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극 '봄밤'을 통해 자존심 센 집착남 권기석 역으로 활약했던 김준한이 인터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수줍게 미소를 지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부드러운 모습이었다. "드라마와 너무 다른 것 같다"고 하자 "그런가요?"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촬영 끝나고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고 잠도 실컷 자고 있다. 푹 쉬고 있다"는 그는 여유가 넘쳤다. 밴드 이지(izi) 드러머로 연예계에 처음 입성했다가 배우의 길로 다시금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상황. 차근차근 한 단계씩 밟아왔고 지금의 위치까지 오른 그는 자신의 연기 스승 고준, 그리고 '봄밤'에서 함께한 안판석 PD를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냈다.
-극 중 나쁜 남자로 나왔다. "지난해 방영됐던 드라마 '시간' 속 민석이에 비하면 권기석은 나쁜 것도 아니었다. 요즘 재밌는 게 사람들이 같은 걸 보고 다양한 생각들을 하더라. 그 지점이 너무 재밌다. 그래서 더 현실적이다. 우리가 살면서 다양한 이런 문제들에 부딪히지 않나. 칼로 자르듯 이게 맞아, 저게 맞아 할 수 없지 않나. 답을 못 내리는 게 진짜 현실 같았다."
-연기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공감하려고 노력했다. 왜 이렇게 얘기할까. 왜 이런 결정을 할까. 이런 것들에 공감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남들이 욕해도 공감하려고 했고 그래야 된다고 생각했다.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인물을 연기한다고 할지라도 연기하는 당사자는 그 인물의 편에 서서 해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평가는 보는 사람들이 하면 된다. 한지민(정인)과의 관계에 집중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익숙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게 약간의 무관심이기도 하다."
-한지민과의 호흡은 어땠나. "베테랑이다. 배려를 많이 해줬다. 내 입장에선 너무나 톱스타다. 대하는 게 어렵다. 나이도 1살 누나다. 역할상으로는 오빠로 나오니 말을 편하게 하라고 해서 현장에선 '정인아'라고 불렀다." -기석이는 왜 이렇게 한지민에 질척거렸을까. "자존심 때문인 것 같다. 기석이는 서툰 사랑을 한 것이다. 엄마의 부재, 가정환경, 그렇다 보니 사랑도 승부로 볼 수 있다. 한 사람으로 보면 안타까운 일이다. 죽기 전까지 진정한 사랑을 알 수 있을까 싶다."
-실제 김준한이라면. "나라면 받아들이는 쪽으로 가지 않았을까 싶다. 받아들이는 건 나 자신을 위한 것이다. 여자 친구의 마음이 돌아섰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게 얼마나 더 고통스럽고 괴롭겠나. 나 역시 어릴 땐 이별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이젠 나이가 들다 보니 상처 받지 않는 쪽으로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사랑하기 쉽지 않다. 근데 현실에서 여자 친구의 시그널을 잘 읽지 못하는 편이다. 그 부분에서 기석이가 이해됐다."
-이 작품을 통해 배운 점은. "인간의 민낯을 본 것 같다. 사랑 앞에서, 이별 앞에서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 상대방이 느끼는 게 뭔지, 내 방식으로 해도 상대방에겐 불편함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많이 배운 것 같다. 다음에 사랑을 하게 된다면 좀 더 성숙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한지민과의 갈등이 치닫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오빠는 알면서도 묵인했다. 그게 날 가장 아프게 했던 지점이다'라고 퍼붓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이 우리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큰 지점 중 하나가 아닌가 싶었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이지 않나. 외면했던 부분이 누군가의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