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음료업계가 '추억 장사'에 나서고 있다. 불황에 매출이 줄자, 과거 인기를 끌었던 단종 제품을 재출시하고 있다. 과자는 물론 음료·라면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뉴트로(Newtro, 새로움+복고) 감성을 앞세워 기성세대는 물론 2030 밀레니얼 세대(1980년 초반~2000년 사이 태어난 신세대) 입맛까지 공략하는 '일거양득' 효과를 보겠다는 전략이다. 일부에서는 경기침체에 따른 소비위축과 맞물려 신제품 개발을 꺼리는 업계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리온이 7년만에 재출시한 배배. 오리온 제공]돌아온 배배·갸또·해피라면
30일 제과 업계에 따르면 오리온은 최근 과자 '배배'를 7년 만에 재출시했다. 1995년 선보인 배배는 부드러운 식감으로 인기를 끈 제품이다.
오리온 관계자는 "2012년 제품 라인업을 재정비하며 종산했으나, 이후 공식 홈페이지와 고객센터 등으로 400건이 넘는 소비자 재출시 요청이 빗발쳐 재출시를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제품명은 기존 '베베'에서 '배배'로 변경했다. 배배는 함경도 방언으로 '감칠맛 나게 달콤하다'라는 뜻이다. 패키지도 기존 아기 캐릭터가 어린이로 성장해 다시 만나는 스토리를 이미지로 담았다. [롯데제과가 재출시해 선보인 갸또. 롯데제과 제공]롯데제과는 최근 과자 '갸또'를 1년 9개월 만에 다시 선보였다. 갸또는 2011년 3월 출시되자마자 한 달 만에 20억원을 판매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듬해에는 연간 200억원의 매출액을 달성한 제품이다.
새로 선보인 '갸또 치즈케이크'는 3월 단종됐던 제품의 특징을 살리면서도 치즈 풍미와 화이트 크럼블 토핑을 더하고, 빨간 포장지를 사용해 변화를 줬다. 롯데제과 관계자 역시 "소비자들의 지속적인 요구에 제품을 다시 선보이게 됐다"며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해태제과의 재출시 제품 `토마토마` 해태제과 제공]해태제과는 지난해 아이스크림 '토마토마'를 되살려 냈다. 얼음 알갱이와 토마토를 섞은 슬러시 아이스크림 제품이다. 2005년 출시 3개월 만에 누적 매출 170억원을 돌파한 제품이지만 1년 만에 단종됐다.
라면 업계도 추억 장사에 뛰어들었다. 농심은 1991년 단종된 '해피라면'을 다시 내놨다.
1982년 나온 이 제품은 당시 진한 소고기국물 맛과 인상적인 제품 이름, 나팔 부는 아기 천사 캐릭터 등으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신라면, 안성탕면, 너구리 등이 주력 상품으로 자리잡으며 사라졌다.
음료수 가운데는 1995년 나왔던 웅진식품의 ‘가을대추’가 소비자들의 요구로 다시 판매대에 올랐다. 국산 대추와 생강을 우려낸 건강음료로 인기가 높았던 제품이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이달 초부터 판매 중이다.
매출로 증명된 추억 장사
식음료 업계가 앞다퉈 추억의 제품을 소환하는 이유는 소비자들의 뜨거운 반응 때문이다.
농심이 30년 만에 다시 선보인 ‘해피라면’은 출시 20일 만에 750만 봉 이상이 팔리며 과거의 명성을 재현했다. 개당 550원의 저렴한 가격에 옛 패키지 디자인을 적용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와 뉴트로 트렌드를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다.
오리온 '치킨팝'의 인기도 뜨겁다. 매콤달콤한 닭강정 같은 중독성 강한 맛에 한입에 쏙 들어가는 크기로 인기를 얻었던 치킨팝은 3년 전 판매가 중단됐던 스낵이다. 공장 화재로 생산라인이 소실됐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재출시 요청에 따라 지난 2월 기존 대비 10% 양을 늘려 다시 소비자에게 선보였다. 그 결과, 재출시 7개월 만에 누적판매량 2000만 봉을 돌파했다. 회사 측은 출시 1년도 안 된 스낵이 월평균 300만 봉 가까이 판매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외식업계에서도 재출시된 제품이 인기다. 롯데리아의 ‘오징어버거’는 출시 20일 만에 250만개 이상 판매됐다. 2004년 처음 출시한 오징어버거는 2017년 단종 됐다가 올해 롯데리아가 창립 40주년을 맞아 ‘레전드 버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투표 결과 오징어버거가 1위에 꼽히고 이런 결과가 매출로 이어진 셈이다.
전문가들 '현재의 저주'…"새로운 제품도 개발해야"
업계가 과거 인기 제품에 열중하는 또 다른 이유로는 국내 식품 시장 침체가 꼽힌다.
업계 관계자는 "하루에도 많은 양의 신제품이 쏟아지고 있지만, 지속되는 불황으로 소비심리가 많이 죽고 업체 간 경쟁도 워낙 치열해 시장에 안착하는 제품은 극히 소수"라며 "위험을 감수하고 큰 비용을 들여 완전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기보다는 기존에 검증된 인기 제품을 변형하거나 단종했던 인기 제품을 부활시키는 것이 사업 안정을 꾀하는 대안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진부한 추억팔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온다. 톡톡 튀는 신제품 개발 노력 대신 뉴트로 열풍을 타고 과거 히트 제품을 그대로 내놓거나 맛과 포장만 달리해 재출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기존 인기 제품을 활용한 리뉴얼 전략이 당장은 안정적인 사업 운영에는 도움이 되지만 장기적 관점에서는 과거 허니버터칩처럼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흥행 제품 개발이 줄어들어 시장이 더욱 정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레드마켓이 된 시장을 블루마켓으로 바꾸기 위해 신제품 개발에 힘쓰지 않고 현재의 비용 줄이기에만 급급한 것은 경영학에서 말하는 ‘현재의 저주’에 해당한다"며 "지속가능한 경영을 위해서는 신제품 개발 등 과감한 투자도 병행돼야 한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