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하늬(36)가 영화 '블랙머니'를 통해 우리 사회의 그늘 속 숨겨진 진실을 파헤친다.
'블랙머니'는 수사를 위해서라면 거침없이 막 가는 '막프로' 양민혁 검사(조진웅)가 자신이 조사를 담당한 피의자의 자살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되고, 누명을 벗기 위해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다 거대한 금융 비리의 실체와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된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소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으로, '부러진 화살' 등에서 언제나 날카로운 시선으로 현 사회를 담아내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는 정지영 감독의 신작이다.
이하늬는 이 영화에서 언제나 당당한 애티튜드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포커 페이스로 냉철한 이성과 판단력을 자랑하는 엘리트 변호사 김나리를 연기한다. 국내 최대 로펌의 국제 통상 전문 변호사이자 대한은행의 법률 대리인을 맡고 있는 김나리는 양민혁 검사를 만나게 되면서 자신이 믿고 있던 확신이 의심으로 바뀌자 그와 함께 공조에 나선다.
1626만 관객을 사로잡은 영화 '극한직업', 최고 시청률 22%를 기록한 SBS 드라마 '열혈사제'로 올 한 해 뜨거운 전성기를 누렸던 이하늬. 이번 '블랙머니'를 통해서 유쾌한 모습을 잠시 내려두고 차도녀 이미지를 되찾았다. 유창한 영어, 막힘 없이 흘러나오는 경제 용어, 냉철한 표정과 눈빛까지 김나리로 변신했다.
쉽지 않은 작품에 도전했다. 단순히 캐릭터와 연기의 문제만은 아니다. 모피아 논란, 가진 자들의 독점, 언론 장악, 공기업의 민영화 문제 등의 병폐들을 과감하게 찌르는 '블랙머니'를 통해 목소리를 낸다. 누군가는 색안경을 쓰고 볼 수도 있을 시도이지만 배우이자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인 이하늬는 거침이 없었다.
-노장 정지영 감독과의 호흡은 어땠나. "정말 좋은 분이다. 첫 대면은 무서웠던 것 같다. 부산영화제 때 처음 만났다. 감독님은 내키지 않았는데 주변에서 나리 역으로 추천했나 보더라. '살아있는 전설과 대면하게 되다니'라고 생각하며 앉아있는데 말없이 5분을 보더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5분 후에 막 웃으면서 '자, 이제 한잔하자'고 하시더라. 면접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영문을 알았으면 뭘 해봤을 텐데.(웃음) 현장에서의 감독님은 소년 같다. 청년 정지영이라고 말하곤 하는데, '사람이 어쩜 저렇게 순수할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척박한 영화를 계속해오신 건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화하고 소통하는 데 있어서 70대 노인이라는 단어를 쓰는 게 어색할 정도로 친구 같았다. 내가 이 현장에서 느끼고, 하고 싶은 걸 말하면 소통이 잘 됐다. 오랫동안 잘 일하는 어른들을 보면 본인을 후배들과 잘 섞이게 낮추는 방법을 잘 터득했더라."
-캐스팅 이유에 대해 전해 들은 바 있나. "예능프로그램에 나온 모습을 보고 캐스팅했다더라. 아이러니하다. 무게감 있는 영화인데. 이하늬라는 배우는 최근작이 '열혈사제' '극한직업'이니 '얘를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예능에서 나리의 당당함을 봤나 보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사회적 메시지에 대해서 논의하기도 했나. "감독님은 그런 것에 대해 전달하지 않았다. '시나리오에 다 있다'고만 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조진웅도 나도 궁금했다.(웃음) 감독님은 '내가 잠이 안 와. 이걸 영화로 안 만들면 잠이 안 와'라고 답하더라. 그것보다 더 큰 이유는 없겠더라. 그 한마디로 모든 것이 설명됐다. 정지영 감독님은 진짜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의 생살을 갖고 있다. 아티스트들의 그런 부분을 존중하고 이해해주고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정지영 감독의 전작들 또한 사회를 향해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부러진 화살'을 보고 다시 또 봤다. '화법이 어쩜 이렇게 잔잔하면서 묵직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스킬이나 화려한 기법보다도, 스토리가 가진 힘을 견지하는 에너지가 엄청나다. 이번 영화는 그에 비하면 더 영화적이다. 사실을 기반으로 상업적 영화가 가져야 하는재미적 요소가 첨가됐다."
-상업 영화의 미덕을 첨가하려다 보니 쉽게 풀어낸 경제 영화가 됐다. "쉽게 설명하려고 했다. '어려우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우려보다 영화가 쉬웠다. 경제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영화가 된 것 같다."
-작품에서 정치적 색채도 엿보이는데, 출연 배우로서 부담감도 느꼈겠다. "배우로서 캐릭터에 대한 부담감을 갖기 시작하면 어떤 역할도 맡을 수 없을 것 같다. 하고 싶은 시나리오를 만나면 영화적으로 재미있게 혼신을 다해 연기하는 것이 제 몫이다. 정치적 이슈나, 사회적 이슈나, 경제적 이슈는 관객분들이 판단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내 몫이 아니다."
-두 흥행작 '극한직업'·'열혈사제' 속 캐릭터와 정반대인 차도녀를 연기한다. "예전에는 차갑고 안으로 삭히는 역할을 많이 했다. '왜 이런 역할만 하지'라는 생각을 했을 때도 있었다. 최근에는 밝고 기를 분출하는 연기를 많이 했다. 개인적으로는 더 좋았다. 사랑은 사랑으로 잊듯이 캐릭터는 캐릭터로 잊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자가복제하듯 한 연기를 고수할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상반된 결의 작품을 만나면 그런 생각을 털어낼 수 있다."
-이번 영화를 한마디로 설명하면 무엇일까. "이전까지는 '나 혼자 행복해지고 싶다. 우리 가족만 행복해지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가능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렇게 불안정한 지금의 사회는 혼자서는 행복할 수 없는 시대다. 피부로 와 닿고 생활에 위협이 될 정도로 위험 수치가 높아졌다. 이제는 함께 답을 내고 공유하고 공감하고 지혜롭게 생각해야 할 때다. 우리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명확하게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전까지는 정보가 공유되지 않았던 시대였다면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 영화가 중요한 단추가 되길 바란다. 실재와 허구의 공존을 궁금해하시면서 보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