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장인'의 만남은 역시 옳았다. 가을 스크린을 접수한 로맨틱 코미디 영화 '가장 보통의 연애(김한결 감독)'가 20일까지 누적관객수 245만 명을 돌파하며 여전히 박스오피스 톱3를 달리고 있다. 그 중심엔 멜로킹 김래원이 있다. 오매불망 파트너로 원했던 공효진과는 드라마 '눈사람'(2003) 이후 16년만에 재회해 화끈한 '흥행 축포'를 터뜨렸다.
멜로에 일가견이 있는 배우로 손꼽히지만 스크린 멜로는 꽤 오랜만이다. 김래원은 최근 '롱 리브 더킹: 목포 영웅'(2019) '프리즌'(2016) '희생부활자'(2015) '강남1970'(2014) 등 남성 중심의 분위기 짙은 장르물을 통해 강렬한 이미지를 각인 시켰다. 때문에 오랜만의 스크린 멜로, 그것도 가벼운 로코 컴백은 반가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스스로는 '멜로를 잘한다'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어렵다'고 받아 들인다는 김래원은 '가장 보통의 연애' 촬영 전 "무조건 조력하겠다"는 다짐부터 했다는 후문이다. 늘 이끌었고, 매번 이끌려 했던 현장에서 이젠 막무가내로 채우기보다 조금씩 비워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 '비워야 채워진다'는 깨달음은 데뷔 22년차 김래원을 한 걸음 더 성장하게 만들었다.
-'가장 보통의 연애'는 왜 출연했나. "제작사인 영화사 집 이유진 대표님이 '찌질한 역할인데 한번 해볼래?'라면서 제의를 주셨다.(웃음) 시나리오를 받았는데, 난 찌질하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 들더라.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저 이 연애가 너무 흥미로웠고, '상대 배우와 호흡만 잘 맞으면 재미있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었다. 그래서 택했다."
-전작 '롱 리브 더 킹' 스케줄과 다소 얽혀 있었다. "'어떤 배우가 같이 하면 좋겠냐'는 말에 '공효진 씨와 하면 좋을 것 같다. 어울리지 않겠냐'는 말씀을 드렸다. 당시 효진 씨가 다른 작품을 촬영 중이었는데, 시나리오를 받았고 '오케이'도 했다고 하더라. 다만 남은 스케줄이 있어 우리가 효진 씨를 기다렸다. 그러다 나에게 '롱 리브 더 킹' 시나리오가 들어와 일단 하게 됐다. 효진 씨가 나를 두 달 더 기다렸다.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서로 기다렸던 시간이다."
-왜 찌질하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공감을 했다는 뜻인가. "술 마시고 만났던 사람에게 연락해본 적은 없다.(웃음)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다를 뿐이지 사실 아픈 기억들은 하나씩 다 갖고 있지 않나. 재훈이라는 인물은 좀 더 여리고, 술에 의지를 하는 사람인 것이다. 극복해내는 방법이 미숙하고, 재훈 입장에서는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라 그런 실수들이 나온 것이지, 그것이 재훈이 찌질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찌질한 연기 해볼래?'라는 말을 들었을 때, '왜 나에게?'라는 궁금증은 없었나. "기분이 아주 썩 좋지는 않았다. 하하. 그보다 찌질한 캐릭터라고 하니까 어디가 얼마만큼 찌질한지 궁금했다. 근데 찌질하지 않아서 시나리오를 다 읽은 후에도 '어느 포인트가 찌질하다고 하는거지?'에 대한 의문을 계속 갖고 있었다." -재훈은 영화에서 반 이상 취해있다. 취중 연기가 굉장히 자연스러웠는데 실제 술의 힘을 빌리기도 했나. "그러찮아도 지인 몇 분이 '너 진짜 술 마시고 연기한거지?'라고 하더라. 그 또한 어느 포인트인지 모르겠다.(웃음) 솔직히 연기할 땐 '아, 너무 어색한거 아닌가. 어떻게 해야하지?'라는 고민이 많았다. 술은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내 생각엔 그간 영화,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에서 목격했던 모습들이 짬뽕 돼 튀어나온 것 아닌가 싶다. 분장의 힘에 기대기도 했다."
-볼터치가 눈에 띄더라. "맞다. 부분 부분 과해 보일 때가 있다. 그래도 될만한 신에서 의도적으로 칠했던 것이다. 분위기를 너무 무거워지지 않게 만들려는 이유도 있었고, 좀 더 취한 효과를 내기 위함도 있었다. 연기가 좀 어색해도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내심 바라기도 했다."
-실제 주사는 없나. "없다. 필름이 끊겨 본 적은 있다. 술을 마셔도 늘 매니저가 옆에 있으니까 대부분 바로 집에 간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무엇인가. "술에 잔뜩 취한 채로 걷다가 넘어져 길바닥에 나뒹구는 신. 극 초반에 등장하는데 난 그게 재훈이라는 캐릭터를 제대로 보여준 장면이라 생각한다. 남들은 비웃지만 재훈에게는 굉장히 진지하고 심각한 상황이다. 첫번째 테이크를 딱 찍는 순간 '이거다' 싶었다. 두번, 세번 더 연기하기는 했는데 하면서도 '첫번째가 오케이다' 생각했다. 그만큼 만족감이 있었다."
-재훈은 알고보면 꽤 괜찮은 남자다. 본업 능력치에 불의를 참지 못하고, 츤데레처럼 굴면서도 이웃을 돕는 모습도 보인다. '남자들에게 인기 많은 남자'로 표현되는데 실제 김래원은 어떤가. "재훈과 닮지는 않았지만 남자 후배들이 잘 따르긴 한다.(웃음) 재훈처럼 할머니의 옥수수를 사는 그런 면 때문에 좋아하는 것 같지는 않고, 다른 면을 좋아해 주는 것 같다. 시사회 때도 전작에서 내 왼팔, 오른팔을 맡았던 동생들이 일부러 보러와서 응원해줬다. 고맙고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