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1조원 이혼 소송’이 종지부를 찍으면서 또 하나의 재벌가 이혼 소송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바로 당사자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부부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이혼 맞소송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2017년 최 회장의 이혼 조정 신청을 줄곧 반대했던 노 관장이 지난해 12월 위자료 3억원과 함께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특히 최 회장이 가진 SK 주식의 42.29%를 요구해 1조원이 넘는 이혼 소송전이 됐다.
최 회장의 SK 지분은 18.29%(1297만5472주)인데, 노 관장의 요구한 42.29%의 주식 수는 548만7327주에 달한다. 이는 29일 종가 23만4500원을 기준으로 하면 1조2900억원대나 된다.
그러나 지난 27일 확정된 이부진 사장 부부의 소송 결과를 보면 노 관장에게 쉽지 않은 소송이다.
재벌가의 이혼 소송 전례를 보면 재산분할 금액을 절반 이상 받았던 배우자는 없다. 2004년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부인이 회사 지분 1.76%(당시 300억원)를 받은 게 가장 큰 규모다.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은 이부진 사장에게 ‘1조원대 소송’을 걸었지만, 현실은 141억원에 그쳤다.
이부진 사장 부부의 판결에 최 회장 변호인 측이 안도했다는 후문이다. 전례처럼 재벌가에 유리한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역대 대기업 오너가 이혼 소송의 판례를 보면 두 가지 ‘불문율’이 존재한다. 오너가의 상속 및 증여 재산은 재산분할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점과 회사 경영의 안정성과 직결되는 재산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해외에서는 10년 이상 결혼생활을 한 부부의 경우 결혼 전후와 관계없이 파탄의 책임이 있다면 재산의 반절을 떼어주는 게 보편적이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도 1억 달러 이상의 위자료를 지급했다. 국내에서 일반인의 경우도 가정 파탄의 주범이라면 절반의 재산을 떼어줄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러나 대기업의 경우 다른 잣대가 적용된다. 법률사무소 로진의 길기범 대표변호사는 “재벌들의 이혼 소송 재산분할은 일반인과 비교해 액수가 커서 다르게 적용되는 경향이 있다. 노소영 관장이 위자료 3억원을 요구한 점도 판례상 위자료 판결 금액은 많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노 관장 변호인 측은 3억원 위자료보다는 42.29%의 지분 요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관건은 노 관장의 SK 기업에 대한 기여도를 증명하는 것이다. 노 관장은 SK그룹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여도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노 관장은 아버지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업을 지원했다는 점을 증명하는 데 목을 매야 하는 입장이다.
길 변호사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업 성장에 도움을 줬다고 하더라도 노 관장이 기여했다고 보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있다. 그래도 노 관장은 노태우 대통령의 사업적인 지원을 입증해야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SK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이 1988년 결혼한 후 성장 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이동통신 사업은 노태우 정권이 아닌 김영삼 정권 때인 1994년 KT가 갖고 있던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면서 진출할 수 있었다. SK의 전신인 대한텔레콤이 1992년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따내긴 했지만 노태우 당시 대통령의 사위라는 점이 '특혜 논란'으로 이어져 사업권을 포기했다.
법조계에서는 최 회장의 SK 지분 형성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최 회장의 재산 형성 과정이 혼인 이전에 이뤄졌다는 게 우세하지만 노 관장 측은 결혼 이후 SK 지분이 형성됐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부진 사장 부부의 경우 주식을 제외한 공동 재산 700억원에 20% 정도를 인정해 재산분할이 결정됐다. 최 회장 부부의 경우 이혼 조정 신청 전까지 29년간 결혼 생활이 이어졌다. 이로 인해 노 관장의 재산 형성 기여도는 20~30% 정도 인정받을 수 있다. 결혼 파탄의 책임이 최 회장에게 있다는 점이 이 사장 부부와 다르다.
신은숙 이혼 소송 전문 변호사는 “아무래도 최 회장이 유책 배우자인 점은 위자료뿐 재산분할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앞으로 최 회장과 노 관장 변호인 측의 첨예한 대립이 예고된다. 길 변호사는 "차명 계좌 등도 다 조사 대상이라 소송이 1년 이상 소요될 것이다. 최 회장 측은 현금이나 부동산을 주는 쪽을 선호할 것이다. 반면 노 관장 측은 가치가 날로 높아질 주식 지분 확보에 심혈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