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방송된 KBS 2TV ‘대화의 희열2’에서는 유시민 작가를 초대해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이야기를 나눴다.
유시민을 수식하는 단어는 다양하다. 누군가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누군가는 정치인으로, 누군가는 방송인으로 유시민을 떠올린다. 이날 방송에서는 지금의 유시민을 만든 청년 유시민 이야기를 집중 조명했다.
유시민은 글을 쓰게 된 계기부터 민주화 운동에 몸담을 때 심경, 징역살이 중 그를 유명하게 만든 '항소이유서' 작성 배경, 책을 낸 이후 드라마 작가로도 활동한 사연까지 다양하게 들려줬다.
서울대학교 재학시절인 1980년 5월 17일 학생회관을 지키다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로 잡혀갔다. 당시를 떠올리며 유시민은 “다른 대학 총학생회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서울대학교 총학생회로 전화를 하기 때문에 끝까지 지키고 있었던 것일 뿐”이라며 “계엄군이 닥치면 도망가려 했지만 못 도망친 것”이라고 유쾌한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그가 마주한 상황은 결코 유쾌하지 않았다. 청년 유시민이 처음으로 마주한 권총은, 아직도 그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고. 그러나 그가 더 무섭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하루 전날 있었던 서울역 집회였다. 본인이 잡혀가는 것보다, 서울역 집회에 모여있는 수많은 신입생이 잡혀가는 것을 생각하는 게 더 두려웠기 때문이다.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서 그는 글의 재능을 발견했다. 진술서를 쓰고 있을 땐 수사관들이 때리지 않았기에 진술서를 길게 쓰다가 글 잘 쓴다는 칭찬을 받은 것. 유시민은 공소기각 판정을 받고 풀려났지만 바로 신체검사통지서를 받았고, 입영통지서를 받은 뒤 36시간 만에 군에 입대했다.
제대 후 복학한 유시민은 바로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연루, 유죄 선고를 받아 징역을 살았다. 당시 유시민이 억울함을 알리기 위해, 울분을 풀기 위해 쓴 것이 그 유명한 항소이유서다. 아직도 회자되는 글이지만 유시민은 “문장이 길고, 고색창연한 글”이라고 평가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고문, 입대, 징역살이 등. 힘든 시간을 겪었던 유시민은 당시를 회상하며 “공포심이 제일 크다”고 했다. 그럼에도 그는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겠다고 했다. 그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존엄이기 때문이다. 유시민은 “나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시작하면, 실패해도 나의 존엄은 지킬 수 있어서 괜찮다”며 뚜렷한 소신을 밝혔다.
많은 사람이 유시민을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 속 유시민, 그의 동지들은 두려움에 떨던 평범한 청년들이었다. 그럼에도 청년 유시민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신념을 고수해온 것이다. 공포의 시대, 신념을 지키며 살아온 유시민 이야기가 뜻깊게 와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