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부동산이란 개발이 불가능한 그린벨트 등을 지분 형태로 수많은 개미 투자자에게 파는 것이다. 이들은 '각종 규제가 곧 풀릴 것'이라는 감언이설로 적게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천 명에 이르는 피해자를 끌어들인다. 그러나 개발은 되지 않고, 돈만 받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아 주의가 필요하다.
본지가 빅데이터를 통해 토지와 건물 실거래가를 공개하고 서비스하는 밸류맵의 자료를 기반으로 전문가들에게 실태와 배경, 피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들었다. 부동산전문가인 이진우 오비스트 대표와 이창동 밸류맵 리서치팀장은 "기획부동산은 인간의 욕망을 교묘하게 파고든 기막힌 사기다. 최소한 지번만 확인하는 등 조금만 노력하면 기획부동산의 덫을 비껴갈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전국이 기획부동산 '사기 무대'
"지금은 기획부동산 전성기다. 기나긴 기획부동산 역사 중 이렇게 기승을 부린 시기도 흔치 않다."
이진우 대표는 2019년 현재 대한민국 부동산을 이렇게 정의했다. 전국 방방곡곡이 기획부동산의 사기를 치는 판이 됐다는 것이다.
통계가 말해 준다. 토지·건물 실거래 정보 회사 밸류맵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4개월간 실거래 신고가 이뤄진 18만1000여 건에 대한 알고리즘을 분석해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기업형 기획부동산이 판매한 토지 거래 건수가 6.4%인 1만1600여 건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기획부동산은 전국 방방곡곡에 분포했다.
밸류맵의 분석에 의하면 경기도의 기획부동산 추정 거래 건수가 7393건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았다. 기획부동산 거래 비율도 이 기간의 경기도 전체 토지 거래량(4만3764건)의 16.9%에 달해 전국 평균의 3배 수준이었다. 세종시는 이 기간 토지 거래량(2619건)의 51.8%에 달하는 802건이 기획부동산 거래로 추정됐다. 또 충남이 930건·강원도 700건·인천 547건 등의 순으로 기획부동산의 거래가 많았다.
전문가들은 기획부동산이 판치는 이유로 각종 '개발 호재'를 꼽는다. 정부가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3기 신도시와 광역급행철도(GTX) 건설 외에도 각종 부양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이를 틈타 기업형 기획부동산이 뻗친다는 것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에서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한 대상 사업 규모가 약 53조원이다. 이는 전국 개발과 건설 붐을 지향했던 이명박 정부의 60조원에 이어 역대 두 번째다.
이진우 대표는 "정부가 2018년부터 약 53조원에 달하는 각종 추경예산을 책정했다. 국유재산 토지개발 선도사업지 11곳,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에 관한 공공 보상, 국가산업단지 8곳 등만 해도 수십조원"이라면서 "기획부동산은 못 쓰는 땅을 들이밀면서 '개발이 된다면' 피해자들에게 이 돈을 받을 수 있다고 현혹한다"고 지적했다.
국유재산 토지개발 선도사업지란 국가 소유의 교도소·군부지 이전 등에 따라 발생하는 대규모 유휴 국유지를 활용하는 사업이다. 정부는 지역경제 활력을 증진한다면서 여의도 면적의 2.4배(693만㎡)에 이르는 땅을 선정했다. 사업 계획도 구체적이다. LH가 연말까지 사업 계획을 수립할 예정이다. 약 24조원의 예산이 편성된 예비타당성조사 면제를 받은 사업은 총 23개다. 하나같이 국가 및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 이뤄지는 사업들이다.
이번 조사를 이끈 이창동 팀장은 "기획부동산은 최근 호재 말고도 각종 루머·과거의 개발 사례·20~30년 전 이슈를 모두 끌어서 땅을 살 사람을 모은다. 온갖 청사진은 다 갖다 붙인다. 비단 최근 호재때문만이라고 볼 수 없을 정도"라면서 "전국 각 지역마다 일관성 없이 기획부동산이 난립하는 이유다"라고 설명했다.
금토동·창동·접경지역…온갖 호재 다 끌어와 사기
난립하는 기획부동산이 특히 몰린 지역이 있다. 바로 성남시 금토동·도봉구 창동 및 접경 지역이다.
금토동은 수년 전부터 이른바 '제3판교테크노밸리' 인근 지역으로 땅 장사꾼들이 몰렸던 곳이다. 실제로 포털 사이트에 '금토동'을 검색하면 기획부동산이 어떻게 이 땅을 소개하는지 쉽게 볼 수 있다.
A 건축개발사는 "제3판교테크노밸리가 국토부로부터 승인 확정·고시되면서 수도권과 판교의 접경지로 저평가됐던 금토동 지역이 유망 투자처가 됐다. 올해 안으로 1조원대 토지보상금이 풀린다"며 금토동 일대 그린벨트와 임야를 판다고 소개한다.
