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일본차 브랜드가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달 판매량이 전월 대비 30% 넘게 급감했다. 올 상반기 내내 20%대를 유지하던 점유율도 10%대 초반으로 뚝 떨어졌다.
최근 불매운동 분위기를 고려하면 일본차의 판매 감소는 상당기간 이어질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빈자리는 벤츠·BMW 등 독일차가 채웠다. 한껏 기대했던 국산차는 되려 판매량이 줄었다. 급한 김에 할인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효과에는 물음표가 붙었다. 오히려 가격 신뢰도만 떨어트린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일본차 안 사요"…역대급 성장→역대급 최악
7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수입차 판매량은 1만9453대로 전년 동기 대비 5.2% 감소했지만 전월 대비로는 0.3% 소폭 증가했다.
반면 도요타·렉서스·혼다·닛산·인피니티 등 국내에서 판매되는 일본차의 7월 판매량은 총 2674대로 전년 동월에 비해 17.1% 감소했다. 특히 전월인 6월과 비교해서는 32.2%나 줄었다.
이에 따라 7월 수입차 시장에서 일본차 점유율은 6월 대비 6.7% 추락한 13.7%에 머물렀다. 일본차는 올 상반기 내내 20%대 점유율을 유지했다.
브랜드별로 보면 도요타와 렉서스의 판매량 감소가 두드러진다.
올 상반기 전체 수입차 시장 위축에도 하이브리드 차량을 내세워 전년 대비 32.7% 판매량을 늘렸던 렉서스의 7월 판매량은 6월 대비 24.6% 감소한 982대에 머물렀다.
도요타(865대) 역시 같은 기간 판매량은 37.5%나 빠졌다. 6월만 해도 도요타(1384대)와 렉서스(1302대)는 나란히 1000대 이상을 판매했었다.
올 들어 벤츠, BMW에 이어 수입차 판매 3위를 기록했던 도요타의 7월 순위는 6위까지 떨어졌다. 렉서스는 4위 미니(906대)에 근소하게 앞서 3위에 이름을 올렸다.
상반기 94.4%의 판매량 증가를 보인 혼다 역시 불매운동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6월 801대를 판매했던 혼다의 판매량은 지난달 500대(468대) 밑으로 떨어졌다. 전월비 판매량 감소율은 41.6%로 5개 브랜드 중 가장 컸다. 닛산과 인피니티의 7월 판매량도 전월 대비 각각 19.7%, 25.1% 감소한 228대, 131대에 그쳤다.
지난달부터 시작된 일본차 불매운동의 영향이 실제 판매량으로 반영돼 발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어 실제로 불매운동의 영향이 곧장 나타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7일 서울의 한 도요타 매장도 매우 한산했다. 시승과 견적 문의를 위해 매장을 찾은 손님은 보이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도요타 딜러는 "한일 갈등으로 인한 불매운동의 여파로 고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며 "급여의 상당 부분이 차량 판매에서 나오는 만큼 좋은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와 관련해 7월 초·중순부터 본격적인 불매운동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일본차 판매 감소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관측도 나온다.
수입차 업계 관계자는 "일본차 불매운동이 예상보다 빠르게 나타나는 것 같다"며 "8~9월에 여파가 더 본격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빈자리 메운 벤츠·BMW…국산차는 군침만
일본차의 빈자리는 메르세데스 벤츠와 BMW 등 독일차가 차지했다.
벤츠는 지난달 7345대가 팔려 전달대비 판매량이 10.8% 늘었다. BMW는 14.1% 증가한 3755대가 판매됐다. 두 회사는 수입차 판매 1~2위도 지켰다.
같은 독일차 브랜드인 미니 역시 전달과 비교해 50.5%나 늘었다. 이는 올 들어 두 번째 높은 기록이다.
