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가 가을 축제를 마치고 긴 겨울잠에 들면 팬들은 “인생에 낙이 없다”고 한탄한다. 올겨울은 좀 다르다. 야구 소재 TV 드라마 ‘스토브리그’가 팬들의 공허한 마음을 달래주고 있다. 스토브리그는 프로야구에서 한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이 시작할 때까지, 계약 갱신이나 트레이드가 이루어지는 기간을 가리키는 용어다. 드라마는 최하위 팀 드림즈에 부임한 백승수 단장이 새 시즌을 야심 차게 준비하는 내용이다.
과연 국내에서 스포츠 드라마가 통할까 했는데, 시청자 반응이 폭발적이다. 27일 방송분(5회) 평균 시청률이 12.4%(이하 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였다. 지상파·케이블을 통틀어 동시간대 1위다. 그나저나 드라마에 그려진 모습은 프로야구의 현실을 얼마나 담아냈을까. 프로야구단 프런트에게 물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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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알못’(야구 알지 못하는 사람)도 프로야구 단장을 할 수 있나
주인공 백 단장은 씨름단, 하키팀, 핸드볼팀 단장을 거쳤다. 야구단은 처음이다. 야구 관련 서적을 통해 전문 지식을 쌓는다. 실제로 프로야구 구단에는 야구와 무관한 단장이 많았다. KBO리그 10개 팀 중 9개 팀이 모기업 지원을 받는다. 모기업 임원이 단장으로 부임하곤 했다. 야구는 잘 몰라도 기업에서 쌓은 경력을 바탕으로 구단을 이끌었다. 키움 히어로즈 김치현 단장은 “백 단장이 다른 종목 단장을 거쳐 구단 돌아가는 방식은 잘 알고 있다. 야구단을 운영하는 데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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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여성 운영팀장이 현실에서도 가능한가
이세영 운영팀장은 프로야구 첫 여성, 그것도 최연소 운영팀장이다. 정확한 나이는 나오지 않지만, ‘드림즈 신입사원이 된 지 어언 10년’이라는 소개를 보면 30대 중반으로 추정된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이래 38년간 여성 운영팀장은 한 번도 없었다. 운영팀장은 선수 트레이드, 외국인 선수 계약, 스프링캠프 섭외 등 구단 살림살이 대부분에 관여하기 때문에 대개 경험 많은 고연차가 맡는다. 한화 이글스 석장현 운영팀장은 “야구가 남성 스포츠로 여겨졌고, 전문가도 남성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최근 메이저리그(MLB) 운영팀에 여성 직원이 늘고 있다. KBO리그에서도 여성 운영팀장이 곧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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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정했던 신인 지명, 갑자기 바뀔 수가 있나
3회 차 방송분 중 2차 신인 드래프트 이야기를 보면 드림즈 스카우트 팀에서 불협화음이 나온다. 드림즈는 매년 꼴찌를 해 드래프트에서 우선권을 갖는다. 드라마에선 스카우트팀이 ‘타임’을 요청하는 등 우왕좌왕한다. 그리고는 지명 예정 선수 대신 다른 선수를 호명한다. 1순위 지명권을 가진 팀이 현장에서 지명 선수를 바꾸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명 선수가 변경되는 사례는 해당 선수가 갑자기 해외 진출을 선언할 때 정도다. 스카우트로 활동했던 SK 와이번스 송태일 육성팀장은 “2017년 배지환(피츠버그 산하 마이너팀)이 미국 행을 드래프트가 임박해 통보하면서 현장이 급박하게 돌아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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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에서 몸값 높아진 외인, 계약 불발되나
4회에서 백승수 단장과 이세영 운영팀장은 50만 달러에 영입할 수 있는 강속구 투수를 발견하고 계약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다. 그러나 현지에서 만난 에이전트는 100만 달러를 요구하고, 최대 90만 달러를 줄 수 있는 드림즈는 영입에 실패한다. 현실 프로야구에서도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난다. 많은 팀이 달려들수록 외국인 선수 몸값은 올라가기 때문이다. 외국인 선수 영입을 담당했던 김치현 키움 단장은 "2013~14년 삼성 라이온즈 투수 릭 밴덴헐크의 경우, 삼성 외에 여러 구단이 영입 의사를 보이면서 몸값이 훌쩍 올랐다"고 전했다. 그러나 현장에 직접 찾아가서 계약을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한국에서 선수 에이전트와 의견 조율을 충분히 거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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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이 외국인 선수로 올 수 있나
결국 백 단장은 MLB에서 활약한 한국계 미국인 로버트 길(한국명 길창주)을 외국인 선수로 데려온다. KBO리그에는 그런 사례가 없지만, 가능하다. SK 손차훈 단장은 “실력이 뛰어나다면 영입을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정도로 뛰어난 선수를 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로버트 길에게는 ‘병역 기피 선수’라는 꼬리표가 붙어있다. 미국 국적을 얻으면서 병역 의무를 지지 않았다. 손 단장은 “아무리 몸값이 저렴해도 귀화를 통해 군 복무를 하지 않은 선수를 영입하는 건 우리 정서상 쉽지 않다. 차라리 미국 독립리그에서 육성형 외국인 선수를 찾는 게 낫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