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다면 협업하라'. 국내외 패션 업계가 이색 컬래버레이션(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패션의 고정관념을 허물고 보다 새로운 것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니즈를 충족하겠다는 것이다. 경기 침체에 따른 패션 부문의 매출 하락도 협업으로 돌파해 보겠다는 각오다. 협업 대상이 다양해졌다. 과거에는 전통적으로 인기가 있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을 파트너로 삼았다. 최근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인플루언서나 글로벌 스타를 형상화한 새로운 캐릭터, 명품 브랜드끼리의 컬래버레이션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요즘 가장 뜨거운 '협업' 파트너… BT21을 아시나요
글로벌 피트니스 브랜드 리복 클래식은 지난 19일 '우주 스타' 캐릭터 BT21을 적용한 '인스타 펌프 퓨리'를 출시해 주목받았다. BT21은 패션·뷰티 업계가 가장 손잡고 싶어 하는 '핫한' 파트너로 떠올랐다는 후문이다.
귀한 협업 상대인 만큼 리복 인스타 퓨리의 내용도 수준급이라는 평가다. 리복은 BT21 중 7개의 캐릭터에 맞춘 인스타 펌프 퓨리를 총 7종류로 출시했다. 색감·디자인·기능 면에서 공들였다. 소비자의 반응도 뜨거웠다. 리복의 한 관계자는 "지난달 27일부터 매주 한 개씩 디자인을 공개했는데, 패션 얼리어답터를 중심으로 인스타 펌프 퓨리 특유의 대담한 디자인과 BT21 캐릭터를 활용한 컬러감이 화제가 됐다"며 "사전 예약을 한 소비자가 매우 많았고, 마니아를 중심으로 문의가 온다"고 말했다. BT21과 협업 덕분에 올해 론칭 25주년을 맞이한 인스타 퓨리 역시 소비자에게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비단 캐릭터만이 아니다. 패션 업계에선 SNS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인플루언서와 협업도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휠라는 지난달 유튜브에서 두꺼운 팬층을 확보한 전문 게임 스트리머 '우왁굳'과 협업 제품인 '휠라 X 우왁굳 콜라보 에디션 시즌2'를 내놨다. 우왁굳 특유의 시그니처 캐릭터와 그가 자주 사용하는 멘트를 제품 곳곳에 투영했다. 이보다 앞선 8월 우왁굳과 협업 시즌1을 출시한 휠라는 완판과 함께 시즌2도 준비했다. 이 역시 공개 10여 분 만에 주요 사이즈가 모두 팔리는 기염을 토하면서 컬래버레이션 덕을 톡톡히 봤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세계적 명품끼리 손잡기도 한다. 영국의 럭셔리 의류·잡화 브랜드 버버리는 지난 10일 영국 펑크룩의 대명사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컬래버레이션 한 캠페인을 대중에 공개했다. 버버리 특유의 클래식하고 점잖은 디자인이 반항적 무드를 지닌 비비안 웨스트우드를 만나자 결과물은 압도적이었다.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남편이자 하우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안드레아스 크론탈러가 직접 참여했을 정도로 공들인 이번 컬래버레이션은 전설적 패션 모델 케이트 모스 등이 컬렉션 캠페인에 참여하며 패션리더의 관심을 모았다.
컬래버레이션을 또 하나의 도전으로 삼은 브랜드도 있다. 패션 브랜드 게스는 '불가능한 조합'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파격적 컬래버레이션을 주기적으로 내고 있다.
지난 5월 발표한 동화약품 '부채표 활명수'와 협업은 결정판이었다. 게스코리아홀딩스는 대한민국 최초의 등록상표인 동화약품의 부채표와 게스 고유의 DNA인 삼각 로고를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재기발랄한 시도를 했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에 인기가 많은 아메리칸 스타일의 게스트로펍 데블스도어와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해 눈길을 끌었다. 패션 업계의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침체기를 맞은 게스는 파격적 컬래버레이션 기획으로 이슈 몰이를 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다.
