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변이 일어났다. 비 영어 영화 최초로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을 수상했다. '오스카 소 화이트'라는 오명도 벗게 만든, 봉준호의 기적이다.
'기생충'은 9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Dolby Theatre)에서 열린 제92회 아카데미시상식(Academy Awards)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을 수상했다. 비 영어 영화가 작품상을 수상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아시아인으로서는 대만의 이안 감독에 이어 2번째로 감독상을 받았고, 비 영어 영화로는 6번째로 각본상을 수상했다.
당초 '기생충'의 최대 적수는 '1917'이 될 전망이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기생충'과 '1917' 두 작품의 양강 구도를 예측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쉽게 확신을 하지는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생충'은 신드롬급 화제를 모은 파격적인 작품이며, 전쟁 영화로 서양의 역사를 다룬 '1917'은 전통적으로 아카데미가 사랑하는 유형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상반된 매력의 두 영화의 경쟁으로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더욱 흥미진진하게 돌아갔다.
결국 '기생충'이 최후의 미소를 지었다. 이날 4관왕에 오르며 3관왕 '1917'을 눌렀다. 여전히 보수적이어 보였던 오스카였기에 놀라운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마지막 작품상까지 '기생충'의 이름이 호명되자 믿지 못하겠다는 듯한 봉 감독의 표정이 이를 방증했다.
또한, '기생충'은 '오스카 소 화이트'라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향한 백인우월주의의 오명도 벗게 만들었다. 아니, 아카데미가 '기생충' 덕분에 변했다고 보는 편이 더 적확할 수도 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은 그간 외국어영화상이라 부르던 비 영어 영화를 대상으로 한 부문의 이름을 국제영화상으로 바꾸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으로 '기생충'을 선정했다. 앞서 아카데미 시상식을 "로컬 시상식"이라며 관객들에게 "1인치의 자막이라는 장벽을 넘어보라"던 봉 감독은 이날 국제영화상을 수상하며 "이름이 바뀐 첫 상을 받게 돼 의미가 깊다. 오스카의 방향에 지지와 박수를 보낸다"고 말했다.
전통을 깨게 만드는 '기생충' 그리고 봉준호 감독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언어도, 피부색도 아니었다. 좋은 영화를 만드는 것, 그것만이 오스카를 받을 자격이었다.
1929년부터 시작된 아카데미 시상식은 미국 최대의 영화 시상식이다. 트로피의 이름이기도한 일명 오스카라고도 불린다.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 8469명의 회원들이 투표, 선정해 시상한다. 영화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이들만 회원이 될 수 있어, 영화인에 의한 영화상봉준호 감독이 말했듯 미국의 로컬 시상식이긴 하나, 세계 영화 산업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할리우드를 무대로 하기에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시상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