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헬스]"게임 과몰입은 다른 정신 질환 있다는 신호"…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과 교수
등록2019.05.14 07:00
게임하는 자녀를 보는 부모는 늘 걱정이다. 게임에 빠져 공부도 등한시하고 폭력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해서다. 일부에서는 청소년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을 게임 과몰입(중독)에서 찾는다.
심지어 세계보건기구(WHO)는 오는 20일 총회에서 게임이용 장애를 질병 코드로 분류해 관리하겠다는 계획이다.
게임을 과도하게 하면 일상 생활에 장애를 일으키기 때문에 우울증이나 알코올 중독처럼 질병으로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게임 때문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문제는 게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 교수는 "게임에 빠진 환자들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과 같은 다른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다"며 "ADHD와 같은 질환이 게임 과몰입이라는 형태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했다.
이는 국내 정신과 전문의들이 게임 과몰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과 다른 견해다.
정신의학계에서 드물게 '게임에 죄를 물을 수 없다'는 한 교수를 지난 8일 중앙대병원에서 만났다.
- 게임 과몰입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가 많나. "매년 꾸준히 일정하게 늘고 있다. 그렇다고 유병률이 증가세인 것은 아니다. 2011년에 전국 대학병원 중에서 유일하게 게임과몰입힐링센터를 열면서 게임과 관련한 문제가 있으면 전국적으로 찾아와 꾸준히 늘고 있는 것이다."
- 주 연령대는 어떻게 되나. "중학생인 13세부터 대학생인 24세까지 온다. 대학생도 학점이나 취직 등으로 스트레스를 받아 게임에 과몰입하고 스스로 통제를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 병원을 찾는 이유는. "주로 부모가 자녀를 데려오는데, 자녀가 하루종일 게임만 한다고 한다. 그리고 게임을 하면 자녀가 욕설을 하거나 대드는 등 폭력적으로 변하고, 공부도 안 하고, 학교도 가지 않으려 한다고 하소연한다."
- 부모들 말처럼 환자들이 하루종일 게임만 하나. "그렇지 않다. 아이들은 서너 시간밖에 안 한다고 한다. 부모는 자녀가 아프리카TV나 유튜브에서 게임 관련 영상을 보는 것까지 게임하는 것으로 본다. 사실 게임 과몰입 문제에 있어서 게임을 몇 시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게임 시간이 문제라면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잘 때까지 게임만 하는 프로게이머들은 모두 게임 중독자여야 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게임이 일상적인 생활에 방해를 주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 부모들도 자녀가 자기 생활을 규칙적으로 안 해서 데려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게임만 안 하게 해 주면 되느냐'고 물어보면 '그건 아니다'라고 한다. 공부도 하고, 학교도 가고, 엄마·아빠한테 대들지도 않게 해달라는 등 여러 가지를 요구한다."
- 게임 과몰입은 왜 되는가. 게임이 문제인가. "게임에 과몰입했다는 것은 다른 정신 질환이 있다는 신호다. 게임 과몰입 환자는 ADHD·우울증·충동조절장애 등과 같은 정신 질환 증세를 보이는 '공존 질환'을 가지고 있다. 특히 게임이 원인이라기 보다는 ADHD와 같은 정신 질환 때문에 게임에 빠지는 경우가 흔하다. 게임 과몰입은 이런 질환을 밖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게임에 과도하게 빠져 있다면 다른 질환이 있는지 의심해 봐야 한다."
- 환자 중에 전적으로 게임만의 문제인 경우는 없었나. "게임만으로 문제가 된 경우는 거의 못 봤다. 만약 게임만의 문제라면 그걸 못 하게 하면 된다. 그러나 사회·문화·가정·교육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서 생긴 문제가 게임 과몰입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공존 질환이란
게임에 지나치게 빠진 것과 함께 다른 정신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경우를 공존 질환이라고 한다.
한덕현 교수는 13~21세까지 800건에 달하는 뇌 자기공명영상(MRI) 촬영을 토대로 게임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5년간 조사한 결과를 지난달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게임 과몰입으로 병원에 온 사람들의 경우 뇌가 뒤쪽보다는 양옆으로 연결성이 늘어나는데, 이는 ADHD의 특징이기도 하다.
ADHD 환자는 전두엽 기능이 떨어진 상태로 게임에서 오는 자극을 처리하기 위해 다른 부위의 도움을 받기 때문에 뇌가 옆으로 연결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
한 교수는 "ADHD가 있는 아이들의 경우 게임을 뇌의 먹이로 사용하려고 한 것이 아닌가 한다"며 "게임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할 때 ADHD나 우울증과 같은 공존 질환 여부를 함께 연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프로게이머 뇌가 일반인과 다른가. "프로게이머는 통제·제어·작업 기능 등의 능력이 뛰어난 엘리트 선수다. 아무리 노력해도 프로게이머처럼 되는 것은 쉽지 않다. 프로게이머의 전두엽(기억력·사고력 등을 주관하고, 정보을 조정하고 행동을 조절하는 기관)은 엄청나게 발달해 있다."
