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객관화'는 철저하고 포부는 크다. 배제성(23·KT)의 자세는 그 행보를 기대하게 한다.
KT 소속 국내 투수 가운데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수를 기록했다. 2019시즌, 28경기에 등판해 10승(10패·평균자책점 3.76)을 거뒀다. 시즌 전에는 불펜 요원이었지만 선발 로테이션에 공백이 생겼을 때 투입됐고, 자리를 지켜냈다.
2015 2차 신인 드래프트 9라운더다. 입단한 롯데에서 트레이드 카드로 활용돼 KT로 이적했다. 촉망받는 유망주가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전문가 이순철 SBS 해설위원도 키플레이어로 꼽는 투수다. 차기 시즌도 KT의 선발진 한 축을 맡을 전망이다.
선수는 2년 차 징크스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정확하게는 속설에 적용될 상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4일(한국시간) 미국 애리조나 투손에서 진행되고 있는 스프링캠프에서 만난 배제성은 "누구든지 꾸준히 선발 등판 기회를 얻는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수준의 기록이다"며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징크스는 맞지 않는다"고 웃었다. 선발투수가 보장된다고도 보지 않는다.
겸손이 아니다. 한 차례 자신감이 꺾인 경험이 있다. 긴 기다림 끝에 1군에서 등판 기회를 잡았지만 부진했다. 2017시즌은 21경기에서 평균자책점 8.21을 기록했다. 2018시즌은 세 경기 등판에 그쳤다.
이 과정에서 자신을 다잡았다. "계획과 바람보다 1군 무대 진입이 늦었다고 생각했다. 막상 경험해보니 한계만 확인했다. 마음을 재정비하는 계기가 됐다"고 돌아봤다. 2017~2018시즌 실패는 약이 됐다는 얘기다.
그래서 2019시즌 선전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현재 그는 KT팬에 '베이스'로 불린다. 성과 에이스를 합쳐서 안긴 애칭이다. 정작 선수는 민망하다. 배제성은 "3~5년은 꾸준히 잘해야 하고, 동료의 도움 없이도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 때에서야 스스로 에이스라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고 말했다.
자평이 매우 인색하다. 그러나 기준이 높기 때문에 만족과 쟁취를 향한 노력도 비례할 수밖에 없다. 2020 도쿄 올림픽 국가대표팀 승선에 대한 생각에서도 엿보인다. 그는 김경문 대표팀 감독이 눈여겨본 선수다. 세대교체 대비도 필요한 한국 야구이기에 지난 시즌보다 성장한 모습을 보인다면 선발될 가능성이 있다.
배제성도 열망한다. 그러나 이견이 붙는 발탁을 원하지 않는다. 그는 "나도 올림픽 무대에 정말 나가고 싶다. 그러나 애매한 성적을 남긴 뒤에 그저 바람만 갖는 상황이면 안 된다. 내가 '뽑히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데려가야 한다'는 객관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대표팀 발탁이 전망되는 선수가 아니라 예견되는 선수가 되려고 한다. "정말 잘해야 한다"며 각오를 다지기도 했다. 언젠가 양현종(KIA), 김광현(세인트루이스)처럼 발탁의 정당성이 거론조차 되지 않는 게 최종 목표다.
소속팀의 2020시즌을 향해서도 높은 포부를 드러냈다. '1년 뒤에는 어떤 얘기를 하길 바라는가'라는 질문에 배제성은 "KT의 가을야구 진출 비하인드 스토리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나도 팀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됐다는 의미일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배제성의 경기력은 2020시즌 KT의 성적을 좌우할 변수다. 현재 위치를 정확히 알고, 높은 곳을 바라보는 자세가 긍정적인 전망을 유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