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TV 프로그램이 20년 방송하며 1000회를 맞이했다. 축하받아야 마땅하지만, 이상하게 씁쓸하다. '개그콘서트'(이하 '개콘') 얘기다.
KBS 2TV '개그콘서트'는 19일 1000회 특집을 방영한다. 단일 프로그램이 1000회 이상 방영된 것은 KBS 1TV '가요무대' '가족오락관' '전국노래자랑' MBC 드라마 '전원일기' SBS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등 손에 꼽는다. 종영한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개그콘서트'의 1000회는 대한민국 코미디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성대한 잔치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1000회 특집은 역설적으로 '개콘'의 어두운 현주소를 보여준다. KBS는 '개콘' 1000회 특집을 준비하며 시청자를 대상으로 온라인 앙케트를 진행했다. 지난 20년간 시청자에게 선보인 코너·캐릭터·유행어·커플·MVP를 뽑는 것. 그런데 KBS가 제시한 후보는 모두 과거에 머물러 있다. 가장 최근에 방송된 후보는 송영길·이상훈의 '니글니글'로, 이마저도 3년 전인 2016년 막을 내렸다.
2016년은 '개콘'이 하락세를 타기 시작한 시점과 비슷하다. '개콘'은 한때 순간 시청률 49.8%(2003년 1월 26일 오후 9시 50분 '봉숭아 학당' 노통장 캐릭터)까지 기록할 정도로 국민 예능이었다. 2003년 평균 시청률이 28.9%였다. 그러나 최근 5년 기록은 2015년 13.1% 2016년 10.0% 2017년 7.8% 2018년 5.6% 2019년 5.5%로 가파른 내리막을 걸었다. 시청률 하락은 지상파 방송국의 공통된 숙제이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온라인 동영상 조회 수 상위권에서도 2015년 이후의 영상은 찾아볼 수 없다.
1000회 특집에는 '개콘' 역사 속 메가 히트 코너를 만든 코미디언이 총출동한다. 연출을 맡은 원종재 PD는 "바쁜 와중에도 '개콘'을 거쳐간 코미디언들이 흔쾌히 참여해줬다. 20년을 기념하고 정리하는 무대가 될 것이다. 어떤 코너를 넣을지보다 뭘 빼야할지 정말 많이 고민했다"고 전했다. 현재 '개콘'을 지키고 있는 강유미·김대희·신봉선뿐만 아니라 김미화·김병만·박준형·이수근·정종철 등 '개콘'을 떠난 코미디언도 오랜만에 무대로 돌아와 시청자를 만난다. '달인' '키컸으면' 등 전설적인 코너가 추억을 건드리며 웃음을 줄 것이고, 2년 전 방송된 900회가 그랬듯 화제를 모을 것이다.
하지만 1001회부터는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선 연출자도 코미디언도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원종재 PD는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힘든 과정 속에서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다. 다시 '개콘'을 살리겠다는 생각으로 똘똘 뭉쳤다"고 모호한 말만 늘어놨고, 신봉선은 "후배들이 좁은 연습실에서 고생하고 있다"고 인정에 호소했다. 그나마 1인 크리에이터로 활동 중인 강유미가 "유튜브 채널을 이용해 '개콘'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생각했다"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전유성은 "프로그램이 없어지는 건 간단하다. 시청자가 재미없다고 생각하면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봉선은 "'개콘'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기사 타이틀을 보고 싶다"고 했지만 '개콘'이 시청자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상황에서 획기적인 방안 없이 이렇게 손 놓고 있는다면 전유성의 말대로 1000회 특집 이후 언제 폐지되어도 이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