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임 후 2015년까지 FC 서울과 꽃길을 걸었던 최용수 감독. 2018년 다시 돌아왔을 땐 함께 최대 위기에 몰렸다. K League 제공
최용수 감독은 FC 서울에서 '꽃길'을 걸어왔다. 지난 2011년 황보관 감독이 사퇴한 뒤 서울 감독대행의 자리에 올랐다. 하위권에서 허덕이던 서울을 정규 리그 3위로 끌어올리는 파란을 일으켰다. 정식 감독으로 승격한 첫해인 2012년 최 감독은 압도적으로 K리그 우승을 이끌며 경쟁력을 당당히 인정받았다. 이후 서울은 '최용수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2013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준우승, 2015년 FA컵 우승 등 서울의 영광에는 언제나 최 감독이 중심에 있었다. K리그 최단기간, 최연소 100승 고지에 오르며 K리그 전체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우뚝 섰다. 최 감독이 이끈 서울이 거둔 성적 중 최하위가 4위였다. ACL 단골 출전팀이었다. 최 감독의 서울은 언제나 우승 후보였고, K리그의 '리딩 클럽'이었다.
2016년 최 감독이 중국 슈퍼리그 장쑤 쑤닝으로 떠남과 동시에 서울도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2016년 서울이 K리그 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전북 현대의 징계로 인한 영향이 컸던 것을 부정할 수 없다. 2017년 5위로 마무리지으며 ACL 출전권을 얻지 못하는 굴욕을 당했다. 시작에 불과했다. 2018년 서울은 역대 '최대 위기'로 몰렸다.
황선홍 감독(왼쪽)과 이을용 감독대행은 위기에 빠진 서울을 반등시키지 못했다. K League
황선홍 감독이 시즌 초반에 사퇴, 이을용 감독대행이 지휘봉을 넘겨받았지만 서울은 반등하지 못했다. 구단 창단 이후 첫 하위 스플릿 추락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이 감독대행이 물러났고, 서울은 소방수로 최 감독을 다시 불러들였다. 서울은 지난 10월 11일 최 감독의 복귀를 공식 발표했다.
다시 꽃길을 걸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서울의 '전설'이 복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 감독의 서울 앞에 펼쳐진 길은 '가시밭길'이다. 최 감독은 자신의 축구 인생에서 가장 험난한 가시밭길 앞에 섰다.
서울은 지난 1일 상주와의 최종전에서 0-1로 패배하며 승강 플레이오프를 앞두게 됐다. K Leauge
서울은 지난 1일 상주시민운동장에서 펼쳐진 2018 KEB하나은행 K리그1(1부리그) 최종전 상주 상무와 경기에서 0-1로 패배했다. 이 패배로 서울은 K리그1 11위로 추락했다. 11위는 강등 가능성을 품었다는 의미다. K리그2(2부리그) 플레이오프를 통과한 팀과 승강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승리하면 1부리그에 잔류하고, 패배하면 2부리그 강등이다. K리그 전통의 강호 서울이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치러야 하는 굴욕적 상황까지 온 것이다. 서울의 상대는 부산 아이파크다. 오는 6일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승강 플레이오프 1차전, 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2차전이 펼쳐진다. 서울의 운명이 정해지는 데 180분이 남았다.
상주전에서 만난 최 감독은 "나는 꽃길만 걷지 않았다. 선수, 감독을 하면서 힘든 시기가 많았다. 하지만 선수와 지도자를 포함해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기"라며 "선수들 앞에선 웃어야 한다. 나마저 고개를 숙이면 팀이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속은 타들어 간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꼬인 실타래가 풀리지 않는다. 정말 괴롭다. 내 부족함에서 나온 결과다. 서울팬들에게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서울의 끝없는 추락. 오롯이 최 감독의 책임은 아니다. 최 감독은 팀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뒤 서울의 지휘봉을 잡았다. 아무리 최 감독이라고 해도 냉정하게 보면 짧은 시간 안에 무너진 서울을 정상궤도로 올리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이었다. 하지만 서울과 서울팬들은 최 감독을 향한 '최소한의 믿음'이 있다. 일단 최악의 위기에서 서울을 구해 내 줄 것이라는 신뢰다. 명가 부활은 그다음 이야기다. 그러기에 서울을 1부리그에 잔류시키는 것은 최 감독이 반드시 완수해야 할 임무다. 최 감독 역시 이를 위해 서울 지휘봉을 허락했다. 자신감이 있었기에 과감히 도전한 일이다. 최 감독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다. 여기서 물러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최 감독은 "바닥까지 왔다"며 마지막 2경기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 약속했다. K League
앞으로 2경기가 남았다. 최 감독은 "마지막 2경기 잘 준비할 것이다. 마지막까지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다. 180분이 남았다. 바닥까지 왔다. 물러설 곳이 없다"며 "팀을 잘 추스르겠다. 공격과 득점이 필요하다. 힘든 시기를 좋은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이번 고비만 잘 넘기면 서울에도 햇볕이 비칠 것이다. 서울팬들에게 희망을 제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약속은 했지만 상황이 녹록지 않다. 서울 선수들의 정신력이 완전히 무너진 상태다. 패배주의에 빠진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항상 K리그의 상위권에만 있던 선수들이기에 이런 위기를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 크다.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반면 부산은 K리그2 플레이오프에서 대전 시티즌을 3-0으로 완파하며 최고의 상승세를 탔다. 자신감도 충만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 감독은 다른 복잡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오직 기본에 집중한다. 최 감독은 "나는 특별한 감독이 아니다. 지금 위기에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기본에 충실할 것"이라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그는 "선수들은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심리적으로 쫓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여유를 가지라고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다. 심리적인 부분은 많은 대화를 통해 풀어 나가겠다. 포기하는 순간, 끝"이라고 강조했다.
독수리 앞에 펼쳐진 꽃길은 사라졌다. 서울의 전설적 감독 최용수도 지금 이 순간엔 없다. 강등과 잔류의 갈림길 앞에 선 위기의 감독일 뿐이다. 위기를 극복한다면 독수리는 다시 높이 날아오를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바닥까지 떨어졌기에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실함이 형성됐다. 반대로 그러지 못한다면 서울을 2부리그로 강등시킨 감독으로 영원히 낙인이 찍힌다. 엄청난 후폭풍이 불 것이 자명하다.
최 감독은 그의 인생 중 가장 냉정한 시험대 앞에 섰다. 그동안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그동안 꽃길을 걸을 수 있었던 이유, 위기의 순간에 터진 '승부사 본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본능에 서울의 운명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