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 선수는 30대 중반만 넘겨도 노장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커리어를 통해 기량을 증명해도 나이라는 잣대를 피하지 못한다.
이대호(37·롯데)도 그랬다. 한국 야구 역대 최고 타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선수다. 한·미·일 리그를 모두 경험했고 통산 400홈런을 넘어섰다. 그런 그도 노쇠화 우려를 받았다. 개막 30경기에서 타율 0.280·2홈런에 그쳤다. 어느덧 한국 나이로 38세. '혹시'라는 의구심이 생겼다.
그러나 5월부터 '역시'를 보여 줬다. 출전한 12경기에서 타율 0.451·6홈런·19타점·OPS(출루율+장타율) 1.382를 기록했다. 이 기간 멀티 히트만 9번, 2타점 이상 기록한 경기도 7번이다. 5월 둘째 주에는 리그 타자 가운데 타율(0.593) 홈런(4개) OPS(1.756) 1위에 올랐다.
2017·2018시즌 모두 일정 기간 동안 부침을 겪었다. 그러나 모두 타율 3할2푼·홈런 34개를 넘기며 시즌을 마무리했다. 새어 나오던 우려를 기우로 만들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이대호를 향한 평가는 박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도 침체기가 길어지면 꼬리표처럼 나이가 붙을 것이다. 일단 선수는 그런 시선을 받아들인다. "못하면 어쩔 수 없다"며 말이다. 그리고 이번처럼 증명할 생각이다. "잘하면 아직 죽지 않았다는 말도 듣게 된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일간스포츠와 조아제약은 리그에서 가장 뜨거운 타자 이대호를 5월 둘째 주 주간 MVP로 선정했다. 이대호와 얘기를 나눴다. 그는 우려의 시선을 인정하고 실력으로 보여 주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 세 시즌 연속 조아제약 주간 MVP를 수상했다. 소감을 전한다면. "지난주에 타격감이 조금 올라온 덕분에 팀이 이기는 경기에 기여할 수 있었다. 덕분에 주간 MVP를 받게 됐다. 앞으로도 계속 잘하고 싶다. 이런 상을 더 많이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시즌 초반 성적은 좋지 않았다. 전환점이 된 경기가 있었나. "특정 경기를 통해 계기를 만든 건 아니다. 나는 원래 밀어 치면서 감을 잡는 유형이다. 타격감이 안 좋을 때는 밀어서 안타나 홈런을 생산하기 어렵다. 훈련·실전을 통해서 이 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고 1개씩 결과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감이 잡힌 것 같다."
- 타점 생산 페이스가 빠르다. 140개 이상이다. 타이틀 욕심은. "아직 100경기가 넘게 남아있다. 최종전까지 10경기 정도 남았을 때도 선두라면 경쟁에 욕심이 날 것이다. 아직은 아니다."
- 개인 최다 타점(2010시즌·133개) 경신은 어떤가. "마찬가지다. 전혀 하지 않는다. 현재 내가 개인 기록 생각할 때가 아니다. 타자라면 득점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결과를 내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그 상황에 집중할 뿐이다. 한 개씩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의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나중에 생각할 문제다."
- 이대호가 살아나면 롯데도 동반 상승한다. 침체기도 벗어날 조짐이다. "야구는 특정 선수 한두 명에 의존할 순 없다. 그러나 당연히 롯데의 반등을 기대하고 있다. 현재 부상 선수가 너무 많다. 그 선수들이 돌아올 때까지 남아 있는 인원이 최선을 다해서 버텨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늦지 않았다. 버티고 있으면 부상자가 돌아왔을 때 반드시 반등할 수 있다고 믿는다."
- 팀 성적이 부진할 때 후배들에게 '좋아하는 야구를 하고 있으니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지 말자'고 말해 준다. 스스로에게도 하는 말인가. "물론 나 자신에게도 하는 말이다. 결과가 안 좋을 때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쉽지 않다. 모든 게 안 좋게 느껴진다. 그러나 전환점·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긍정적인 마인드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쌓이다 보면 팀 전체 분위기도 변할 수 있을 것이다."
- kt 이대은·삼성 원태인 등 리그 새 얼굴들이 데뷔 전부터 이대호와의 대결을 손꼽았다. 어떤 생각이 들던가. "그 친구들이 프로야구 선수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을 때, 내가 야구를 하고 있었기에 그런 것 같다. 내 이름을 언급해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그 친구들이 나를 이기면 한국 야구도 발전할 수 있다. 나도 열심히 해서 아직은 지지 않도록 하는 게 역시 한국 야구와 내 이름을 언급해 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성적이 좋든 나쁘든, 나이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 어떻게 생각하나. "가끔은 서운할 때가 있다. 그러나 당연한 것 같다. 못하고 있으니까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분명히 운동 선수로는 많은 나이다. 그러나 성적을 내고, 팀에 기여하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한다. 내 할 일을 하면 된다."
- 양상문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추고 있다. 스프링캠프부터 넉 달 째다. 어떤가. "감독님께는 항상 고맙다. 항상 좋은 기운 주고, 믿음을 보내 주신다. 나는 그 믿음에 부응하고 싶다. 더 잘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