언론 매체를 통해 기사도 낸다. 복수의 매체는 "판교 인근 금토동 그린벨트 임야 7필지가 시장에 나온다. 1차분 마감에 이어 2차분 매각분 72필지 중 핵심 7필지에 해당하는 이 땅은 3차 판교테크노벨리와 접해 추가 개발 기대감이 높은 그린벨트 임야다. 지금은 땅을 사고 싶어도 땅이 없어 살 수 없는 매물 실종 상태"라고 보도했다.
이진우 대표는 금토동 상당수의 땅이 기획부동산의 먹잇감이 됐다고 분석했다. 그는 "금토동 인근 40만평가량의 땅에 3110명이 지분등기가 돼 있다. 이 땅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3000명이 넘는다는 것"이라면서 "가보면 그냥 산이다. 보존 산지로 개발 제한구역이 다 묶인 곳이다. 개발 행위 허가를 받을 수 없는 땅에 이 많은 사람이 몰렸고 당한 것"이라고 말했다.
도봉구 창동은 최근 서울시가 2만 석 규모의 국내 최초 K팝 전문 공연장 서울아레나를 조성할 계획을 밝혔다. 창동을 거쳐 청량리·삼성역·과천·수원 등으로 연결되는 GTX 개발도 예상된다. 역시 기획부동산의 먹거리가 됐다. 이진우 대표는 "도봉구에 있는 국립공원이 포함된 땅을 무려 803명이 지분등기를 했다. 국립공원은 보전산지다. 나무 한 그루도 베기 어려운 곳"이라면서 "그런데 이 지역에 GTX가 들어온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말이 될까. 환경 단체가 가만히 있겠는가"라고 일갈했다.
이외에도 접경 지역인 연천·파주·철원도 들썩인다. 최근 남북 화해 무드로 기대 심리가 높아진 틈을 타 기획부동산이 출몰한 것이다. 이 지역은 역대 남북 정상들이 만나고 경협 이슈가 있을 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탔다. 그러나 수십 년 세월에 걸쳐 땅을 가장 쌀 때 사서, 가장 비쌀 때 파는 것은 '로또' 수준의 가능성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이창동 팀장은 "땅을 주식처럼 지분 형태로 판매하면 활용할 수가 없다. 지분만큼 땅의 소유권이 있다는 것인데 내가 10%를 갖고 있든, 60%를 갖고 있든 다른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으면 쓸모없다"며 "밸류맵의 기획부동산 조사는 빅데이터 등을 무척 보수적으로 분석한 결과다. 수백 명, 수천 명 등은 데이터에 잡혔으나 수십 명 단위 피해자가 있는 기획부동산은 실제 더 많을 것으로 본다"고 우려했다.
20대 청년도 당한다…다단계·지인 동원한 상술 심각
기획부동산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20대부터 80대까지 고루 당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딱한 사연도 많다.
27세 B씨는 고교 졸업 이후 대학 진학을 하지 않고 돈을 벌었다. 그러나 B씨는 4~5년 동안 모은 돈을 모두 기획부동산에 투입했다. 안 먹고 안 쓰며 애지중지 아낀 종잣돈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이창동 팀장은 "이미 계약서를 쓰고 잔금 입금까지 하고 밸류맵에 확인 차원에서 문의가 온 건이다. 그런데 누가 봐도 100% 기획부동산이더라"면서 "정말 안타까웠다. 한 청년의 땀과 노력이 담긴 돈인데 이미 입금된 건이라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면서 안타까워했다.
한국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당한다. 밸류맵에 따르면 기획부동산으로 보이는 땅의 등기를 떼 보면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에서 온 이주민이나 조선족도 상당하다고 한다. 이창동 팀장은 "추정컨대 결혼으로 이민하게 된 분들이 아닐까 싶다"며 "우리에게 확인 문의가 오는 상당수는 이미 입금을 마친 뒤여서 구제가 어렵다. 20대부터 80대까지 기획부동산에 고루 당한다"고 말했다.
사기꾼들은 보통 믿을만한 지인을 기획부동산 타깃으로 정한다. 이진우 대표는 "나와 함께 운동을 하고 있던 친구가 지인에게 전화가 왔다면서 받더라. 옆에서 듣고 있는데 땅 이야기였다. 기획부동산 설명이었다. 친구가 전화를 끊더니 '좋은 땅이 나왔다고 한다. 지금 입금을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했다. 그런데 "기획부동산 같다. 사면 안 된다"는 말을 듣지 않더라고 했다. 이진우 대표는 "친구가 '내가 정말 잘 아는 지인이다. 이 사람이 나를 속일 이유가 없다'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기획부동산은 이처럼 지인·가족을 노린다"고 강조했다.
