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심패스트볼을 앞세워 올 시즌 산뜻한 출발을 보여주고 있는 이형범. 두산 제공 이형범(두산)이 '승리의 파랑새'로 떠올랐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배운 투심패스트볼(이하 '투심') 덕분이다.
이형범은 지난달 31일까지 리그 다승 1위다. 등판한 5경기에서 3승(1홀드)을 따 냈다. 지난달 28일 잠실 키움전부터 3연투에 나섰고, 2승 1홀드를 따 내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2013년 1군 데뷔 이후 지난 시즌까지 통산 승리가 2승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괄목할 만한 변화다.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재활 중인 김강률의 빈자리를 기대 이상으로 채워 주고 있다.
드라마 같은 성장 원동력 중 하나가 투심이다. 이형범은 "(시즌 초반이라서) 구속이 지금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TV로 보니까 투심 각이 커졌더라. 그래서 땅볼이나 빗맞는 타구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기록 업체 스포츠투아이에 따르면, 지난해 11.4cm였던 투심의 좌우 무브먼트가 올해 14.4cm까지 커졌다. 상하 무브먼트의 움직임도 좋아지면서 위력이 배가됐다.
오른손 투수가 던지는 투심은 오른손 타자의 몸쪽, 왼손 타자의 바깥쪽으로 살짝 휜다. 밋밋하게 들어가면 장타로 연결될 가능성이 크지만, 효과적으로 사용하면 땅볼 유도에 유리하다. 이형범은 올 시즌 땅볼(5개)과 뜬공(1개) 비율이 5 대 1이다. 그만큼 투심이 위력적으로 꽂히고 있다. 그는 "그 정도로 휘는 게 아니었는데 스피드가 덜 나와서 그런지 각이 더 커져서 빗맞는 타구가 많다"고 멋쩍게 웃었다.
경기에서 통하니 투구 비율도 높아졌다. 지난해 31%였던 투심 비율이 75%까지 올랐다. 시즌 초반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 주는 힘이다. 이형범은 "작년에는 롱릴리프 아니면 선발로 나갔기 때문에 (긴 이닝을 소화하기 위해) 커브·슬라이더·체인지업을 섞었는데, 중간으로 나가다 보니까 맞지 않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더 자신 있게 던지려고 하니까 투심 비율이 높아진 것 같다"고 돌아봤다.
투심을 이렇게 많이 사용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한때 잊고 있었던 구종이다. 화순고 3학년 때 당시 감독이었던 이광우(현 두산 2군 트레이닝코치)한테 배웠지만 한동안 던지지 않았다. 그는 "군대(경찰 야구단)에 다녀온 뒤 한계의 벽을 느꼈다. 뭐든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고, 이후 투심을 던지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시속 150km의 빠른공을 던져도 맞지 않나. 다른 걸 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올해 스프링캠프에선 정확하게 투구하는 걸 연습했다. 지난해에는 (스트라이크존에서) 높게 빠지는 게 많았다. 낮게 던지려고 했던 게 좋은 결과로 연결된 것 같다"고 말했다.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꿔 가고 있다. 지난해 12월 FA(프리에이전트) 이적을 택한 양의지(현 NC)의 보상선수로 두산 유니폼을 입었을 때만 해도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점점 필승조로 중용되는 경우가 늘어난다. 이형범은 "한 경기 한 경기 나가서 잘하다 보니까 감독님께서 좋게 보시고 중요한 순간에 내보내 주시는 것 같다. 기회에 보답하려고 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며 "떨리긴 하는데 재밌게 하려고 한다. 지난해(54이닝)보다 많이 던지고 싶어 목표를 80이닝으로 했다"고 당차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