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핫'한 배우들의 만남이다. 지난 2007년 데뷔 이래 가장 높은 주목도를 자랑하고 있는 이준혁(36)과, 브라운관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면서도 제 자리는 올곧이 지키고 있는 독립영화계 아이돌 이주영(28)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부국제·BIFF)가 한창 치러지고 있는 부산 해운대에서 만났다.
"사실 부국제에 오려고 찍은 작품이에요" "전 주영이 매니저로 왔어요" 이주영은 솔직했고, 이준혁은 이주영의 말이라면 다 옳았다. 시종일관 티격태격 친남매 같은 모습을 뽐냈지만 그 저변엔 믿음과 애정이 깔려 있다. 물론 쏟아지는 배고픔에 숟가락부터 든 이주영과 달리, 술잔에 먼저 손을 뻗은 이준혁은 서로가 인정할 정도로 정반대 성향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 또한 눈여겨볼만한 '케미의 정석'이다.
염원했던 부국제 참석은 현실화 됐다. 이주영과 이준혁은 올해 부국제 '한국영화의 오늘' 부분에 공식 초청된 영화 '야구소녀(최윤태 감독)'로 부산 땅을 밟았다. 개막식부터 이어진 빼곡한 스케줄로 잠도 제대로 못자며 보내야만 했던 3일. 부산에서의 마지막 일정으로 취중토크 자리에 앉은 이준혁과 이주영은 대구탕을 한 사발 씩 앞에 놓고 서로를 독려하기 바빴다.
'야구소녀'는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여고생 야구선수가 금녀의 벽을 넘어 프로야구 진출에 도전한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좌절하면서도 꿈을 향한 질주를 멈추지 않는 청춘의 모습을 유쾌하게 그려낸 청춘 영화다. 극중 이주영은 여고생 야구선수 주수인을, 이준혁은 상처 많은 과거를 품은 채 무료한 현재를 살아가는 코치 최진태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지난 4일 첫 상영된 '야구소녀'는 이날 상영작 중 가장 먼저 매진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모았다. 이주영과 이준혁은 관객들과 첫 상영, 첫 대화의 추억을 함께 하며 맹목적 지지와 응원도 한 몸에 받았다. 개봉 시즌 전, 부국제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동이다. 취중토크 자리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자 이준혁은 "부국제는 진~짜 좋은 곳 같다"며 멋들어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준혁은 '야구소녀'를 통해 만난 이주영을 현 소속사에 직접 추천할 정도로 '배우 이주영'을 아끼는 마음이 남다르다. 관객과의 대화에서 이주영의 행보를 "이 시대의 얼굴"이라 표현하기도 했을 정도. 인터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이준혁은 이주영을 치켜 세우는데 여념이 없었다. '기승전이주영'으로 끝나는 말들에 이주영조차 손사레를 치며 "선배님!"하고 외치기 바쁜 순간이 여러 번이었다.
차근차근 한 걸음씩 성장하고 있는 이주영은 조금씩 '배우의 삶'에 적응하고 있는 단계다. 여전히 유리천장을 느끼지만 과거와는 분명 달라진 환경이 반갑기도 하다. 잘생긴 얼굴이 변했을 리 없지만 유독 최근 '잘생김'으로 화제의 중심에 서고 있는 이준혁은 "대체 어디에서 그러냐"며 진심으로 궁금해 하더니 높아진 인기에도 "동의하지 못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준혁의 말들에 반박의 뜻으로 지긋이 쳐다보자 "영원한 건 없고, 다양성이 존중받는 분위기 아니냐.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도 관심을 보내주시는 것 같다"며 끝까지 머쓱해 했다.
이준혁은 일찌감치 합류를 결정지은 드라마 '비밀의 숲2' 전 깜짝 특별출연을 준비 중이고, 이주영은 JTBC '이태원 클라쓰'를 통해 파격변신을 꾀한다. 쉴틈없이 바쁜 나날 속 때론 지칠 때도 있지만, 연기하고 일할 때 엔돌핀이 샘솟는건 부정할 수 없다. 피자를 품에 안고 영화를 감상할 때, 강아지와 함께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이준혁과 이주영이 돌아간 서울에서 잠깐의 행복함을 꼭 느꼈길 바라본다.
