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현역 시절을 떠올리면 메이저 대회 첫 경기는 늘 부담스럽고 힘들었다. 벤투호도 그랬다. 지금까지 아시안컵 조별예선에서 한국을 상대한 대부분의 팀이 그랬듯, 필리핀도 선 수비 후 역습 전략을 들고 나왔다. 승점 1만 챙겨도 성공이라고 판단하고 경기 내내 5백을 세웠다.
충분히 예측 가능한 전략이었지만, 한국은 진땀승을 거뒀다. 경기 초반 좋은 몸놀림을 보이고도 상대를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크로스는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오른발잡이 황희찬을 왼쪽 날개에 배치하고, 왼발잡이 이재성을 오른쪽 날개에 세웠다. 측면 돌파 후 직접 골을 노리는 '변형 윙어' 전략이다. 이들은 상대 골문까지 자주 밀고 올라갔지만, 마지막 패스가 좋지 않아 볼을 차단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마지막까지 완벽한 플레이를 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오히려 황희찬이 오른쪽, 이재성은 왼쪽에서 주로 사용하는 발로 크로스를 올리는 '전통적인 윙어' 역할이 필요했다. 최전방 공격수 황의조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윙어가 돌파 후 정확한 크로스를 올리는 승부를 했다면, 다득점을 할 가능성이 높은 경기였다.
한국은 이용과 김진수의 얼리 크로스만 의존해선 안 된다. 황의조의 결승골 장면에서 이청용이 그랬듯, 상대 진영까지 파고든 뒤 크로스를 해도 늦지 않다. 더구나 우승을 바라본다면 보다 세밀한 크로스를 시도하고 성공해야 한다. 크로스는 득점으로 이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2차로 리바운드를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과감한 플레이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한국 선수들의 기량은 아시안컵 조별예선에서 맞붙는 선수들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그럼에도 1대1 돌파 장면은 몇 차례 되지 않았다. 앞으로는 측면에서 상대와 1대1 싸움을 더 많이 유도해야 한다.
돌파는 자신감이다. 첫 시도만 성공하면 여유가 생긴다. 반면 막는 선수는 부담이 더 커진다. 뚫릴 경우 골과 직결되는 상황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돌파 타이밍에선 백패스는 피해야 한다.
황희찬은 에당 아자르처럼 날카로운 돌파를 주무기로 삼는 유형의 선수다. 1대1 돌파 후엔 득점까지 가능하다. 저돌적인 돌파가 전매특허인 그가 측면에서 직접 뚫어내고 공간을 만든다면 한국 한결 편안한 경기 운영을 할 수 있다.
키르기스스탄전도 필리핀전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수비는 더 극단적인 밀집 대형을 이룰 가능성이 높다. 완벽하게 골을 만들기보다는 과감한 돌파와 중거리슛이 필요하다. 적극적인 플레이는 없던 타이밍도 만들고, 공간도 열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