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록은 KBS 2TV '퍼퓸'을 통해 데뷔 처음으로 로맨틱 코미디를 연기했다. 극 중 창의적으로 섬세하게 병든 천재 디자이너 서이도 역을 맡은 신성록은 52종의 공포증과 35종의 알레르기 때문에 괴팍하고 신경질적인 성격이지만 실력 하나로 대한민국 최고의 디자이너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알고 보면 어릴 때부터 평생 한 여자만을 사랑해온 이 시대의 마지막 로맨티시스트. 2인 1역의 고원희(민예린)·하재숙(민재희)과 애틋한 멜로 서사를 완성했다.
'별에서 온 그대' '리턴' '황후의 품격' 등 강렬한 역할로 인상을 남겼던 신성록의 변신에 대중들도 환호했다. '퍼퓸'은 시청률은 높지 않았지만 신성록과 고원희, 하재숙의 코믹한 B급 감성에 녹아든 삶에 대한 메시지에 많은 시청자가 공감했다. 신성록은 로코를 시작으로 멜로나 의학물 등 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차기작 '배가본드'에서도 신성록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신성록에게 '퍼퓸'이란. "평생 로코 못하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기회가 돼서 좋았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해준 작품이다."
-로코 어땠는지. "재밌었다. 안 맞는 장르라는 괴리감은 하나도 없었다. 재밌고 로코를 하니까 또 센 거 하고 싶다. 센 걸 하면 또 코믹을 하고 싶어질 것 같다."
-로코를 하면서 들어온 대본에 변화가 있었는지. "구체적인 건 아니지만 그 전엔 사이코패스 악역 같은 느낌이 많이 들어왔다면 다른 것도 얘기해주시는 것 같다. 멜로 같은 것도 해볼 기회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가능성이 늘었다."
-기억에 남는 댓글이 있다면. "'악역만 어울리는 줄 알았는데 로코도 잘하는구나' 그런 말을 듣고 싶었는데 정말 말을 많이들 해줘서 좋았다."
-유치할 수 있는 캐릭터였는데 잘 살려냈다. "유니크한 대사, 단어 선택이 좋았다. 그리고 이 많은 양의 대사를 거침없이 쏟아내는 신들을 소화하면서 성장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 신 새로울 순 없고 클리셰인 신도 있는데 그래도 최대한 다르게 보이게끔 하려고 현장에서 감독님과 얘기를 많이 나눴다. 뻔했던 신, 늘 봐왔던 신도 있지만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는 신들도 있었다."
-'황후의 품격' 이후 차기작을 빨리 결정했는데. "너무 급한 감도 사실 있었다. '배가본드'라는 드라마가 상반기에 할 뻔 했는데 하반기로 편성이 되면서 고민을 많이 했다. 계속 악역 혹은 센 캐릭터를 많이 했고 나이가 점점 들어가면서 '로코는 못할 수도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한 번쯤은 하고 싶었다. 뮤지컬에서도 그런 걸 좋아해 주신 분들이 있어서 영상 작품에서도 로코, 코믹, 사랑 연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신성록 하면 악역이라는 이미지가 박혀있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욕심을 내게 됐다."
-하재숙, 고원희와 호흡은 어땠나. "좋은 배우들이다. 하재숙과는 처음엔 많이 못 만나고 후반에 많이 만났는데 호흡이 좋았다. 고원희는 어린 후배인데도 유연하고 연기도 잘한다. 똑같은 대본을 해도 해석이 다를 수 있는데 그런 것들도 현장에서 스펀지처럼 받아들여 줘서 수월하게 할 수 있었다."
-실제 사랑하는 스타일은. "그렇게 지고지순한 인간은 아니다. 그래서 마인드컨트롤하면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연기했다. 모든 인물을 인간적으로 이해하면서 연기하진 않는다. 사이코패스를 어떻게 인간적으로 이해하나. 유추해서, 다른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서 한다."
-도움을 받았던 작품이 있나. "뮤지컬 '키다리 아저씨'에서 제가 했던 역할이 여자주인공과 편지로만 마음을 주고받고 헌신하고 도와주는 캐릭터인데 그 경험이 도움이 됐다." -차기작 계획은. "좋은 작품이 있으면 할 텐데 '배가본드'가 방송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조금 쉬면서 좋은 작품이 오길 기다리려고 한다."
-'배가본드'에서는 어떤 역할인가. "악역은 아니다. 국가의 비리에 불응하는 국정원 팀장이다. 그 전과는 또 다른 역할일 거라고 생각한다."
-연기 생활에서 후회되는 점이 있다면. "재능이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은 많이 했다. 지금의 입지로 봤을 땐 지금이 제일 나은 것 같은데 그 전부터 조금씩 성장하면서 욕도 많이 먹었고 연기 못한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런 게 양분이 돼서 지금이 가장 그 전보다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 재능이 없는 것도 맞고 어렵다는 생각도 많이 했고 슬럼프는 많이 있었지만 다른 걸 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다."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했나. "우울감에 빠져있을 때 남들보다 인정 못 받는다고 해서 불행한 건가? 높은 자리에 있지 않다고 해서 불행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됐다. 사실은 무대에 서 있기만 해도 행복한 거다, 애초에 '배우를 했을 때 이 정도 될 줄 알았나?' 생각해보면, 아니었다. 그래서 원초적인 성격을 찾았다. 밝고 즐거운 성격으로 돌아왔고 실력도 그 이후에 더 좋아진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했을 때가 언제쯤인지. "군대 가기 전이었다. 서른 살에 공익근무를 했다. 생각보다 늦었다. 그때 욕심으로는 배우로서 더 많은 사랑을 받고 가는 스타들을 보면서 나도 다녀와서도 나를 관객들이 찾아주는 배우가 되고 싶은 욕심이 있었는데 그게 전혀 아니었다. 그땐 좀 그랬는데 생각을 바꾸게 됐다. 그냥 즐겁게 놀자고."
-쉼 없이 했는데. "이번엔 쉬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배가본드'가 계절감도 맞춰야 하고 해외 촬영도 있고 그러면서 1년이 걸렸다. 텀이 있을 땐 '황후의 품격'을 했다. 이렇다 보니 머리를 조금 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쉬는 방법을 잘 모르는 사람이어서 또 금세 일하고 싶을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