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언니들의 등판이다. 연말 스크린을 점령한 여배우들의 기세가 연초에도 이어진다. 이쯤되면 활개치는 남배우들도 긴장할만 하다.
'미쓰백(이지원 감독)' 한지민, '국가부도의 날(최국희 감독)' 김혜수, '도어락(이권 감독)' 공효진 등 하반기 여배우 중심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해 작품성과 흥행성을 모두 거머쥐면서 '여배우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2019년에는 충무로를 대표하는 큰 언니들이 직접 움직여 더욱 화려한 라인업을 완성한다.
'미쓰백' 한지민은 데뷔 이래 가장 파격적인 변신과 성장한 연기력으로 각종 시상식 여우주연상을 휩쓸고 있다. '국가부도의 날' 김혜수는 "역시 김혜수"라는 찬사와 함께 국내 첫 IMF 영화를 완벽하게 성공시켰다. 극의 기둥으로, 기라성 같은 남자 배우들을 진두지휘하며 장르적 특성까지 살려낸 김혜수는 배우들의 배우로 그 진가를 확인시켰다. 또 사회 문제를 다룬 현실적 공감 스릴러로 알짜배기 틈새시장을 꿰찬 공효진도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해냈다.
사회 전반에 걸쳐 여성에 대한 시선과 인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방송계를 넘어 영화계에도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전보다는 여배우들의 설 자리가 많아진 추세다. 여배우 중심 영화 역시 만들어진 이상으로 만들어지고 있고, 또 그 이상으로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2019년 스크린은 이러한 분우기를 제대로 탈 예정. 상반기부터 라미란·문소리·전도연이 출격하고 13년만에 스크린으로 복귀하는 이영애도 신작을 선보인다. 쌓아둔 내공과 네일밸류만으로도 '역대급'이라 칭송받기 아깝지 않다.
먼저 빠르면 2월 전도연이 '생일(이종언 감독)'을 들고 관객들을 만난다. '생일'은 사고로 아이를 잃은 가족 그리고 남겨진 이들이 함께 서로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전도연은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박흥식 감독·2000)' 이후 18년만에 다시 만난 설경구와 호흡 맞췄다. 전도연은 돌아오지 못하는 아이에 대한 그리움 속에서도 마트에서 일하며 묵묵히 생계를 꾸려가는 순남 역을 연기했다.
최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김용훈 감독)' 촬영도 마친 전도연은 휴식기를 끝내고 2019년을 또 한 번 자신의 해로 만들 채비를 마쳤다. 관계자에 따르면 '생일'은 다소 무거운 소재와 캐릭터 특성 등으로 홍보를 최소화 할 예정이지만, 상처와 아픔을 연기로 승화해낸 전도연의 존재감은 스크린 전반을 지배할 것으로 보여 기대감을 높인다.
3월에는 문소리가 '배심원들(홍승완 감독)'로 돌아온다. '배심원들'은 2008년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국민참여재판의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영화다. 첫 국민참여재판에 어쩌다 배심원이 된 보통의 사람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문소리가 전국민의 이목이 집중된 첫 국민참여재판을 이끄는 재판장 김준겸 역을 맡아 새로운 여성 캐릭터의 저력을 자랑한다.
'배심원들'은 현재 3월 말 개봉을 사실상 확정짓고 최근 포스터 촬영을 진행하는 등 본격적인 움직임을 시작했다. '배심원들'의 또 다른 주연배우 박형식의 군 입대가 예정돼 있는 터라 개봉일과 스케줄 역시 박형식에 맞춰질 수 밖에 없다. 문소리는 함께 연기한 동료 배우이자 선배로서 흔쾌히 배려의 뜻을 내비쳤다고. 문소리는 '배심원들' 촬영에 앞서 "배심원으로 등장하는 모두가 주인공인 영화다. 마음을 모아 함께 잘 해냈으면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문소리는 누구보다 그 마음을 먼저 모으며 대배우의 면모를 이어간다
이와 함께 라미란은 생애 첫 주연 영화 '걸캅스(정다원 감독)'로 여성판 투캅스의 화려한 시작을 알린다. '걸캅스'는 전설적인 에이스 형사였지만 결혼 후 민원실 내근직으로 일하게 된 미영(라미란)과 사고 치고 민원실로 발령 난 초짜 형사 지혜(이성경)가 만나 우연히 범죄 사건을 쫓게 되는 코믹액션수사극이다. 라미란은 이성경과 티격태격 코믹 호흡을 맞췄다. 찰진 액션까지 신선한 시도의 중심에 라미란이 있다.
단역부터 조연, 그리고 주연까지 차근차근 제 영역을 넓혀 온 라미란이기에 첫 주연 영화, 그것도 두 여성이 이끄는 주연 영화의 주인공이 된 라미란에게 '걸캅스'는 어떤 작품보다 남다를 수 밖에 없다. 워낙 유쾌하기로 정평난 배우지만 '걸캅스'를 통해 그 정점을 찍지 않을까 흥미진진한 관심을 끌게 만든다. 벌써부터 관계자들 사이에서 "잘 빠졌다"는 입소문이 돌고 있는 영화는 상반기 개봉을 목표로 후반 작업에 한창이다.
마지막으로 '그 분'의 움직임에 많은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바로 이영애다. 이영애는 6년 전 실종된 아들과 생김새부터 흉터 자국까지 똑같은 아이를 봤다는 의문의 연락을 받은 정연이 낯선 마을로 아이를 찾아 나서며 벌어지는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를 담은 '나를 찾아줘(김승우 감독)'으로 '친절한 금자씨(박찬욱 감독·2005)' 이후 13년만에 스크린 차기작을 택했다. 지난 여름 촬영을 마쳤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이영애는 아들을 잃어버린 실의와 죄책감, 그리움으로 6년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아이를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정연으로 분해 자식을 잃어버린 부모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아픔부터,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 속 홀로 아들을 찾아 나서는 강인함 등 복잡한 감정이 응축된 입체적인 모성애 연기를 펼친다. 이영애의 컴백만으로 화제성은 따놓은 당상. 관계자에 따르면 이 같은 반응을 잘 알고 있는 이영애도 여러 방식으로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는 후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