심지어 금융권과 협업도 시도됐다. 이랜드월드 SPA 브랜드 스파오는 지난 4월 '스파오×케이뱅크×네이버페이' 협업으로 패션과 금융의 만남이라는 이색 협업을 펼쳤다. 티셔츠에 '합리적인 소비생활에 그린라이트를 켜라'는 슬로건으로 총 8가지 스타일을 출시했다. 최근 현명한 소비를 지향하는 젊은층의 트렌드를 잘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파오의 한 관계자는 "스파오 협업의 한계는 없으며 고객에게 가치를 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걸 보여 준 결과물"이라며 "이번 협업 상품은 최근 불고 있는 '합리적 소비 트렌드'와 딱 어울리는 이색 협업 상품으로, 친구와 연인 간에 재미있게 입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고 말했다.
'또 디즈니 캐릭터?'… 너무 흔한 컬래버레이션은 '아쉽네'
만화나 영화 캐릭터는 컬래버레이션의 영원한 단골손님이다. 마니아층이 확실해 잘 만들면 '평타' 이상은 기록하기 때문이다.
스파오가 지난달 9일 '해리포터' 캐릭터를 넣은 옷을 출시해 돌풍을 일으켰다. 자정에 시작한 온라인몰 판매가 시작 1분 만에 3만 장이 모두 팔렸다. 오프라인 매장에 내놓은 제품 역시 2시간 만에 시가 30억원어치인 25만 장이 완판되는 기쁨을 누렸다. 재생산에 들어간 이랜드는 이 물량도 사흘 만에 팔아 치우면서 해리포터와 협업 상품으로만 약 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디자인과 만화 캐릭터의 특징을 잘 담아낸 결과다. 스파오는 '마법사 맨투맨 시리즈'에 해리포터의 대표 모티브인 '9와 4분의 3 승강장' '골든 스니치' 등 마니아가 열광하는 지점을 자수 포인트로 삽입했다. 기존 옷 브랜드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호그와트' 후드 망토 코트 2종, '신비한 동물사전'의 뉴트 스캐맨더가 입었던 코트 2종은 마니아층의 소비욕에 불을 지폈다. 품질도 수준급이었다. 재질 역시 울 50% 등을 섞은 프리미엄 라인으로 구성해 소장 가치를 높였다.
그러나 너무 진부한 협업은 하지 않으니만 못 하다는 평가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디즈니랜드의 '미키 마우스'다. 유니클로는 미키 마우스 탄생 90주년을 기념해 '셀러브레이트 미키 UT 컬렉션'을 출시했다. 그러나 올해 패션 업계에서 미키 마우스와 협업을 한 곳은 유니클로만이 아니다. 데님 브랜드 리바이스도 디즈니의 아이코닉 캐릭터인 미키 마우스 탄생 9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리바이스X미키 컬래버레이션 스페셜 에디션'을 지난달 출시한 바 있다. '라코스테' 역시 설립 85주년을 기념해 탄생 90주년을 맞이한 디즈니를 상징하는 '악어와 미키 & 미니'가 함께하는 특별한 컬래버레이션을 진행했다.
각 브랜드를 미키 마우스와 브랜드별 특징을 구현하기 위해 공들였다. 나름대로 재해석하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 흔하다는 점이다. 미키 마우스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를 대표하는 캐릭터로, 지난 1928년 처음 공개된 뒤 현재까지 많은 사랑을 받는 캐릭터다. 안전한 협업 상대다 보니 컬래버레이션을 한 의류 브랜드도 수를 셀 수 없을 지경이다. 국내만 해도 미키 마우스와 올해 손잡은 의류·잡화 브랜드의 수가 상당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협업이 인기다 보니 컬래버레이션 파트너가 겹치는 상황이 발생한다. 타 브랜드의 출시 현황을 보고 겹치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소비자는 뻔한 물건을 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협업 열풍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리복의 한 관계자는 "패션 업계의 협업은 각 브랜드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새로운 캐릭터와 이미지를 보여 줄 수 있는 기회"라며 "브랜드와 각 라인에 담겨 있는 고유의 헤리티지에 유스 컬처 트렌드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아티스트 등과 활발한 협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