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광모 LG그룹 회장이 보수적 인식과 구시대적 관행을 지우는 등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LG는 뿌리 깊은 유교 중시 사상으로 ‘장자 경영 승계’ 원칙이 뚜렷해 보수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LG 오너가는 남성만 경영에 참여하고 여성은 배제되는 구시대적인 전통도 여전히 남아있다.
구광모 회장은 고 구본무 회장의 조카였지만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지난 2004년 양자로 입적한 뒤 장자 승계 원칙에 따라 4대 회장에 올랐다.
취임 3년 차를 맞은 구 회장은 빠르게 구시대적 관행을 타파하고 있다.
우선 올해 초 창사 이래 30년 이상 유지했던 강당 시무식을 하루아침에 폐지하고 동영상을 전 세계 임직원들에게 e메일로 보내는 디지털 신년사를 했다. 그는 ‘LG 2020 새해 편지’를 띄우면서 “반드시 이것 하나만큼은 새겼으면 좋겠다. 바로 고객의 마음으로 실천이다. 항상 고객의 관점에서 고민하고 바로 실행하는 실천”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변하고 있는 모습이다.
구 회장은 구성원들과 더 가깝게 소통하기 위한 노력도 하고 있다. 구성원들에게는 회장이 아닌 ‘대표’로 호칭을 불러달라고 하는 등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다. 구 회장은 시간,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글로벌 LG 전체 구성원들과의 소통을 중시하고 있다. 신년사에도 영어와 중국어 자막을 넣은 버전을 내보내는 등 글로벌 구성원과도 친밀하게 교류하고 있다.
1978년생으로 젊은 CEO답게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실용주의적이고 소탈한 대표 이미지를 각인시키고 있다는 것이 업계 평가다.
정도 경영을 표방하고 있는 LG는 그동안 경험이 많은 임원들이 계열사에 두루 포진돼왔다. 다른 대기업에 비해 임원들의 나이가 많고, 근속연수가 길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구 회장은 LG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서 과거 관행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LG 관계자는 “핵심 이념인 고객 가치 실천을 위해서는 일하는 방식과 조직문화 등도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구 회장의 경영 기조를 전했다.
구 회장이 인재 경영, 혁신 가속을 주문하면서 여성들의 ‘유리 천장’도 낮아지고 있다. 올해 여성 임원이 11명으로, 지난해보다 4명이 늘었다. 김이경 LG 전무, 최연희 LG생활건강 전무, 박애리 지투알 전무 등 3명이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특히 신임 임원 중에는 1980년생의 승진이 시선을 끌었다. 만 34세의 심미진 LG생활건강 상무는 LG생활건강의 역대 최연소 임원으로 기록될 정도로 파격 인사였다. 오휘 마케팅 부문장 임이란 상무도 1981년생이다.
구 회장이 지휘봉을 잡으면서 임원의 연령이 확연히 젊어지고 있다. 2018년 말에도 구 회장은 당시 만 39세였던 송시용 LG전자 소재·생산기술원 제조역량강화담당을 상무로 발탁한 바 있다. 구 회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발탁한 30대 임원이었다.
실용주의와 함께 성과를 중시하고 있는 구 회장은 “LG가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새로운 변화를 위해 사장단이 몸소 ‘주체’가 돼 실행 속도를 한 차원 높여야 한다”며 쇄신을 주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