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자락의 찬 공기가 코끝을 스치면 경상남도 산청에 도착이다. 산의 정기가 여기로 다 모이는지 유난히 ‘기운’이 좋은 산청에는 시험을 앞둔 자식을 둔 부모도, 몸이 안 좋은 부모를 모시는 자식도 시간을 내어 찾는다.
기를 내어 준다는 바위를 한껏 끌어안고 주먹을 쥐니 힘이 솟고, 하늘의 기운을 품은 바위에 머리를 대고 소원을 빌고 나니 뭘 해도 잘될 것 같은 느낌이다.
상쾌한 산 공기는 삶에 지친 정신을 맑게 해 주고, 한약재가 달여지며 내는 한방 내음은 자신의 건강을 돌아보게 했다. 마음까지 건강해지는 곳, 이곳은 산청 동의보감촌(한방테마파크)이다. 땅과 하늘의 기운을 받다 동의보감촌의 맨 꼭대기, 지리산과 가장 가까이 위치한 곳에 '한방기체험장'이 있다. 기천문을 지나니 사방에서 기운을 뿜어낸다. 기천문을 뒤로하고 정면에는 '동의전', 왼편에는 '복석정'이 있고 뒤로 돌아가면 일명 ‘기바위’를 만날 수 있다.
가장 가까운 복석정에 눈길을 돌렸다. 복석정은 솥처럼 생긴 바위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지만, 만민을 이롭게 하는 복(福)의 의미가 강하다.
이 솥바위는 세 가지 능력이 있는데 화가 복이 되는 기운을 품어 자신을 살아나게 하는 ‘전화위복’이 첫 번째 능력이며, 늙은 말의 지혜라는 '노마지지'가 두 번째 능력으로 베풂이라고 풀이한다. 여기에 재덕을 품어 쌓거나 활력을 베푸는 것이 마지막 능력이다.
복석정은 하늘과 땅에서 충만한 기운을 담아 놓았다가 사람에게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모두에게 그 기운을 나누진 않는 듯 보였다.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은 바위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손으로 무언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는데, 하나같이 100원짜리 동전을 바위 위에 바로 세우는 것에 몰두했다.
동의보감촌의 한 관계자가 “복석정 위에 동전을 세우면 원하는 바가 이뤄진다”고 귀띔해 동전 세우기에 바로 집중했지만 실패했다.
동의전의 뒤편으로 돌아 들어가니 거북 등딱지처럼 생긴 귀감석이 보였다. 귀감석은 거북처럼 생겼다는 의미가 있지만 하늘 아래에 좋은 일이 모두 적혀 있다는 뜻도 있다.
이곳은 나 자신의 기를 모으고 받는 곳이기도 하고, 가족의 무병장수와 소원성취를 위한 명소로도 알려져 있다. 한쪽에는 이참 한국관광공사 전 사장이 이 귀감석에서 기를 받고 사장에 임명됐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두 팔을 쭉 뻗고 귀감석에 코를 대는 것이 기운을 한 몸에 받는 방법이다. 이것을 시험해 보려면 엄지와 검지를 붙여 힘주고 다른 사람이 두 손가락을 떼는 일을, 기운을 받기 전과 후에 해 봐 차이가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다.
땅의 기운을 귀감석에서 받았다면, 하늘의 기운은 석경에서 나온다. 동의전의 왼편 계단을 조금 오르니 하늘로 뻗은 기와 아래 석경이 보인다. 이곳에선 석경 아래, 이미 많은 이들이 기운을 받기 위해 머리를 대 반질반질해진 돌에서 기운을 받을 수 있다. 여기에선 두 손을 모으고 돌에 머리를 갖다 댄 뒤 소망하는 바를 곱씹는다.
동의전의 내부도 궁금해졌다. 안으로 들어가니 관광객들이 ‘한방힐링 상설 체험’ 한방온열 체험 중이었다. 온열 체험은 일라이트 안락의자에 누워 해독으로 내 몸을 열고, 동의보감 기를 충전하는 것이다.
피톤치드 향기를 맡으며 누운 안락의자는 바깥의 찬 공기를 단번에 잊게 해 줬다. 배 위에 찜질기를 올린 뒤 양손을 가지런히 모아 온몸을 담요로 감싸고 누워 있던 10분 동안 노곤함이 밀려왔다.
한방온열 체험의 가격은 30분당 5000원이다. ‘공진단’ 직접 만들어 볼까
동의보감촌에는 약초를 활용한 세정제 만들기, 공진단 직접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전통문화 체험관광 프로그램으로 선정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그중 동의보감한의원에서 진행하는 ‘공진단 만들기’ 체험은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단연 인기다. 내가 만든 공진단을 직접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다니, 꽤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다. 이미 입소문이 나면서 산청 주민들보다 주말에 시간을 내어 수도권과 진주·대구·부산 등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고 했다. 동의보감한의원 김종권 원장은 20여 년 동안의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산청으로 내려와 진료를 시작했다. 이곳에서 김 원장은 진료와 함께 동의보감촌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한방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왕뜸 체험, 십전대보탕 약첩 싸기, 한방 비누와 치약 만들기 그리고 공진단 만들기 등이 코스다.
한방 체험과 한옥 스테이가 합쳐진 '한방 스테이'도 체험할 수 있다. 짧게는 1박 2일이지만 길게는 한 달 정도의 기간을 잡아 휴양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공진단에 들어가는 ‘사향’은 의약품에 속해 효능을 보려면 반드시 한의사의 처방과 조제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 때문에 공진단 만들기 체험도 동의보감한의원 소속 전문 의료인이 함께 모든 과정에 참여한다.
먼저 한의원에서 미리 빚어 온 약재를 쪼개 주무르며 안의 기포를 빼 준다. 그 뒤 약재를 동그랗게 만드는 과정에 정성을 담는다. 동그랗게 만들어진 약재에 금박을 씌워야 하는데, 이 과정이 가장 쉽지 않다.
얇은 금박은 쉽게 찢어지고 콧바람에도 휘날리는데, 한껏 숨을 참고 검지로 약재를 앞뒤, 양 옆으로 굴려 가며 빈틈 없이 금칠이 돼야 성공이다.
이날은 공진단 세 알을 만들었는데, 한 알은 그 자리에서 먹을 수 있었다. 천천히 씹어 침으로 녹이듯 먹어야 제대로 섭취하는 방법이다. 나머지 두 알은 각각 담아 포장해 선물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자신에게, 혹은 부모님 등 의미 있는 누군가에게 선물할 수 있도록 편지도 함께 담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