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SPA(국내 제조유통일괄형) 브랜드인 유니클로가 일제 강점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한 뉘앙스의 TV 광고 논란으로 또 한 번 비난을 받고 있다. 유니클로 창업자인 야나이 다다시 패스트리테일링 회장이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한국의 불매운동이 이해된다"는 발언을 한 지 불과 일주일 만이다. 내년 채용 계획과 적극적인 신제품 출시로 마케팅으로 한국 영업 의지를 불태우던 유니클로코리아로서는 또 한 번 타격을 입게 됐다.
유니클로코리아, 왜 '80년' 단어 넣었나
유니클로는 지난 1일 일본 공식 유튜브에 새로운 광고 영상을 공개했다.
광고 주인공은 의상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13세 소녀와 '패피(패션피플·옷을 좋아하고 관심이 많은 사람)'이자 유튜버로 활동하는 98세 할머니다. 소녀는 할머니에게 "옷 잘 입으시는데요. 제 나이 때는 어떻게 입으셨나요"라고 묻자, 할머니는 "맙소사. 80년도 더 된 일을 기억하냐고"라고 답한다.
이를 본 한국 소비자와 네티즌은 분노하고 있다. 영상 속에서 언급된 80년 전인 1939년은 우리나라가 일본의 탄압을 받던 일제 강점기 시기다. 약 700만명이 강제징용에 피를 흘리던 때이기도 하다. 특히 유니클로는 이 광고의 한국어 버전만 '80년'이라는 단어를 넣었다. 네티즌들은 "다분히 의도적"이라며 분개하고 있다.
유니클로코리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이 광고는 후리스 25주년을 기념해 '전세계 모든 이들의 삶을 위한 후리스'라는 콘셉트로 제작된 글로벌 시리즈 중 하나라는 것이다.
유니클로코리아를 운영하는 에프알엘 코리아 측은 "‘80년’이란 단어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두 사람의 특성을 이해하기 쉽도록 글로벌 광고와 달리 한국만 넣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유니클로코리아 딴에는 한국 소비자의 이해를 더욱 돕기 위해 넣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유니클로코리아가 지금 한국 소비자의 심기를 건드릴 이유는 없다. 오히려 잘 하고 싶어서 안달일 것이다. 다만, 일제 강점 아래 상처받은 한국민에게는 전혀 다른 감수성으로 읽힐 여지가 있는 광고"라고 말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판단의 기준은 항상 피해자 쪽에 있어야 한다. 가해자가 '나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주장해도 피해자가 '아팠다', '불쾌했다'고 느끼면 그 자체로 문제이고 적절치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기업이 갖춰야 할 감수성 부족도 꼬집었다. 정 평론가는 "유니클로는 글로벌 회사다.
다양한 입장의 국가를 배려해야 한다. 가까운 나라인 한국의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다면 무신경한 것"이라면서 "흔히 말하는 감수성의 문제다. 다른 사람이 어떤 상처, 감정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국제적인 판단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유니클로코리아 총괄실장은 20일 본지와 통화에서 "'80년'이라는 단어는 글로벌 본사가 아닌 유니클로코리아가 이해하기 쉽게 더 설명을 드린다는 차원에서 자막을 넣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피해자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달게 받아들인다. 상처 받으신 분들께 송구하다"고 말했다.
겨울시즌 시작한 유니클로 타격…회복 가능할까
유니클로코리아는 문제가 되는 광고의 송출을 중단했다. 그동안 홍보대행사를 통해 언론 대응을 해왔던 것과 달리 내부적으로 굵직한 사안에 대처할 PR 담당팀을 꾸렸다. 지난 18일 나온 광고 논란에 대한 입장문도 이 PR팀이 마련했다. 지금까지와 달리 본사가 나서서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을 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비단 홍보뿐만이 아니다. 마케팅은 물론 채용 설명회까지 열면서 한국 사업을 공격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유니클로코리아는 지난 14일 2020년 시입사원 채용 접수 일정과 채용설명회 소식을 공개했다. 15일에는 겨울과 봄 시즌을 겨냥한 '2019 F/W 캐시미어 컬렉션'을 출시했다. 18일에는 영국을 대표하는 하이엔드 패션 브랜드 JW 앤더슨과의 협업물인 '2019 F/W 유니클로 and JW 앤더슨 콜라보레이션'을 선보였다. 불매운동으로 인한 국내 매출 감소와 불확실성이 여전한 가운데 쉽게 취하기 어려운 대처인 건 분명하다.
야나이 회장이 일본 기업인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아베 정권의 경제정책인 '아베노믹스'가 성공했다고 평가하는데 성공한 것은 주가뿐이다. 한국인의 반일을 이해할 수 있다"며 한국 소비자의 마음을 달래는 듯한 말을 했다.
야나이 회장 인터뷰를 실은 닛케이 비즈니스는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는 경영인들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야나이 회장은 ‘분노’라고도 할 수 있는 위기감을 보이면서 직언을 멈추지 않았다"고 전했다.
야나이 회장과 유니클로코리아의 노력과 달리 한국인의 분노는 더욱 커지고 있다.
유튜브에는 이번 TV 광고를 비판하는 패러디 영상도 등장했다. 주인공은 일제강점기 때 근로정신대로 끌려가 '노예 노동'을 했던 피해 당사자인 양금덕(90) 할머니다. 그는 영상에서 전남대 사학과 4학년 윤동현(24)씨가 "제 나이 때는 얼마나 힘드셨어요"라고 질문하자 "그 끔찍한 고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어"라고 답한다.
겨울은 의류업계 대목이다. 코트·내복 등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많다. 겨울 의류는 여름과 비교해 단가가 더 비싸다. 유니클로는 이번 겨울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시장이 아닌 진정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공헌 활동, 본사의 진정성있는 태도가 뒤따라야 한국 소비자의 마음을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유니클로코리아 총괄실장은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80년'이라는 단어는 글로벌 본사가 아닌 유니클로코리아가 이해하기 쉽게 더 설명을 드린다는 차원에서 자막을 넣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피해자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지적을 달게 받아들인다. 상처 받으신 분들께 송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