-각기 다른 방식이겠지만 누구나 주수인처럼 성장통은 있기 마련이에요. 이주영은 어땠나요. 주영"전 제가 언제 데뷔한 지 몰라요. 데뷔작, 데뷔일을 명확히 규정짓기가 애매해요. 2011년부터 독립영화를 계속 해왔지만 '이주영이 데뷔한다'는 느낌으로 작품이 나왔던건 없거든요. 그냥 잔잔하게 대중들에게 스며들고 있는 것 같아요.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은 그래요."
-캐릭터에 대한 공감이 어렵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주영 "맞아요. '야구소녀' 주수인은 귀감이 될 수도 있고,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는 캐릭터예요. 저는 개인적으로 '결국 우리 모두가 주수인이 됐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이 영화의 흐름은 '그래서 주수인이 프로선수가 되느냐, 못 되느냐'를 따라가지만, 촬영할 땐 어느 순간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싶더라고요. 프로선수가 되고 싶어하는 주수인이 험난한 길을 걷는건 능력치보다 다른 요인이 더 커요. 현실의 주수인들도 그런 경우가 많죠. 주수인 캐릭터에 영감을 준 실제 선수를 만난 적이 있는데, 진짜 녹록치 않더라고요. '남자였으면 달랐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슬펐어요."
-자의가 아닌 타의일 때, 그런 감정이 배가 되는 것 같아요. 주영 "주변에서 한계를 정해놓는 거잖아요. 너무 안타까워요. 저도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면서, 여자배우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것들이 분명 있거든요. 내 꿈이나, 내가 가고 싶은 방향에 대해 성별을 비롯한 모든 것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는 길이 점차 열렸으면 좋겠어요."
-여전히 유리천장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주영"……. 못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요.(웃음) 그럼에도 좋아지고 있는건 맞아요. 전 아직 경력도 많지 않고, 어쩌면 이제 본격적으로 배우 활동을 시작하는 입장이지만, 제가 활동한 시간 안에서도 변화는 있었어요. 스스로도 그렇고, 주변을 봐도 좋아지는게 느껴져요."
-예를 들면요. 주영"지금 이옥섭 감독님과 함께 한 '메기'가 상영 중인데,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올해 이렇게 많은 여성 감독님들의 영화가 각광받을 줄은 몰랐거든요. '벌새(김보라 감독)' '우리집(윤가은 감독)' '아워바디(한가람 감독)' '밤의 문이 열린다(유은정 감독)' 등 작품들이 쏟아져 나와 신기하기도 하면서 '다행이다' 싶어요. 기회를 갖게 되고, 다음을 생각하게 되는 것 만큼 좋은건 없잖아요. 저는 거기에 조금이나마 일조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고요."
-최진태 역시 과거에는 주수인처럼 원하는 꿈을 향해 달려갔을지언정, 지금은 현실과 타협해 살아가는 인물처럼 보였어요. 배우 이준혁은 어떤 것 같나요. 준혁"저는 '야구소녀'가 꿈의 다른 언어를 이해하는 것이라 생각해요. 개개인의 꿈은 다르고, 그 기준도 여러 시선으로 바라 볼 수 있죠. 그런 면에서 연기도 마찬가지에요. 아주 어렸을 때 학원에서 연기를 배운 적이 있는데, 수 많은 친구들 중에서 어떤 작품에 단 한 신 출연했던 친구가 있었어요. 그땐 우리 모두 그 친구가 진정한 꿈을 이뤘다 생각했고, 정말 성공한 사람이라고 부러워했죠. 아주 단편적으로 비교했을 때, 지금의 저는 당시 그 친구보다 더 많은 작품, 더 많은 신에 출연하고 있어요. 하지만 기준점을 달리 봤을 때 꿈을 이룬 사람은 아니에요."
