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중토크③] 자이언티 "얼떨결에 된 가수, 10주년 목표는 성숙한 남자"

가수 자이언티((Zion.T·본명 김해솔·30)는 세상과 멋지게 인사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트레이드마크인 얄팍한 선글라스를 벗고 자신을 둘러쌌던 높고 두꺼운 벽을 한 겹 걷어 냈다. 전시회나 미술관 구경도 잦아졌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평소 열렬한 팬심을 드러내 온 레드벨벳 슬기와 협업한 '멋지게 인사하는 법'을 발매하고, 매일같이 라디오 방송국 출근 도장을 찍으며 "어떻게 하면 방송을 더 잘할 수 있나요?"라는 궁금증도 생겨났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의도치 않은 신비주의 가수가 된 자이언티. '양화대교'의 빅히트 이후 음악은 더 이상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세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대중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무모한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 모습을 보여 주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음악을 만들자"는 다짐이 첫 번째였다.

자이언티는 그 다짐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술을 즐기지 않는 그가 취중토크에 응한 것도 이 때문이다.

 

>>2편에 이어





- 본인이 생각하는 '음색 깡패'는 누군가요.
"음원 차트를 들어가 보시면 나와 있어요. 모두가 음색 깡패죠. 음색이 좋으니까 가수를 하는 거죠. 사실 난 '깡패'라는 단어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 누구도 때려 본 적이 없는데 그 수식어가 붙네요."

- 듣고 싶은 수식어가 있나요.
"부끄럽지만 믿고 듣는 말이 좋더라고요. 신뢰 관계가 생긴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인데, 내 노래를 신뢰한다는 말이 생겨서 정말 감사했어요."

- 반대로 부담은 없나요.
"약속드릴 수 있는 건 있어요. 앞으로 내는 노래들이 전에 발표한 곡보다 더 좋으리란 보장은 없어요. 그런데 분명한 건 재미있을 거예요. 그래서 믿고 들어도 돼요. 확실히 재미있을 거니까요."

 

- 비비드 크루는 언제쯤 뭉칠까요.
"뭉쳐서 해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 크죠. 로꼬가 입대를 앞둬서 같이해 보려고 연락하긴 했어요. 같이하자고 곡을 보내고, 로꼬에게 가기 전에 3곡만 쓰고 가라고 했죠. 제대한 뒤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빅뱅 형님들이 생각나네요. 승리씨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 더블랙레이블 수장인 테디는 어떤 대표인가요.
"정말 믿고 따라 주고 내가 무얼 하건 지지해 주세요. 맘대로 트랙리스트를 바꾼다고 변덕을 부려도, 발매 며칠 전에 노래를 만들겠다고 해도 다 해 보라고 해요. 테디 형은 본인이 지나온 길이라서 겪어 봐야 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내가 헤맬 때도 곁에서 봐 주기만 하세요. 돌고 돌아와 테디 형에게 결과를 보여 주면, 아무 말을 안 하는데도 이미 조언을 다 들은 기분이 들어요. 헤매다가 길을 잃는 사람이 있고 길을 찾는 사람이 있는데 테디 형은 나를 후자로 봐 주고 믿고 기다려 주시죠."

- 까다롭게 작업하는 이유가 있나요.
"난 사라져도 세상에 곡은 남으니까요. 나중에 내 아이들이 들을 노래기도 하죠. '아빠가 이런 것들을 만들었다'라고 보여 줄 테니 그렇게 생각하면 까다로워도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치열하게 해요. 예전엔 녹음실을 집처럼 생각하고 지냈어요. 어떻게 그랬나 싶을 정도로 오래 있었어요. 요즘엔 정확도가 높아져서 전보다 작업하는 시간이 짧아졌어요. 지금 끝낼 수 있겠다 싶으면 그때 녹음을 시작해요."

- 팬이 보낸 이메일에 담긴 내용을 가사로 쓴 곡이 있다고요.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라는 노래예요. 팬분이 기분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글을 몇 번이나 썼다 지웠다 반복하면서 메일을 보냈는데 아직 답장이 오지 않았어요. 개인적인 글이 세상에 알려지는 기분을 나는 알거든요. 지금은 익숙하지만 처음 그 경험을 했을 때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내 이야기를 왜 사람들이 다 알아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데 나는 그러지 않으면 음악을 만들 수 없으니까 해야만 했던 거죠. 팬분은 자신의 글이 가사에 엮인다는 게 아마 처음일 거예요. 크레디트에도 '디어. 자이언티'라고 표기했죠. 그분과 연락이 닿아 저작권료를 받아 가시면 좋겠어요."

 

- 성형설이 있더라고요.
"알고 있어요. 어이없더라고요. '아이 필 프리티'라는 영화를 비행기에서 봤는데 그런 것 같아요. 난 달라진 게 하나도 없고 단지 오랜만에 활동하는 것뿐이에요. 왜 성형설이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 선글라스를 벗은 눈 때문일까요.
"의도치 않게 가수가 돼서 내 나름대로의 임시 조치로 선글라스를 썼어요. 내성적인 성격을 가릴 만한 무엇이 필요했죠. 다쳤는데도 뛰어야 한다면 붕대를 감아야 하잖아요. 내게 선글라스는 붕대 같은 거였죠. 그런데 오래 끼다 보니 내 캐릭터가 됐어요. 과거의 내 모습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선글라스를 끼고 깜깜하게 어떻게 다녔나 몰라요. 요즘엔 사람들과 눈을 봐요. 알아봐 주는 사람도 많고요. 사람을 볼 때 눈을 보고 판단한다고 하잖아요."

- 2년 뒤 10주년의 모습은 어떨까요.
 "의도치 않게 데뷔하게 됐지만 10주년의 내 모습은 의도한 대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의도와 목적이 분명하면 좋겠어요. 당장의 성취보다 섣불리 이룰 수 없는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려고요. 성숙한 남자의 모습이면 좋겠어요. 그동안 나만 챙기고 살았는데 앞으로는 주변도 챙기는 괜찮은 사람이길 바라요. 요즘엔 연락도 진짜 잘 받거든요. 문제는 이제 연락이 안 와요. 늦었나 봐요. 그래도 늦었을 때가 제일 이른 거라고 하잖아요. 팬들과 주변부터 챙겨야겠어요. 팬미팅 부터 시작해 볼까요?"

황지영 기자
사진=김진경기자
영상=이일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