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화장품 ODM(제조자개발생산) 기업인 한국콜마를 바라보는 K뷰티 업계의 시선이 달라졌다. 그동안 우수한 기술을 가진 한국콜마에 제품 생산을 맡겨왔으나, 지난 여름 '오너리스크'가 불거진 뒤 협업을 그만두는 방향에 대해 진지하게 고심하는 업체가 늘어났다. '어닝쇼크' 수준의 3분기 실적을 낸 한국콜마가 4분기는 물론 2020년에도 과거만큼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콜마에 맡겼다고 날벼락 맞은 중소 업체들 한숨
"한국콜마에 제품 생산을 맡기지 않는 쪽으로 내부적으로 진지하게 고민 중이다. 손해가 컸다."
국내에서 홈쇼핑과 온라인 기반 화장품 브랜드를 운영 중인 A 업체 관계자는 최근 이같이 푸념했다. 이 업체는 주요 인기 제품을 한국콜마에 의뢰해왔다. 한국콜마의 우수한 자체 기술력을 보유했을뿐더러 대중에 잘 알려진 제조사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 여름 이후 분위기가 달라졌다. 윤동한 전 한국콜마 회장은 8월 월례조회에서 임직원 700여 명을 대상으로 극보수 성향의 유튜브 영상을 틀어 논란이 됐다. 회사의 주요 사외이사가 일본인이라는 점도 알려졌다. 한국콜마는 일본불매운동의 타깃이 됐다. 윤동한 회장이 고개를 숙이고 사임했지만 차갑게 식은 여론은 그대로였다.
불똥은 한국콜마에 제품 생산을 맡긴 고객사로 튀었다. 매출 상위 거래처의 홈쇼핑 방송이 갑자기 취소되거나 편성표에서 빠졌다. 곧 재개됐다고는 하지만, 중소 화장품 업체에 홈쇼핑 방송 결방은 큰 타격이다. A 업체 관계자는 "홈쇼핑 방송 취소가 컸다. 방송 한 편에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이 왔다 갔다 한다. 팔지 못한 재고도 다 돈"이라며 "고객들도 '왜 한국콜마와 일하느냐'는 항의를 해왔다. 우린 이미지가 중요한 분야"라고 말했다.
이 회사는 향후 한국콜마와 더는 일 하지 않는 방향으로 논의 중이다. 이 관계자는 "(한국콜마와) 계약된 건 어쩔 수 없고 앞으로는 그동안 한국콜마에 맡겼던 제품도 제조업체를 완전히 바꾸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비단 A 업체만 해당하는 일은 아니다. 과거 한국콜마를 '믿고 봤던' 고객사들은 언제 불거질지 모르는 리스크에 대한 부담을 갖고 있었다.
이른바 '한국콜마 불매운동 리스트'에 오른 화장품 브랜드들은 잇단 홈쇼핑 방송 취소와 고객 항의에 "한국콜마에 모든 제품을 맡기는 것이 아니다"며 해명하기 바빴다.
앰플과 세럼으로 이름을 알린 B 업체는 "브랜드 이미지가 부정적으로 박힐까 봐 내부적으로 걱정했다. 지금은 위기를 잘 통과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렇다고 한국콜마에 제품 의뢰를 계속할지 여부는 결정된 바 없다"고 했다.
먹구름 짙어지는 중국…내년도 걱정
K뷰티 업체들의 불안감은 한국콜마의 실적으로 나타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국콜마는 3분기 매출이 1859억원, 영업이익이 5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6.3%, 48.9% 줄었다. 화장품 매출과 영업이익은 모두 줄어든 탓이었다. 그나마 매출이 3.9% 소폭 감소한 3609억원, 영업이익이 160% 급증한 202억원을 기록한 건 작년 4월에 인수한 씨제이헬스케어 수익성이 크게 개선된 덕분이다.
한국콜마 측은 "올 3분기 한국콜마의 브랜드사들의 실적이 개선되면서 4분기에는 신규 수주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며 "향후 화장품 부문 실적이 회복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낙관했다.
그러나 국내는 물론 중국의 분위기도 좋지 않다. 중국 무석콜마는 이번 3분기에 2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북경콜마 역시 기존 물량의 무석 공장 이관으로 50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중국 화장품 기업의 제품 수주도 줄어들고 있다. 중국 현지 기업들은 최근 한국콜마 대신 중국 ODM 업체와 손을 잡고 있다. 마스크시트 제조사인 천(아이섀도우), 창위엔(아이라이너) 등 일부 중국 ODM 업체가 대표적이다. 국내 대학에서 뷰티학을 가르치고 있는 C 교수는 "K뷰티가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콜마도 큰 수혜를 입었다. 그러나 중국 ODM 업체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서 지금 자리를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현진 DB금융투자 연구원은 "4분기 중국 화장품 OEM 매출이 3분기 대비 회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중국 광군절 효과 등을 제거했을 때에도 지속성 있는 오더 물량이 늘어날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 화장품 시장의 경쟁 심화로 여타 한국 OEM사들의 중국 실적은 지난 분기부터 어닝쇼크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혜미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콜마에는 높은 상위 고객사 의존도에 따른 리스크 확대와 중국 법인의 이익 턴어라운드 지연이라는 두 가지 우려가 상존한다"며 "당분간 주가가 과거 대비 낮은 밸류에이션 수준에서 형성되더라도 주가는 횡보할 가능성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