세부터 슬기까지 협업하는 연령대가 다양한데 팬층을 확보하려는 전략인가요. "팬덤을 신경 쓰는 사람으로 커리어를 만들어 왔다면 지금 이 모습이 아닐 거예요. 팬덤이 크지 않아요. 팬들한테 미안한 이야기인데 나는 흔한 팬미팅이나 팬사인회도 못 했거든요. 음악만 할 줄 알지, 팬들이 원하는 걸 주지 못했어요. 음악을 만들 때 피처링을 고민하는 기준은 '저 사람이랑 작업하고 싶다'예요. 내가 하고 싶은 사람과 작업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면 베스트인 거죠.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충족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 사람들의 반응이 신경 쓰이나요. "예전엔 앨범을 내면 동네잔치 같았어요. 아는 사람들이 반응해 주고 응원해 주고 '다 좋다' 하는 분위기였죠. 그런데 어느 순간 냉정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저 친구는 왜 그러지' 하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또 내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삶에 도움이 됐다'는 좋은 말도 들었죠. 그런 것을 보면서 이 일은 '내가 혼자하는 것이 아니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 대중이 원하는 노래를 만들 건가요. "사실 사람들은 바라는 게 없어요. 나한테 무얼 바라겠어요, 그냥 앨범이 나오면 궁금해서 들어 보는 거죠. 내가 엄청난 기부를 한다고 알려져도 칭찬하지 않아요. 그냥 그런가 보다 할 걸요. 하지만 직업이 음악을 하는 사람이고, 그 음악을 통해 좋은 기운을 더 많은 사람에게 주면 좋지 않을까 싶은 거죠. 그게 내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대중의 시선을 신경 쓰게 됐고, 대중가요를 만들겠다는 마음을 먹었고요."
- 내는 노래마다 1위를 하는 기분은 어때요. "기쁘고 감사한 마음이 가장 먼저 들어요. 그런데 차트가 없어질 순 없겠죠? 차트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도 들어요. 차트를 벗어나 즐겁게 음악을 하고 싶어요. 난 즐겁게 음악을 만드는데 회사 분위기는 아니거든요. 창작은 내가 하고, 성과는 회사분들이 내는 거니까 그분들은 이 노래를 팔아 보겠다고 목숨을 걸고 뛰어요. 나는 그 사람들을 위해 잘해야만 하고 잘돼야만 해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승부욕도 생기고 경쟁심도 생기죠. 언젠가 이런 차트 순위를 떠나서 그때그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려주고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스타일의 노래들을 들려주고 싶어요."
- 노래의 흥행 요소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가사·제목·가수·글자 간격·커버 이미지·가수의 요새 삶 이런 모든 것이 다 섞여서 소위 말하는 '히팅 포인트'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시련을 겪은 뒤 나온 가수의 가사에 호기심이 생기죠. 좋은 커리어를 가진 가수가 투자해서 멋진 피처링 군단을 꾸리면 또 관심이 생기죠. 그런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요소들이 중요한 것 같아요. 단순히 음악이 좋아서 흥행할 수도 있는 거겠죠."
- 차트 1위 가수인데 컬래버레이션 제안이 수월하겠어요. "아니에요. 쉽지 않아요. 무턱대고 같이하자고 할 수 없으니까 나부터 자신이 있어야 해요. 나는 가수 이전에 프로듀서 마인드가 있어서 피처링 아티스트가 주인공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 커요. 믹싱할 때도 피처링 목소리를 더 크게 하기도 해요. 시간·목소리·에너지를 써서 같이해 주는데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댓글도 내 노래에 대한 칭찬보다 피처링한 가수에 대한 칭찬이 있을 때 가장 뿌듯해요. 내 의도대로 된 거니까요."
- 이센스와 한 컬래버레이션은 어떻게 성사됐나요. "'말라깽이'라는 노래가 있으니 하자고 전화했어요. 형이 '살이 많이 쪘는데 괜찮겠냐'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목만 '말라깽이'니까 상관없다고 스튜디오로 불렀죠. 형이 한 시간만 달라고 하더니 가사를 쓰고 완성됐죠."
- 디스곡 느낌이 나요. "풍자일 수는 있지만 디스는 아니에요. 자기 비하가 들어간 가사고, 내 솔직한 삶 이야기죠. 노래 테마는 '생긴 대로 살 거야'예요. 세상엔 어떤 기준들이 있잖아요. 사람은 모두가 다른데 기준은 하나라서 생긴 대로 사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난 감사하게도 생긴 대로 살고 있어요. 누군가의 시선엔 제멋대로인 것처럼 보이겠지만 나름대로 치열한 삶을 사는 현대인들을 위한 곡이에요."
- 실제로도 연봉 2배·몸값 2배인가요. "정말 돈을 많이 벌었냐고요? 재밌네요. 내가 '인터뷰'라는 노래를 썼는데 '연봉이 얼마냐'는 가사가 있어요. 남의 연봉은 정말 궁금한 주제죠. 나 같아도 클릭할 거예요. 발매하면 들어 주세요."
- 효자곡은 뭔가요. "요즘엔 '눈'이에요. 날씨가 점점 추워지기도 하고, 올여름은 정말 더웠는데도 굉장히 많이 들으시더라고요. 에어컨을 세게 틀고 추운 상태에서 들으신 걸까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눈'이 효자곡이에요."
- 김건모와 한 협업은 어떤 음색일지 기대돼요. "머지않아 만나 뵙기로 했어요. 자신 있게 떳떳하게 인사드리려면 좋은 곡이 있어야 해요. 아직 만든 건 없지만 준비를 잘해서 좋은 곡을 가져갈 거예요. 나도 기대되거든요."
- 협업 제안이 들어오기도 하나요. "회사를 통해 들어왔는데 나한테 안 닿는 건지, 아니면 처음부터 의뢰가 없는 건지 모르겠지만 이야기가 들리지 않아요. 아무래도 간판을 걸어야겠어요. '나 일합니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