-아직 과정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준혁 "꿈이라는 것이 이 일을 하는 그 자체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언가를 얻는 걸 바라는 상태인지 알아야 해요. '야구소녀' 진태는 그걸 구분하고 있는 인물이고요. 어쨌든 제 목표, 혹은 꿈은 주변 이들과 함께 가는 거예요. 배우라는 직업은 갓길을 걸을 수도 있고, 때론 예상치 못한 순간 사고가 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리스크가 조금 더 크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함께 하는 동료들이 정말 중요하죠. 꼭 '원피스'처럼 보물섬을 찾으러 가는 길인 것 같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잘 걸어나갈 수 있길 원해요."
-걷고있는 길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요. '이 길이 내 길인가' 한번쯤 고민하게 되잖아요. 주영"다행히 위기라면 위기일 수 있었던 순간들을 잘 넘어선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내가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계속 하는 게 맞는 걸까?'를 먼저 생각했어요. 근데 지금은 좀 달라요. 고통스러운 점도 있지만, 이 일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을 더 찾으려 하고, 더 발견해 나가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제가 너무 긍정적으로만 생각하는 걸 수도 있지만요.(웃음)"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요. 주영"'그래도 나는 이런 점을 가지고 있잖아. 이런 점은 사랑하잖아!'라는 생각으로 상쇄 시키는거죠.(웃음) '메기'와 '야구소녀'로 관객들을 만나고 있는 것처럼, 내가 공들이고 우리가 함께 만들어나간 무언가를 누군가 보고 좋아해주면 그걸로 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땐 '나를 왜 좋아할까'라는 생각도 한 적이 있어요. 그들이 혹여 나를 보면서 느끼는 행복감은 그들의 것이지 제 것이 아니라고 선을 긋기도 했고요. 이젠 아니에요. '그들의 행복으로 나도 행복할 수 있구나'라는 걸 알게 됐고, 알아가고 있어요." 준혁"전 별 것 없어요. 하루동안 나눈 대화들 중, 가장 의미있는 대화의 주제는 작품에 대한 거예요. 기승전일? 연기?(웃음) 성패를 떠나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공유하는 게 좋아요. 매니저와 통화도 같은 맥락이죠. 물론 따져보면 고통스러운 부분도 많지만, 세상 대부분의 의미있는 것들은 다 고통을 동반하는 것 같아요. 더 나아가 고통이 없으면 의미가 사라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저도 가끔은 다른 길을 생각할 때가 있죠. 그게 고통이라면 고통이고요. 그렇지만 결국 내가 가장 오래, 많이 생각하는건 연기라는 사실이 변함없어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럼 가장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요. 준혁"하…. 고민된다….(웃음) 이것도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여유롭게 맛있는 피자를 먹으면서 진짜 재미있는 영화를 보고 있지만, 스케줄을 걱정하지는 않는 덜 불안한 상태요. 하하하. 할 일을 정해놓고 쉴 때만큼 행복한 순간이 없어요. 이거 진심이에요. 행복이란 게 멀리 있는 게 아니니까요." 주영 "저도 되게 소소해요. 근데 그 소소한걸 지금은 하지 못하고 있어서 너무 슬퍼요. 전 강아지와 있을 때 제일 행복하거든요. 지금은 약 한 달간 강아지를 못 봤어요. 잠깐 떨어져 있는 상황인데 저에겐 너무 불행한 일이죠. 집에서 강아지와 뒹굴거리면서 준혁 선배처럼 맛있는 것 먹고, 영화 볼 때 '아, 이게 진짜 행복이구나' 싶어요. 그래서 집을 못 벗어나나봐요.(웃음)"
-집순이 집돌이인가요. 주영 "완전요! 친구들 중에서도 하루에 한번은 꼭 나가야 한다는 친구들이 있어요. 30분? 단 10분이라도요. 집 앞 마트라도 가는거죠. 전 아니에요. 집에만 있을 수 있어요. 최장 5일까지도 있어 봤어요." 준혁"'핵아싸'라는 단어 있죠? 그게 저예요. 전 그 단어가 너무 좋아요. 구구절절 설명없이 딱 한 단어로 저를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5일이 뭐야. 열흘, 한 달도 있을 수 있어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