- 게임 과몰입은 마약이나 도박 중독과 같다는 주장이 있다. 그 이유로 이들 중독자의 뇌 전두엽 모습과 게임 과몰입 시 전두엽 모습이 비슷하다는 것을 증거로 내세운다. "마약을 하건, 게임을 하건, 공부에 빠지건 전두엽이 반응한다. 뇌가 기능적으로 변하는 것인데, 아주 사소한 자극에도 금방 변했다가 정상화된다. 마약이나 도박 중독 뇌와 게임 과몰입 뇌와 비슷하다는 것은 금방 변하는 점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영구적으로 변한다고 말하면 안된다."
- 게임을 도박과 같은 것으로 보고 뇌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게임과 갬블(도박)은 많이 다르다. 갬블은 어떤 것이든 그래픽이나 가차(무작위 뽑기 시스템)가 거의 똑같다. 단순한 가차의 반복으로 재미를 느끼지만 한계가 있다. 반면 게임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하게 하는 스토리텔링이 있다. 뇌가 다음 스토리가 어떻게 될지에 흥미를 느끼고, 전두엽이 자극을 받아 좋아진다."
- 게임 과몰입은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인가. "게임을 뺏으면 하루종일 누워 있는 아이들도 있다. 사실 게임을 7시간, 10시간 하는 아이들한테 물어보면 게임을 재미있게 하는 시간은 2시간밖에 안 된다고 한다. 할 일이 없어서 게임을 하고 부모와 싸우게 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아이들에게 다른 활동이 게임 활동을 밀어내는 식으로 가자고 한다. 7시간 게임하는 아이한테 2시간 줄이라고 하는 것보다 다른 것을 해 보자고 한다. 예를 들어 기타 치는 것이 좋으면 게임 시간이 5시간으로 줄어든다. 이것이 효과가 있다." <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프로필>
▲ (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과장·주임교수 ▲ (현) 중앙대병원 게임과몰입힐링센터장 ▲ (현) 중앙대병원 국제진료센터장 ▲ 2003년~현재 국내 프로야구 및 프로축구팀 스포츠 심리 자문 ▲ 2014~2015년 미국 유타 대학 연수(게임과몰입 환자치료 및 뇌분석 연구) ▲ 2008년 미국 보스턴대학 스포츠심리·연구 전임의 ▲ 2006년 미국 하버드 의대 뇌과학 연구소 연구 전임의 ▲ 2006년 서울대 임상의학 연구소 연구원 ▲ 2005년 서울대 소아청소년 분과 전임의 ▲ 2002~2004년 국립 춘천병원 정신과 과장
-게임 과몰입과 관련해 부모들이 가장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우리 아이는 게임만 안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게임만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것도 안 하는 것이 문제다. 대부분 부모들이 자녀가 학교도 가고, 공부도 하고, 체육도 하면 게임하는 것을 용인한다."
- 부모들이 자녀의 게임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부모가 게임에 대한 지식을 가져야 한다. 아이와 싸우는 이유가 부모보다 아이가 더 많은 게임 지식을 갖고 있어서다. 사람은 지식이 없으면 불안해 하고 부정적이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게임을 할 때 불안해 한다. 또 자녀가 하지 말라는 게임을 몰래 하면, 몰래 술을 마시는 것처럼 보게 되는 것이다. 부모가 게임에 대해 잘 알면 대처하는 것도 달라진다. 자녀가 게임을 하다가 3000만원짜리 불법 아이템을 샀다면, 게임을 못 하게 하기보다는 불법적인 요인에 대해 먼저 지적하고 차단하는 지도를 하게 된다. 또 게임에 대한 중립적인 시각을 가져야 한다. 아이가 게임과 관련해 문제가 있다고 하기 전에 다른 문제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평소에 공존 질환을 간과한 것이 아니지 등등…."
- 부모 입장에서 자녀가 게임과 관련해 어떤 증상을 보이면 심각하게 여겨야 하나. "일상 생활이 깨져 나가면 상담을 받아 보는 것이 좋다. 밤에 깨어 있다거나 학교에 가던 아이가 안 간다거나 신경질적이거나 친구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등 평소와 다른 행동을 하면, 게임으로 시작하지만 아이의 문제가 나온다. 게임 몰입으로 문제가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