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5월 23일 다저스타디움. 광주일고 1년 선후배 사이인 LA 다저스 서재응과 콜로라도 김병현이 선발 맞대결을 펼쳤다. 한국인 투수가 '야구의 본고장' 메이저리그에서 선발 맞대결을 펼치는 역사적인 첫 순간이었다. 서재응이 7이닝 6피안타 1실점(비자책)으로 승리 투수가 됐고, 김병현도 6이닝 6피안타 3실점(1자책)으로 비교적 잘 던졌으나 동료들의 도움을 받지 못해 패전 투수가 됐다.
이후 선발 투수-중간 계투, 중간 계투-중간 계투, 투수-타자로 코리안 메이저리거 간 맞대결은 여러 차례 있었으나, 한국인 투수의 선발 맞대결은 서재응-김병현 이후 더 없었다.
최근 메이저리거에 진출한 한국인 선수가 이대호, 박병호, 김현수, 황재균 등 주로 타자 위주였고, 오승환과 임창용은 불펜 투수였다. 윤석민은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지 못한 채 1년 만에 돌아왔다. 한화에서 데뷔해 2013년 LA 다저스로 건너간 류현진 홀로 빅리그 선발 무대를 지켜왔다.
김광현이 18일 세인트루이스와 입단 계약을 맺으면서 류현진과의 빅리그 선발 맞대결이 성사될지 주목된다. 국내 팬들에게는 '꿈의 맞대결'이다. 류현진과 김광현이 KBO 리그에서 함께 뛴 6년(2007~2012년) 동안에도 맞대결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류현진과 김광현은 2000년대 중후반부터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좌완 선발 투수였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앞장서 금메달 신화를 이끌었고, 서로 경쟁하며 리그 개인 타이틀을 휩쓸었다. 그 때문에 KBO 리그 최고 실력과 인기를 겸비한 둘의 맞대결에 관심이 쏠렸지만 좀처럼 선발 매치업이 성사되지 않았고, 양 팀 사령탑도 이를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기회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딱 한 차례 예고된 선발 맞대결은 우천으로 물거품이 됐다. 2010년 5월 23일 일요일, 한화와 SK는 각각 류현진과 김광현을 선발 투수로 예고했다. 많은 취재진과 관중이 대전구장에 몰렸지만, 경기 개시 단 1분을 앞두고 비로 취소됐다. 주말 3연전의 마지막 경기였던 터라 다음날 맞대결을 가질 환경도 아니었다. 포스트시즌은 서로 피하거나 눈치 볼 것 없지만, 류현진과 김광현이 몸담았던 시기에 양 팀의 단기전도 없었다. 류현진이 2013년 LA 다저스에 진출하면서 본격적으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메이저리그에서 둘의 선발 맞대결에는 변수가 있다. 일단 김광현이 선발진의 한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 존 모젤리악 세인트루이스 단장은 "(영입을 추진한) 몇몇 선수들은 선발 보장만 고집했다. 우리는 좀 더 융통성이 있는 투수가 필요했고, 김광현이 이를 이해해줬다"고 말하면서도 "스프링캠프에서 선발 보직을 두고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언급했다. 세인트루이스에 마땅한 선발 자원이 없는 상황과 김광현의 의지를 고려하면 '선발 보직'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또 FA(자유계약선수) 신분으로 소속팀을 찾는 류현진의 행선지도 맞대결의 중요 변수다. 팀 간 맞대결이 많아야 아무래도 선발 매치업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서다. 세인트루이스와 같은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에 속해있진 않더라도, 류현진이 내셔널리그 팀과 계약하면 맞대결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다만 류현진은 현재 토론토와 미네소타, LA에인절스 등 주로 아메리칸리그 팀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꼭 올해가 아니더라도 류현진과 김광현이 메이저리그에서 몇 년간 꾸준히 활약한다면 선발 투수로 동일 경기에 등판하는 모습이 펼쳐질 수 있다.
한편 김광현은 2015~2018년 SK에서 한솥밥을 먹은 애리조나의 메릴 켈리, 이번 시즌 탈삼진 경쟁을 펼친 밀워키의 조쉬 린드블럼과 맞대결 가능성도 있다. 세인트루이스는 2019년 밀워키와 19경기, 애리조나와 6경기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