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자이언티((Zion.T·본명 김해솔·30)는 세상과 멋지게 인사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트레이드마크인 얄팍한 선글라스를 벗고 자신을 둘러쌌던 높고 두꺼운 벽을 한 겹 걷어 냈다. 전시회나 미술관 구경도 잦아졌고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대화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평소 열렬한 팬심을 드러내 온 레드벨벳 슬기와 협업한 '멋지게 인사하는 법'을 발매하고, 매일같이 라디오 방송국 출근 도장을 찍으며 "어떻게 하면 방송을 더 잘할 수 있나요?"라는 궁금증도 생겨났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의도치 않은 신비주의 가수가 된 자이언티. '양화대교'의 빅히트 이후 음악은 더 이상 혼자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세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대중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무모한 욕심을 내는 것은 아니다. "있는 그대로 모습을 보여 주고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음악을 만들자"는 다짐이 첫 번째였다.
자이언티는 그 다짐 안에서 다양한 시도를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술을 즐기지 않는 그가 취중토크에 응한 것도 이 때문이다.
- 술을 아예 안 먹나요. "못 마시진 않지만 잘 안 마셔요. 해외 공연 때문에 호텔에 장시간 묵었을 때도 기본적으로 나오는 맥주에 손도 안 댔어요."
- 금주하는 이유가 있나요. "20대 초반에는 형들을 따라다니면서 마셨죠. 그 후에는 나와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마시지 않아요. 술을 마시고 실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술이 싫어졌어요. 맨 정신으로 보면 멀쩡한 사람인데 술을 마시고 실수하는 모습이 안타까웠어요. 충분히 맨 정신으로도 즐거울 수 있는데 말이죠."
- 지인들과 만나면 무얼 하나요. "스튜디오에서 만나요. 지인들이 스튜디오에만 있거든요. 음악 작업을 하기 위해 만나는 것도 아니고 그냥 스튜디오로 가는 거예요. 드라마도 보고 이야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작업도 할 수 있죠."
- 음악 외에 관심사는 뭔가요. "얼마 전에 가족이 된 개를 잘 키워 보고 싶어요.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요리가 10개 정도 되면 좋겠고요. 음악과 관련이 있지만 기타 연주를 잘하고 싶어요."
- 스트레스 해소법이 있다면요. "정말 최선을 다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예요. 멍하게 있는 거죠. 그러다 영감이 떠오르기도 해요. 대부분 노래가 멍하게 있다가 나오는 것 같아요. 절친인 크러쉬가 '멍 때리기 대회'에 나가서 우승했는데 정말 웃긴 일인 것 같아요. 웬만큼 작업한다는 분들은 다 멍 때리기를 잘할 걸요. 나도 일가견이 있고요."
- '멋지게 인사하는 법'은 어떻게 탄생됐나요. "대중가요를 만들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가볍게 들을 수 있고 기분 좋게 소비할 수 있는 음악이요. 명절에 잘 만든 로맨틱 코미디 영화 같은 노래죠."
- 명절 영화처럼 흥행을 목표했나요. "흥행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어요.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는 주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음악을 하고 싶었죠. '뮤지션들이 보고 자극받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업해 왔는데, 어느 시점부터 사람들이 내 노래를 많이 듣는다는 게 느껴졌어요. 더 이상 주변 사람들과만 공유하는 음악이 아니라는 걸 알았죠. 그 후부터 기존에 해 온 마니악한 음악을 만들면서도 대중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 양현석 YG 회장은 노래에 어떤 반응이었나요. "노래가 나오기 전에 먼저 들어 보셨는데, 노래를 듣고 건물 밖으로 나가는 길에 흥얼거리는 걸 들으셨다는 관계자의 제보를 받았어요. 가사를 부르시며 나갔다고 들어서 '아 됐다!' 하는 기분이 들었죠. 평소엔 대화하기 어려운 분이에요. 가요계 대선배님인 데다 회사 수장이니 어려울 수밖에 없죠. 따로 대면할 기회는 없지만 더블랙레이블 사무실에 가끔 오시면 봬요. 다행히 내 노래를 좋아해 주세요."
- 레드벨벳 슬기씨와 한 작업은 어땠나요. "그 점이 걱정됐어요. 그동안 내가 작업한 분들은 서로 작업 스타일까지 알고 지내던 사람들이라 '이렇게 해 주세요'라고 말하면 됐거든요. 러비(레드벨벳)긴 하지만 실제로 슬기씨를 마주친 적도 없고 회사도 다르잖아요. 작업하는 방식이 서로 다를 테니까 내가 어떤 식으로 핸들링해야 작업물이 잘 나올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 슬기씨가 했던 말이 있나요. "배운 게 많다고 했어요. 난 디테일에 신경을 굉장히 많이 써요. 녹음하고 곡을 작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 쉽게 놓칠 수 있는 숨소리나 발음은 대화할 때도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같은 말을 어떻게 전달하냐에 따라 누군가는 화를 내고 누군가는 슬퍼하죠. 슬기씨에게 사소한 것들에 대한 디렉션을 줬는데 많이 알아챘어요."
- 실제 연애 스타일은 어떤가요. "인사법은 전혀 고민하지 않죠. 연애에 있어서 좋으면 좋다고 적극적으로 말하고 다가가는 스타일이에요. '멋지게 인사하는 법'은 나와 전혀 다른 대상을 설정하고 쓴 곡이죠."
- 어떤 이성에게 끌리나요. "감성이 맞는 순간 매력을 느껴요. 같은 영화를 보고 비슷한 생각을 한다거나, 그 감성이 특별하다고 느껴질 때 좋아요. 거기서 대화가 많이 시작돼요. 마음이 정해지면 바로 적극적으로 다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