업계 관계자는 "독일차의 판매실적이 회복되고 전체 수입차 시장의 판매량이 전달보다 소폭 증가했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일본차들의 판매가 전달대비 두 자릿수의 감소율을 보인 것은 최근의 일본제품 불매 움직임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차의 부진을 남몰래 웃고 있는 독일차 브랜드와 달리 국산차는 눈뜨고 지켜 보고만 있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일본제품을 구매하지 말자'는 것에서 국산 대체품 찾기로 운동이 확산되고 있지만 국산차 판매는 좀처럼 늘고 있지 않아서다. 정부가 소비 진작책으로 시행 중인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 조처도 무색할 정도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KAMA)에 따르면 완성차 5사의 7월 내수 판매가 전년 동월 대비 2.0% 하락했다. 전반적으로 판매가 줄거나 전년 수준에 머물렀다.
현대차와 기아차는 각각 쏘나타와 베뉴, K7과 셀토스의 신차효과가 있었지만 상호 동급 차종의 판매간섭으로 신차효과가 상쇄되며 나란히 전년 동월과 같은 수준에 머물렀다. 한국GM은 신차 부재로 판매가 내리막길을 걸었고, 쌍용차는 코란도의 신차 효과가 있었으나 다른 차종의 노후화에 따른 판매 감소를 일본차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일본차 판매감소로 반사이익이 기대됐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 이하였다"며 "일본차 수요가 다른 해외 브랜드로 옮겨간 영향이 크다"고 말했다.
할인카드 꺼내든 국산차…효과는 미지수
실적이 기대에 못미치자 완성차 업계는 대대적인 프로모션에 나섰다. 대규모 할인에서 무이자 혜택까지 판촉 활동은 전방위적이다.
현대차는 이달 한달 동안 각종 할인 상품을 내건 '쿨 썸머 페스타'를 펼친다. 아반떼와 그랜저(6월 이전 생산분)를 구입할 경우 36개월 저금리(1.25%) 할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현대차는 국가고객만족지수(NCSI) 1위를 기념해 전 차종을 대상으로 20만원을 지원한다.
기아차는 이달 중 전시장을 방문한 고객들에게 '셀토스' 1대(1명), 해외여행 상품권(2명), 유명호텔 숙박권(15명), 기아차 계약금 10만원 지원(4000명) 등을 추첨으로 준다.
르노삼성차는 신형 '더 뉴 QM6'와 2020년형 SM6를 포함한 신차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여름휴가비 지원, 보증연장 무상제공, 무이자 금융 등 다양한 할인 상품을 제공한다. '더 뉴 QM6'를 구입하면 여름휴가비로 30만원을 주고 보증수리기간을 5년·10만km까지 연장해주는 해피케어 보증연장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옵션 또는 용품구입비(최대 60만원어치) 중 한 가지를 선택할 수 있다.
한국GM 쉐보레는 선수금과 이자가 없는 36개월 '더블 제로' 무이자 할부 프로그램을 최대 50개월로 확대했고, 할부 개월 수에 따라 '스파크'는 90만원, '트랙스'는 130만원, '이쿼녹스'는 220만원, '임팔라' 260만원까지 현금 지원 혜택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쌍용차도 모델 별로 최대 200만원을 할인해 주는 '쿨 서머 세일 페스타'를 진행한다. 코란도 가솔린 모델 출시를 기념해 선물을 증정하고 고객 선호사양 장착비용을 준다. 오는 16일까지 '베리 뉴 티볼리'를 구매하면 바캉스비 20만원, 이후 월말까지 10만원을 지원한다.
이 같은 공격적인 프로모션 전략이 실질적인 이득이 있을지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대적인 할인 행사가 일본차 수요 흡수보다는 오히려 수익성 악화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신차를 구매하는 소비자 입장에서 할인은 반가운 일이지만, 가격 거품과 중고차 가치 하락 등 완성차 시장 신뢰도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며 "단기적인 할인 행사보다는 일본차 대비 제품 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