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히트노런은 투수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환희로 남는 기록이다. 하지만 그 투수와 9이닝 동안 호흡을 맞춘 포수의 야구 인생에도 자랑스러운 훈장으로 새겨진다.
KBO 공식 레코드북에는 노히트노런을 기록한 투수 옆에 포수 이름도 나란히 명시돼 있다. 던지는 공을 받아 주는 이가 있어야 노히트노런도, 퍼펙트게임도 모두 가능하기 때문이다.
KBO 리그에서 지금까지 노히트노런을 합작한 포수는 총 13명. 삼성 강민호가 지난 21일 대전 한화전에서 덱 맥과이어의 역투를 이끌면서 마지막으로 이 대열에 합류했다.
이들 가운데 두 차례 노히트노런을 만들어 낸 포수는 3명이다. 유승안 경찰 야구단 감독, 강인권 한화 배터리코치, NC 양의지다. 유승안은 해태 시절 1호 방수원과 4호 이동석의 기록을 뒷받침했고, 강인권은 한화에서 9호 정민철과 10호 송진우의 노히트노런을 함께 완성했다. 양의지는 두산 시절 12호 유네스키 마야와 13호 마이클 보우덴을 2년 연속 노히트노런으로 이끌었다. 투구 스타일과 개성이 완전히 다른 투수 두 명의 대기록을 함께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이들의 배짱과 소통 능력을 엿볼 수 있다.
김경문 국가대표팀 감독은 OB 포수로 활약하던 1988년 장호연과 노히트노런 대기록을 함께 썼다. 이외에도 해태 장채근(선동열) 삼성 이만수(이태일) 쌍방울 김충민(김원형) LG 김동수(김태원) NC 김태군(찰리 쉬렉)이 KBO 역사에 노히트노런 포수로 기록됐다.
보통 투수들이 대기록에 도전하는 상황에서는 좋은 흐름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포수를 잘 교체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도에 포수가 바뀌었던 노히트노런 기록도 한 차례 있다. 1986년 롯데 김정행의 역대 2호 노히트노런 때는 한문연과 김용운이 공을 나눠 받았다. 정규 시즌 노히트노런은 아니지만, 현대 정명원이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 역대 유일한 포스트시즌 노히트노런을 달성할 때도 포수 마스크를 김형남과 장광호가 나눠 썼다.
좋은 포수의 역할은 노히트노런 같은 '거사'를 앞두고 있을 때 더 빛난다. 포수도 투수만큼 떨리지만, 절대 내색해서는 안 된다. 투수 이상의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잔뜩 긴장한 투수를 다독이고 침착하게 리드하는 게 포수 역할이다.
노히트노런을 2회 경험한 강인권 코치는 당시 "두 번 모두 8회 2사 이후부터 내가 투수보다 더 떨렸다"며 "상대 타자들도 어떻게든 안타를 쳐야 한다는 생각에 조급해지면서 헛스윙이 많이 나와 볼 배합을 변화구 위주로 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현역 최고 포수인 양의지 역시 "정말 포스트시즌보다 더 떨렸다"고 했다. 마야와 함께 생애 첫 노히트노런을 경험할 때는 스코어가 1-0으로 아슬아슬하게 앞서던 터라 더 그랬다. 그는 당시 "솔직히 8회부터 노히트라는 사실을 잊으려고 전광판도 쳐다보지 않았다"며 "그러다 9회 선두 타자가 볼넷으로 나가면서 '이러다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어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토로했다.
가장 최근에 노히트노런 포수 계보를 잇게 된 강민호도 다르지 않다. 강민호는 맥과이어가 헛스윙 삼진으로 마지막 아웃 카운트를 잡는 순간, 투수보다 더 크게 환호하며 마운드로 달려갔다. 경기 이후에는 "나에게도 (노히트노런은) 처음이라 무척 벅차다. 팔뚝에 소름이 다 돋았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