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2019 SK핸드볼코리아리그 여자부 MVP를 수상한 부산시설공단 류은희. 대한핸드볼협회 제공
"마지막 경기를 이기고 끝났으면 더 좋았을 텐데…."
최고 선수는 역시 만족을 모른다. 부산시설공단 라이트백 류은희(29)가 그랬다. 류은희는 지난 8일 끝난 2018~2019 SK 핸드볼 코리아리그에서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소속팀 부산시설공단은 정규 리그 우승을 차지해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했고, 류은희는 정규 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투표에 참여한 취재기자단 전원이 류은희에게 표를 던졌다. 명실상부 이견이 없는 한국 여자 핸드볼의 에이스다.
그래도 류은희는 여전히 "마지막 경기에 져서 아쉽다"고 했다. 삼척시청과 시즌 최종전에서 종료 20초를 남기고 결승골을 허용해 한 점 차로 석패한 탓이다. 시상식 직후 담담한 표정으로 일간스포츠와 만난 류은희는 "이기고 시상대에 올랐어야 더 빛났을 것 같다"며 "그래도 우리가 한 시즌 동안 정규 리그를 잘 치러서 우승했기 때문에 그 부분에 만족한다. 앞으로 포스트시즌 준비를 잘해서 부상 없이 좋은 경기를 하는 게 남은 목표"라고 했다.
류은희는 한국 여자 핸드볼 역사에서 남자 핸드볼의 전설 윤경신 두산 감독에 비견되는 몇 안 되는 스타플레이어다. 키가 여자 선수로는 무척 큰 180cm에 달하고, 왼손잡이에다 공수 모두 흠잡을 데가 없는 올 라운드 플레이어다. 2008년 성인 무대 데뷔 이후 꾸준히 성장을 거듭했고, 2012 런던올림픽과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선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했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인천시청에 몸담으면서 네 차례 팀을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2017년 류은희가 이적한 뒤, 부산시설공단은 다른 팀에 '공공의 적'으로 떠올랐을 정도다.
시즌 초반에는 부상으로 고생했다. 지난해 1월 고질적인 문제였던 왼쪽 발목 관절 수술을 받은 탓이다. 회복이 더뎌 지난해 8월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했고, 리그 개막 직후에도 기량이 예전만큼 올라오지 않아 애먹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아시아핸드볼선수권에 국가대표로 출전해 우승하고 돌아온 뒤 본격적으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쟁쟁한 팀 동료들과 함께 연승 행진을 이끌면서 팀을 1위로 올려놓았다.
개인적으로도 여러 가지 역사를 남겼다. 2월 17일 컬러풀대구와 경기에서 여자 선수로는 역대 두 번째로 통산 800골을 돌파했다. 또 시즌 최종전에서는 여자 선수 역대 최초로 통산 500어시스트 고지를 밟았다. 경사가 여러 개 겹쳤다. 류은희는 "아무래도 이번 리그에서 풀게임을 뛰면서 공수에서 포인트를 쌓다 보니 결과적으로 내게 좋은 결과가 따라온 것 같다"고 웃어 보였다.
한 시즌 내내 함께 고생한 동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모든 선수들에게 고맙고, 특히 골키퍼 주희에게 많이 고맙다"며 "나와 함께 풀 게임을 뛰었는데, 홀로 골문 앞을 지키면서 든든하게 막아 줬다. 잘 안 풀릴 때 조언도 많이 해 준 친구"라고 귀띔했다.
2018~2019 SK핸드볼코리아리그 여자부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부산 선수단. 대한핸드볼협회 제공 류은희 외에 권한나·심해인·남영신·강은혜·주희가 포진한 부산시설공단은 여자 핸드볼의 '어벤져스'로 불린다. 그만큼 주변의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다. 류은희는 "다들 그런 별명으로 불러 주시니 감사하지만, 팀은 한순간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초반에는 부상 선수가 많아 힘들었지만, 한 명씩 복귀하면서 점점 강해진 것"이라며 "우리가 최강이라는 자만은 하지 않는다. 아직 부족한 면이 많기 때문에 계속 함께 만들어 나가려고 한다"고 했다.
챔피언결정전을 앞두고 긴장을 늦추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류은희는 "3라운드까지 경기를 모두 치러 보니 전체적으로 실력이 평준화돼 있다"며 "아무리 우리팀에 잘하는 선수들이 모여 있다고 해도 반드시 이길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어느 팀이 올라오든 우리가 준비를 잘하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어벤저스'의 에이스는 벌써 어제의 영광을 뒤로한 채 미래의 승부에 집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