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리데이(2016)' 이후 3년만 컴백이다. 하이퍼리얼리즘이 반영된 청춘들의 세계를 조금 더 넓은 범위로 확장시켰다. 전혀 다른 스타일의 시나리오 집필 중 눈에 띈 '시동'이다. 최정열 감독은 '글로리데이' 캐릭터들에게 남아있던 부채감을 '시동'을 통해 훌훌 털어내고자 마음 먹었다.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한층 가벼워지고 영화적이기보다 만화적인 캐릭터들이 종횡무진 활약하지만 최정열 감독이 담고자 했던 '성장'의 메시지는 변함없이 챙겼다.
2019년 겨울대전 첫번째 주자로 나선 '시동'은 28일까지 누적관객수 210만 명을 돌파하며 의미있는 흥행 레이스를 펼치고 있다. '백두산' '천문: 하늘에 묻는다' 등 비슷한 시기 개봉한 국내 경쟁작들은 물론, '캣츠' '겨울왕국2'까지 치열한 마지막 성수기 관객몰이 틈바구니에서 맡은 바 목표를 향해 질주 중이다. 최정열 감독은 모든 공을 제작진과 배우들에게 돌리며 "아낌없는 애정이 영화를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감동했고, 감사하다"고 진심을 다해 인사했다.
모든 작품이 그러하듯, 관객 평가는 호불호 갈릴 수 있지만 감독의 만족도는 꽤 높다. 이는 성적을 떠나 작품 자체를 놓고 봤을 때 애초 의도했고, 담아내고자 했던 방향성이 잘 맞아 떨어졌다는 것을 뜻한다. 보편적이지만 신선하고, 익숙하지 않지만 '익숙하지 않다' 보다는 '새롭다'는 반응을 얻고자 했다는 '시동'. 보통의 영화들이 갖춘 천편일률적 설정을 지양했다는 것 만으로도 '시동'은 영화 속 캐릭터들처럼 유의미한 성장의 발자국을 내딛었다 칭찬받아 마땅하다. 기대했던 웃음과 예기치 못한 감동은 '시동'이 겨울 관객들에게 선사한 따뜻한 선물이다.
※인터뷰②에서 이어집니다.
-감독으로서 느낀 고충이 있다면. "고충이라기보다…. 우리 영화에 정말 좋은 배우들이 많이 나온다. 다른 작품에서는 주인공을 하실 분들이 작은 역할도 흔쾌히 출연해 주셨다. 그 분들이 짧게 나올 때 마음이 아팠다. 염정아 배우도 그렇고 박해준, 고두심 선생님 모두 더 같이 호흡을 맞추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는 것, 다른 현장으로 보내 드려야 한다는 것에 대한 질투(?)가 생기더라.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만나고 싶다."
-'글로리데이'에 이어 '시동'까지, '청춘'에 대한 관심이 원래 높은 편인가. "'시동'이 청춘 영화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연장선이라고 봤을 때, 청춘 이야기를 좋아한다. 새로운 선 앞에 서 있는 사람들에 대해 흥미로워하는 것 같다. 대부분 미성년에서 성인으로 넘어가는 시기를 인생의 큰 변화로 보는데 따지고 보면 매 순간이 출발점일 수 있다. 요즘은 100세 시대라고 퇴직한 후에도 새로운 출발점에 서지 않나. 매번 선택의 순간들이 오는데, 선택 자체도 힘들지만 이후에 겪는 복잡한 감정과 정서들도 다르다. 때론 쾌감을 느끼고, 때론 엄청난 후회를 한다. 그 선택이 어떻게 이뤄지고, 이렇게 선택했을 때 어떻게 흘러가게 될 것인지 지켜보고 상상하게 된다."
-감독님의 18살은 어땠나. "음…. 나는 평범했다. 불만이 있어도 표출하지 않는 스타일이었다. 효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웃음) 특별한 꿈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구름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감독의 꿈은 언제 꿨고 또 선택했나. "어렸을 땐 누구나 그렇듯 막연하게 영화를 좋아했다. 내가 교회를 다녔는데, 콘텐츠를 만들 기회가 있었다. 연극 공연을 연출하거나 희극 각본을 쓰면서 그 일이 너무 재미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고 싶다'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간절했던건 아니다. '이거 안 시켜주면 학교 안 다닐거야' 그 정도는 아니었다. '안돼!' 하면 수긍하고 속으로만 '언젠가는 해야지?' 했을 것이다.(웃음) 그러다 20대 중 후반쯤 봉사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됐고, 적극적이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한번은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부모님께 '1년만 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 벌써 10년을 넘겼다."
-선택에 대한 후회는 없나. "재미있다. '어울리는 일인지, 잘 할 수 있는 일인지, 잘하고 있는지' 모든 것이 여전히 명확하지 않지만 일단은 내 선택과 과정과 결과들을 믿고 있다. 때론 스스로에게 '잘 가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이 위로가 되는 순간도 있으니까. 영화 속 인물들처럼 선 위에 있는 것 같지만 계속 해 볼 생각이다."
-'시동'을 통해 특별히 배운 점이 있다면. "일단 가장 큰 것은 '영화 한편을 만들기 위해서 온갖 정성을 들이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구나'라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작품 내적으로, 연출적인 부분으로는 캐릭터를 표현할 때 어떤 식으로 인물들을 바라봐야 하는지 많이 배웠다. 아무래도 류승완 감독님이라는 거장이 앞에 계시니까.(웃음) 시나리오 단계부터 공정 과정에서 연출자들이 어떤 마음가짐과 정성을 들여야 하는지에 대해 온 마음으로 체득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시동'은 엔딩의 마무리 때문인지 속편에 대한 이야기도 솔솔 나온다. "맞다. 거석이 형도 그렇고, 경주(최성은)도 그렇고, 그 외 다양한 캐릭터들에게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내가 생각해도 무궁무진할 것 같다. 대단히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다 보여주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다. 다 아는 이야기를 그려내면 진짜 다 아는 이야기가 돼 버리니까. 그래서 인물들에 대해 최대한 상상할 수 있게끔 만들어 놨다. 그랬더니 또 많은 분들이 각각의 캐릭터에 대해 궁금해 하시더라. 충분히 재미있는 드라마가 나올 수 있겠지만 지금 속편에 대해 어떻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럴 여유가 없다.(웃음) 그저 묵묵하게 '시동'의 운명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차기작은 어떤 작품이 될까. "'글로리데이'를 끝낸 후에는 다음 작품에 대한 포부가 나름 컸다.(웃음) '다음 작품 뭐 해야지!' 원대한 꿈을 꿨는데, 뭐든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더라. 결국 자연스러운 흐름 안에서 생성되는 것 같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 '아, 이런 이야기 하고 싶다'가 조금 더 명확해질 것 같다. 지금은 써놨던 것들을 슬쩍 슬쩍 들춰보고 있다. 쭉 펼쳐둔 상태다. 어떤 선택지가 내 손에 쥐어질지 나도 궁금하다. 큰 범주 안에서는 '젊은 배우들이 나오는 영화를 또 하느냐, 아니면 다른 이야기를 하느냐'가 될 것 같다. 현재는 다른 이야기를 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는데 사람 냄새나는 스토리는 이어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