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측에 따르면 조 회장은 지난해 말 폐질환이 악화하면서 미국 LA에 위치한 뉴포트비치 별장에서 요양을 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병환에 차도가 있던 조 회장은 지난달 병원에서 퇴원했고 오는 6월 귀국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최근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하며 유명을 달리했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조 회장은 폐가 굳는 질환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진다. 부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과 차녀 조현민 전 진에서 부사장이 현지에서 간병을 했으며, 장녀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지난 주말 급히 미국으로 출국해 임종을 지킨 것으로 전해진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운구 및 장례 일정과 절차는 추후 결정되는 대로 알리겠다"고 밝혔다.
영욕의 세월이었다. 고 조양호 회장은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장남이다. 1999년 아버지에 이어 대한항공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45년 인생을 항공·운송사업에 쏟으며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했다. 조 회장은 1차 오일쇼크로 업계가 술렁이던 1974년 12월 대한항공에 입사한 이래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업무에 필요한 전 부서들을 거쳤다. 이후 1978년 2차 오일쇼크 때도 선친인 조중훈 창업주와 함께 줄일 수 있는 원가는 줄이되, 시설과 장비 가동률을 높여 불황에 호황을 대비하는 선택을 했다. 이는 오일쇼크 이후 중동 수요 확보 및 노선 진출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회사 측은 전했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에도 자체 소유 항공기의 매각 후 재 임차 등을 통해 유동성 위기에 대처했다. 외환위기가 한창이던 1998년에 보잉737NG(Next Generation) 주력 모델인 보잉737-800 및 보잉737-900 기종 27대 구매 계약 체결한 점도 계약금 축소에 기여했다.
폭넓은 행보를 보였다. 2003년 한진그룹 회장에 취임한 조 회장은 세계 항공업계에 폭넓은 인맥과 해박한 실무지식으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스카이팀 등 국제 항공업계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항공업계 내 조 회장의 위상이 '항공업계의 UN 회의'라고 불리는 IATA 연차총회가 올해 사상 최초로 대한민국 서울에서 개최하는데 힘을 보탰다. 스포츠 사랑도 각별했다. 2009년에 2018평창겨울올림픽 유치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마지막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조 회장은 앞서 지난달 27일 대한항공 제5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20년 만에 사내이사직을 박탈당했다. 이후 퇴직금이 780억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장녀와 차녀, 부인이 차례로 사정기관에 조사를 받고 포토라인에 섰다. 여러 사건이 겹치면서 스트레스도 심해졌고, 조 회장의 건강이 급속도로 약해진 것 아니냐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조 회장의 별세 소식이 전해진 이날 한진그룹 주가는 일제히 요동쳤다. 한진그룹의 지주사인 한진칼은 오전 한때 전 거래일 대비 23.02%나 오른 3만1000원에 거래됐다. 우선주인 한진칼우는 가격제한폭(29.91%)까지 치솟은 2만1500원에 거래됐다. 주요계열사인 대한항공(5.02%)과 대한항공우(18.12%), 한진(15.95%), 진에어(5.94%), 한국공항(7.37%) 등 나머지 계열사 주가도 모두 큰 폭으로 올랐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조양호 회장의 아들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체제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지배구조 개선 여지가 커졌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지배구조 재편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다.
한진그룹 오너 일가가 받고 있는 재판과 수사도 대폭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조 회장은 특정경제가중처벌법상 배임·횡령, 약사법 위반, 국제조세조정에관한법률 위반 등 혐의로 작년 10월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겨졌다. 조 회장의 횡령·배임 혐의 재판 일정을 진행하던 서울남부지법은 이날 "조 회장의 사망 소식을 접했으며 이에 따라 재판장이 공소 기각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장례 일정으로 부인과 장녀의 재판도 모두 연기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