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인구의 증가와 함께 치매 환자도 급격히 늘고 있다. 중앙치매센터가 내놓은 '대한민국 치매 현황 2017'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나라 65세 이상 노인 678만 명 중 치매로 추정되는 환자는 66만1707명으로, 10명 중 1명꼴이다. 80세 이상 노인 중에는 4명 중 1명꼴로 치매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치매는 대표적인 노인성 질환이다. 아직 완치가 가능한 치료제가 나오지 않아 치매 치료에 있어 조기 발견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찍 발견해 치료하고 관리하면 치매의 진행을 늦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치매 확진까지 과정이 힘들고 시간이나 비용이 많이 들어 환자나 보호자 입장에서 부담스럽다. 이에 지난달 간단하게 치매 여부를 감별할 수 있는 방법이 공개됐다. 삼성서울병원이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함께 7분짜리 드라마 한 편만 봐도 치매 여부를 감별할 수 있는 진단법을 개발했다. 최근 삼성서울병원을 찾아 내달 말께 상용화될 예정인 드라마 치매 진단법(정식명: 소셜 이벤트 메모리 테스트·SEMT)을 직접 해 봤다.
7분 드라마 보고 15분 문제 푸니… "정상입니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 일원동의 삼성서울병원 한 병실에 마련된 가상현실(VR) 기기를 착용하자 바로 드라마가 시작됐다.
드리마의 내용은 간단했다. 생일을 맞은 1명이 초대받은 6명을 소개하고, 이들은 각자의 이름과 생일자와 관계, 사는 곳, 직업, 취미, 가지고 온 생일 선물 등을 말한다. 각자의 소개가 끝나면 생일자의 진행으로 초대자들의 이름과 직업 등을 맞히는 게임이 진행된다.
VR 기기를 착용하고 있어서 생일 파티에 참석한 것처럼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면 생일자 중심으로 좌우에 앉은 초대자들을 자세히 볼 수 있다.
게임이 끝나면 드라마도 끝난다. 7분20초 분량인데도 금방 끝나는 느낌이었다.
이어서 드라마 내용과 관련한 문답이 진행됐다. 질문은 주관식 36개와 등장인물 문제 18개·장소와 등장인물 매칭 문제 48개(객관식) 등 102개가 주어졌다.
'생일자의 과외 선생님 이름은' '초등학교 동창의 직업은' '엄마 친구가 몸에 걸친 액세서리는' 등 같은 간단한 질문이 주관식과 객관식으로 제시됐다.
이들 질문은 치매에 걸릴 확률을 높인다는 아밀로이드 베타 물질이 쌓이면 연관 기억이 떨어진다는 점에 착안해 연관 기억을 집중적으로 체크하는 내용으로 만들어졌다.
질문 내용은 어렵지 않지만 맞히는 것은 쉽지 않았다. 초대자 6명의 이름과 직업 등을 7분 만에 다 외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초대자들이 걸친 액세서리를 맞히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문답 막바지 즈음에는 기억이 뒤죽박죽되는 느낌이었다.
문제 102개를 푸는 데 15분가량 걸렸다. 미니 드라마를 보고 문답까지 진행하는 데 30분도 안 걸린 것이다.
문제를 푸는 것은 꽤 어려웠지만 결과는 다행히 3가지 항목(자유 회상·얼굴 인식·장소 매칭)에서 모두 상위권 점수가 나왔다.
실생활서 인지 기능 검사… 결과 정확도 90% 이상 이번 드라마 치매 진단법은 치매를 감별하기 위해 많이 활용되는 신경심리검사(SNSB)와 비교해 '생일 파티'라는 실생활에서 자주 접할 법한 환경에서 인지 기능이 제대로 작동되는지 여부를 알아본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또 1시간 이상 걸리는 신경심리검사에 비해 검사 시간이 짧은 것도 차별점이다.
이 진단법 개발을 주도한 삼성서울병원 신경과 나덕렬 교수의 연구팀은 "기존 검사는 여러 단어를 나열하고 제한된 시간 안에 외우라는 일종의 시험 같아서 노인들이 매우 어려워하고 힘들어한다"며 "하지만 이 진단법은 드라마 형식으로 된 영상을 보는 것이고 검사 시간이 짧아 노인들에게 부담이 없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진단 결과의 정확성도 높다고 했다. 주관적 인지 기능 장애 환자나 경도인지 장애 환자, 치매 환자 등 52명을 대상으로 검증한 결과, 시험 정확성을 가늠하는 민감도가 93.8~95.1%였다는 것.
또 답변 내용만으로도 정상·경도인지 장애·치매 등 어느 쪽에 속하는지 감별할 수 있다. 연구팀은 "경도인지 장애를 보다 세분화해 치매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은 아밀로이드 양성인 경우도 가려낼 수 있다"며 "이 경우 향후 확진 시 필요한 핵의학검사(PET) 대상자를 추릴 수 있어 불필요한 검사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치매 확진를 위해 신경심리검사·뇌영상검사(PET·MRI) 등을 받는데, 예약과 검진·결과까지 나오는 데 한 달 넘게 걸리고 비용은 100만원이 휠씬 넘어간다.
나덕렬 교수 연구팀은 이번 드라마 치매 진단법을 올 연말까지 건강검진센터를 중심으로 1차 상용화하고 내년 상반기에 노인정이나 치매지원센터에 2차 보급할 계획이다.
상용 시에는 정상인 600명을 대상으로 한 표준화 작업으로 도출한 치매 지수를 정확히 산출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나덕렬 교수는 "치매를 되돌릴 방법은 아직 없지만 늦출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만큼 간편하고 손쉬운 검사로 조기 진단이 이뤄지는 토대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