최근 기획부동산을 파는 업체는 주식회사 형태로 '신한' '우리' 'KB'처럼 금융 기관 명칭을 따는 경우가 많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무척 그럴듯하게 보이는 사명이다. 이들은 맹지를 타 회사와 공동으로 싸게 구매한 뒤 직원을 채용한다. 그리고 그 직원에게 "좋은 땅"이라면서 사도록 유도한 뒤 "다른 사람을 데려오면 수수료를 깎아 주겠다"는 식으로 사기 행각을 벌인다. 그 직원은 땅이 진짜 좋다고 믿고 사는데 이어 지인을 끌어들이는 매개체가 된다. 이른바 기획부동산의 대형 다단계화다.
이진우 대표는 "정상적 개발 업체는 '디벨로퍼(Developer)'다. 먼저 땅을 분할하고, 개발 행위 허가를 받고, 길을 내고, 지목을 변경하는 등의 모든 인허가와 개발 과정을 함께한다"며 "나쁜 기획부동산은 직원·지인을 가리지 않고 싼 땅을 비싸게 쪼개 지분을 판다. 중간 과정이 없고 목적은 땅을 비싸게 파는 것만 있다"고 지적했다.
기획부동산 사기 안 당하려면…방법은?
수십 년 전만해도 기획부동산은 땅을 쪼개는 방법이 많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지분을 쪼개거나 근저당을 설정한다. 과거에는 텔레마케팅과 지인을 통했지만, 이제는 각종 SNS와 블로그를 동원해 전 세대에 침투한다.
이 중에서도 근저당과 지분 쪼개기는 특히 피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조언이다. 이진우 대표는 "가령 150명이 근저당을 설정한 50억원짜리 땅이 있다고 보자. 그 땅이 경매로 넘어가 20억원에 팔린다고 해서 150명이 20억원을 고루 나눠가질 수 없다. 만약 1순위 설정자가 자신 앞으로 '20억원'을 해 놓으면 나머지는 못 받는다. 나머지 149명은 생면부지의 한 명을 위해 돈을 가져다 바친 것"이라고 말했다.
땅의 활용 가치를 포기하는 방식인 지분 참여도 마찬가지다. 이창동 팀장은 "예전에는 필지를 분할해 팔았는데 이제는 그린벨트를 주식처럼 지분으로 파는 형식이 늘었다. MB정부 때 그린벨트를 풀면서 건물 등을 지으며 심화한 현상"이라면서 "만약 1000평 땅 중 피해자가 10%의 지분이 있더라도 특정 부분의 어떤 값어치만큼을 개발하거나 팔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개발이나 매매를 위해서는 모르는 사람 수십, 수백 명을 설득해야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기획부동산 사기는 사실상 피해자의 탓이 크다고 보고 있었다. 입금 전 전화 한 통, 검색 한 번이면 막을 수 있는 사기이기 때문이다.
이진우 대표는 "기획부동산을 사는 사람 중에는 현장 답사를 가서 바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다. 그 동네 부동산에 들어가 공인중개사에게 한 번만 물어보고 확인하면 되는데 그걸 안 한다. 심지어 가 보지도 않고 입금하는 사람도 있다. 물건 하나를 사도 시장에 가서 보고 비교하고 사는데 이상하게도 수천만원짜리 땅에는 그런 적극성이 없다. 기획부동산 사무실에 가서 설명 듣는 것이 전부"라고 말했다.
이창동 팀장은 "지분·지번을 기억하길 바란다. 땅 거래 시 지분을 사라고 하거나 지번을 알려주지 않는 곳은 피해야 한다. 지번을 알면 검색으로 기획부동산인지 아닌지 확인이 가능하다. 지번을 알려주지 않고 답사로 끝내고 입금하라는 업체는 기획부동산일 가능성이 높다"고 조언했다.
기획부동산은 인간의 욕망과 투기 심리를 교묘하게 자극한다. 10억원짜리 아파트는 사지 못하지만, 수천만원 정도로 '대박'을 원하는 사람들의 허황된 꿈을 먹는 사기다.
이진우 대표는 "기획부동산 업자의 '욕망 마케팅'에 희생된 피해자는 사기당한 것을 알고도 고소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기를 친 사람이 구속되면 쪼개진 땅이나 지분을 못 받는다면서 탄원을 내기도 한다. 헛된 희망이 무너지는 걸 원치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지영 기자 seo.jiyeong@jtbc.co.kr
※ 이진우 대표의 '기획 부동산에 당하지 않는 체크 리스트'
① 토지이용계획확인서 내 보전 산지·공익용 산지 ② 개발제한구역·비오톱·경지 정리된 농업 진흥 지역 ③ 토지 거래 허가 구역의 해제를 개발 호재로 계약을 유도하는 경우 ④ 지분·근저당 설정 유도 ⑤ 지번 공개 안 하는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