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 문정원(27)은 V리그 여자부 '최고 살림꾼'이다. 팀 동료 박정아는 "연습 때도 굉장히 세게 날아오는 공을 다 잡는다. 우리는 손도 못 댈 것 같은데 말이다"라며 "정말 겁이 없다"고 혀를 내둘렀다.
겉으로 화려하게 드러나는 선수는 아니다. 대신몸을 한껏 낮춰 리시브에 집중한다. 수없이 몸을 던져 상대의 강한 공을 건져 올려 낸다.
팀을 위한, 동료들을 위한 헌신이 조금씩 빛을 받고 인정받기 시작했다. 문정원은 2018~2019 도드람 V리그 5라운드 MVP에 선정됐다. 외국인 선수와 토종전문 공격수가 경쟁하는 MVP 투표 경쟁에서 수비형 레프트가 수상한 것은 이례적이다. 문정원은 5라운드 수비 1위(세트당 11.68개·2위 흥국생명 김해란 9.42개) 서브 2위(세트당 0.32개·1위 현대건설 황민경 0.35개)를 기록했다. 그는 "수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동료들 덕분에 (상을) 받게 됐다. 상금이 입급되면 동료들에게 한턱 크게 쏘겠다"고 웃으며 약속했다.
숨은 보석과도 같다. 리시브 효율 전체 3위(52.23%) 디그 전체 5위(세트당 4.450개)에 올라 있다. 두 부문 다 문정원보다 상위권에 속한 선수는 모두 전문 리베로다. 문정원은 실질적인 수비형 레프트로, 공격과 수비 서브 등 여러 부분에서 팀에 공헌한다.
김종민 한국도로공사 감독은 "우리팀은 리베로(임명옥)가 (문정원을 포함해) 2명이나 마찬가지"라며 그의 가치를 인정했다.세터에게 안전하게 공을 전달하는 리시브 라인을 단단히 구축한 덕분에 공격의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도로공사가 지난 시즌 창단 이후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한 원동력 중 하나다.
문정원의 수비력과공헌도는날로 커진다. 리시브 효율과 디그 모두 개인 한 시즌 최고 페이스다. 리시브 효율은 2017~2018시즌 48.03%, 디그 역시 지난해 3.684개가 종전 최고였다. 2경기를 남겨 둔 이번 시즌에는 이를 훨씬 뛰어넘었다.
이에 대해 문정원은 "연습할 때 더 열심히 하려다가도집중력이 부족해 항상 혼난다. 집중을 못 해서 혼날 때가 많지만 감독님께서 '못한다'가 아니라 잘한다'고 격려와 자신감을 실어 주신다. 덕분에 (내가)페이스를 잃어도 빨리 찾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옆에 있던 박정아는 "언니는 약간 '쿠크다스' 같다. 멘틀이 금방 부스러진다"고 웃으며 "주변에서 기대치가 워낙 놓다. '이건 (문)정원이라면잡을 수 있는 공인데…'라는 게 있다. 그런데 정말 잘한다"고 얘기했다. 개인 공격 면에서도 이번 시즌 163점을 올리며 톡톡히 활약하고 있다. 2014~2015시즌에 255점까지 기록한 바 있는 그는 자신의 역할을 이해하며 욕심내지 않는다. 수비와 리시브에 가담할수록 공격 본능을 발휘할 수 없다. 그는 "(박)정아에게 두 명의블로킹이 따라붙는다. 나는 블로킹이 한쪽으로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속이는 역할에 집중하면 된다"고 선을 그었다. 특히 "내가 코트에서 뛰는 이유는 다른 선수들보다 리시브와 수비가 더 좋아서다"며 자신의 역할을 받아들였다. 다만 "나도 욕심이 많아서 완벽하게 하려다 보니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지난 1월에 열린 2019 프로배구 올스타전 여자 서브퀸 대회에 참가한 문정원. 연합뉴스 제공 문정원의 또 다른 매력은 '돌고래 서브'에 있다. 2014~2015시즌, 무려 27경기 연속 서브 에이스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서브왕'에 오른 그는 이번 시즌에도 0.342개로 전체 1위에 올라 있다. 부문 2위 김희진(IBK기업은행·0.309개)과 격차가 커 개인 두 번째 서브 1위 달성이 유력하다. 이미 올스타전 스파이크 서브퀸 콘테스트에서 두 차례 우승한 경험도 있다. 문정원의 서브 에이스는 상대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매력적인 무기다. '디펜딩 챔피언' 도로공사는 초반 스타트가 더뎠지만 어느덧 2위까지 치고 올라와 2시즌 연속 봄 배구 진출을 확정했다. 그는 "초반에 팀 성적이 안 좋을 때도 선수들 사이에서 '무조건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자연스레 서로 책임감을 갖게 됐다"며 "봄 배구에 진출하면 챔피언결정전까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선수들과 함께 나눈다"고 했다. 아직 팀 순위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2연속 챔프전 우승을 향한 자신감과 경험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