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박지수(21·KB스타즈)는 고등학교 3학년이었다. 수능을 앞두고 공부에 여념없을 또래들과 달리, 또래보다 훌쩍 큰 키와 탁월한 운동신경을 앞세워 일찌감치 태극마크를 단 만 18세의 여고생은 진천선수촌에서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만 바라보며 쉴 틈 없이 훈련에 매진했다. 독하기로 악명 높은 위성우(48·우리은행)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 아래서 훈련하느라 눈물을 쏙 뺐고 발가락 곳곳엔 물집이 잡혔다. "지금까지 했던 훈련과 너무 다르고 힘들었다. 언니들이 이 훈련을 다 한다고? 싶었다"라고 돌이킨 박지수가 "오죽하면 낭트 가서 (본선)티켓을 따도 걱정, 못 따도 걱정이라고 했다. 올림픽보다 훈련이 더 무서웠다"고 돌이킬 정도였다.
그리고 본선 출전권이 걸린 최종예선에서 박지수는 5경기 동안 평균 7득점, 리바운드 10.8개, 블록슛 1.6개를 기록하며 세계무대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여자농구 대표팀은 당초 예상보다 좋은 활약을 펼치고도 최종 5, 6위 결정전에서 패해 목표로 삼았던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눈앞에서 놓쳤다. 급격한 세대교체로 약화된 전력 탓에 3전 전패 탈락이 유력하다는 부정적인 시선 속에서 이 악물고 뛰었던 선수들은 눈물을 쏟아냈다. 최종예선 개최지였던 프랑스 낭트에서 파리를 경유해 인천까지 돌아오는 내내 선수들은 마지막 한 경기에 대한 아쉬움을 내려놓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프로 무대에 데뷔해 팀을 우승으로 이끈데다 미국여자프로농구(WNBA)까지 경험하는 등 숨가쁜 시간을 보내왔지만 박지수에겐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있다. 프로 입단 3년차 만에 팀을 한국여자프로농구(WKBL) 우승으로 이끈 지난 시즌, 감격의 눈물과 함께 한 시즌을 마무리하고 만났을 때도 박지수의 머릿속 한 구석에는 어느새 훌쩍 다가온 2020 도쿄올림픽에 대한 생각이 단단하게 박혀있었다. "아마 (3년 전)무기력하게 졌으면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돌아왔을 것 같다"고 얘기한 박지수는 "그 전에는 몰랐다. 그저 막연했다. 올림픽이라는 게 이렇게 나가기 힘든 대회구나 하는 걸 그 때 느꼈다"고 돌이켰다.
나가고 싶다고 해서 아무나 나갈 수 없는 대회. 올림픽으로 가는 길이 얼마나 힘든지 몸소 겪어본 박지수이기에 2020 도쿄올림픽에 대한 각오는 더욱 굳건하다. 3년의 시간 동안 박지수의 위치도 크게 달라졌다. 대표팀 막내에서 어느새 한국 여자농구의 주역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했다. 28일 대한민국농구협회가 발표한 국제농구연맹(FIBA) 여자농구 2020 도쿄올림픽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예선 최종 엔트리 12명에 이변 없이 이름을 올린 박지수는 3년 전 이루지 못했던 올림픽을 향한 꿈의 첫 발을 내딛게 됐다. 한국은 오는 11월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에서 A조에 속한 뉴질랜드, 필리핀, 중국 등과 경쟁해 상위 2위 안에 들어야 내년 2월 열리는 최종예선에 나설 수 있다.
한국 전력의 핵심인 박지수에게 견제가 집중될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한국은 지난달 FIBA 아시안컵에 출전해 일본에 41점차로 패하고 호주, 중국에도 대패하는 등 전력면에서 크게 뒤처지는 모습을 보였다.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합류하지 못했고, 박지수도 WNBA 일정 때문에 함께하지 못한 까닭이다. 그러나 이번 지역예선은 도쿄행 첫 단추인 만큼 박지수를 비롯해 박혜진(28·우리은행) 김한별(33·삼성생명) 등 최정예 멤버가 모두 소집됐다. 2008년 베이징 대회 이후 멀어졌던 본선 무대에 재도전하는 여자농구 대표팀, 그리고 3년 전 아픔을 씻으려는 박지수의 도전은 14일 열리는 중국과 1차전을 시작으로 그 첫 걸음을 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