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돌체 앤 가바나(D&G)가 중국 시장에서 퇴출당할 위기에 처했다. 중국 모욕 논란에 휩싸인 광고를 향한 분노가 잦아들지 않는 데다, 인종차별이라고 비판받았던 D&G의 과거 광고까지 재소환되면서 본격적인 불매운동이 시작됐다.
사태가 악화일로로 치닫자 23일 D&G의 창업자인 도메니코 돌체와 스테파노 가바나는 직접 출연한 사과 영상을 웨이보에 올렸다. 그러나 망가진 브랜드 이미지를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은 명품 브랜드의 매출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세계 최대 시장이다. 베인앤컴퍼니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명품 시장 매출에서 중국 소비자가 차지한 비중은 32%에 달했다. 2025년엔 이 수치가 절반에 가까운 46%까지 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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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영상 파문으로 패션쇼 취소
이른바 ‘D&G 사태’는 지난 18일 공개된 패션쇼 홍보 동영상이 중국을 모욕했다는 논란에 휩싸이면서 시작됐다.
21일 상하이에서 개최할 예정이었던 ‘더 그레이트쇼’를 홍보하는 이 영상에는 동양인 모델이 젓가락으로 스파게티와 피자 등을 먹는 모습이 담겼다. 이같은 내용은 중국의 전통을 무시하고, 동양인이 타문화에 무지하다는 편견을 드러낸 인종차별의 전형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뒤이어 공동 창업자인 스테파노 가바나가 인스타그램에서 논쟁을 벌이다 중국을 모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중국인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다. 공개된 채팅창에 따르면 가바나는 중국을 “똥 같은 나라”“무식하고 더럽고 냄새나는 마피아”라고 표현했다.
스테파노 가바나는 “계정이 해킹당했다”며 “나는 중국과 중국 문화를 사랑한다.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정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지만, 그의 해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중국의 SNS 웨이보는 D&G를 향한 비난과 성토로 들끓었고, 중국 공산당 산하조직인 공청단까지 나서 입장을 발표했다. 공청단은 웨이보를 통해 “우리는 외국기업이 중국에 투자하는 것을 환영하지만, 중국에서 경영하는 외국기업은 당연히 중국과 중국인을 존중해야 한다”며 “이는 어느 기업이든 다른 나라에서 사업을 할 때 갖춰야 하는 기본이다”라고 밝혔다.
이어 장쯔이(章子怡)·리빙빙(李冰冰)·천쉐둥(陈学冬) 등 스타들이 패션쇼 불참을 선언했고, 천쿤(陳坤) 등 패션쇼를 위해 이미 상하이에 도착해 있던 배우들도 바로 발길을 돌렸다. 브랜드 홍보모델이었던 디리러바는 계약을 취소했다. 모델 에이전시는 소속 모델들의 출연을 보이콧했다. 22일 중국의 온라인 패션 매체인 징 데일리는 중국 정부 역시 패션쇼 시작 몇 시간 전 취소를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D&G가 상하이에서 처음 기획한 대형 패션쇼는 결국 이렇게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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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몰에서 사라진 D&G…전국적 불매운동
22일엔 중국의 주요 온라인상거래 업체가 D&G 불매운동에 동참한다는 보도가 줄줄이 나왔다.
징 데일리에 따르면 중국의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 티몰(Tmall), 징둥닷컴(JD.com)에선 D&G 상품이 모조리 사라졌다. 이들은 “D&G 제품을 일체 판매하지 않겠다”는 공식 성명까지 발표했다. 중국의 명품 온라인쇼핑몰 세쿠도 “도덕성과 성실성이 결여된 업체와는 일을 함께할 수 없다”며 D&G 판매 중단 방침을 밝혔다.
오프라인 매장으로도 불매 운동은 확산 중이다. 레인크로포드 백화점은 “우리는 브랜드가 행동의 문화적 함의를 인식하고, 고객이 자신의 가치를 훼손당했다고 느낄 때의 반발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매장에서 D&G 제품을 뺐다. 하이난성의 하이커우(海口) 국제공항 면세점에서도 D&G의 제품은 사라졌다.
중국 기업만이 아니다. 영국 런던에 본사를 둔 ‘육스-네타포르테그룹’ 역시 자사의 온라인 플랫폼인 ‘육스(Yoox)’‘네타포르테’ 등의 판매 목록에서 D&G 제품을 제외시켰다. 패션계의 아마존으로 불리는 글로벌 패션몰조차 중국인의 막강한 영향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의미다.
결국 D&G는 백기를 들었다. 브랜드의 창업자인 돌체와 가바나는 23일 웨이보에 공개한 영상에서 “우리가 중국에 한 일들에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중국을 사랑해 왔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모든 중국 문화를 존중하겠다”며 용서를 구했다. 마지막엔 중국어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응은 여전히 차갑다. 네티즌 댓글은 “해킹당했다더니 이제는 사과하냐” “중국 시장을 잃을 수 없으니 연기한다” “중국에서 나가라” 는 등의 내용이 주를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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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화보 논란…상습적 인종차별?
사실 이런 반응은 D&G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 부적절한 광고 논란을 일으킨 게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D&G는 과거에도 차별적인 광고로 수차례 비판을 받았다.
지난 4월 공개한 ‘돌체 앤 가바나는 중국을 사랑한다(Dolce & Gabbana Loves China)’ 광고 캠페인도 그중 하나다.
만리장성과 '후통(胡同)'이라 불리는 중국의 뒷골목 등 베이징의 명소에서 촬영된 광고사진은 D&G를 입은 모델들이 현지인들과 섞여 있는 모습을 담았다. 사진은 즉시 역풍을 몰고 왔다. “D&G가 의도적으로 베이징의 후진적인 면만 보여줬다” “왜 가난한 현지인만 찍었냐”는 반발이었다. 팔로워가 약 300만 명에 이르는 패션블로거가 비판에 가세하면서 D&G를 불매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이 일은 비교적 금세 마무리됐다.
2016년 봄/여름 시즌 캠페인 화보 광고에서도 D&G는 동양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을 드러냈다. 다양한 인종의 모델을 등장시킨 화보에서 동양인 모델만 맨손으로 게걸스럽게 음식을 먹는 모습으로 담아낸 것이다. 백인·흑인 모델은 포크를 사용해 식사했다. 또 동양인 모델만 턱받이를 하고 있다는 점도 인종차별적인 요소라는 지적이 나왔다.
2013년엔 흑인 노예 여성을 연상시키는 귀걸이를 내놓았다가 인종차별 논란에 휩싸였다. 당시 흑인 여성 흉상 모양으로 만든 귀걸이를 만들면서, 머리에 수건을 두르는 등 흑인 식모의 모습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당시 엘튼 존 등이 D&G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집단 성폭력을 미화한 화보도 있었다. 여성이 바닥에 누워있고 남성 5명이 이를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담은 2007년 화보였다. 미국 최대 여성단체 ‘NOW’ 재단은 당시 이 광고를 ‘모욕적인 광고’로 선정했다. D&G는 비난 여론이 퍼지자 이 화보의 사용을 중단했다.
이처럼 부적절한 행태를 반복하며 ‘백인 남성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백인 모델로 보여지고, 백인이 소유하는 이미지를 강화한다’는 지적을 끊임없이 받았음에도 D&G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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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는 이 사건으로 Dead & Gone”
이 때문에 이번 사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중국인의 ‘보이콧’은 사업의 존폐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미 온라인에선 회복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가운데, 중국의 패션 바이어인 라이언 멩은 블룸버그에 이렇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