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의 시작은 언론이다. 신문의 1면은 그 시대를 상징하는 스타만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장소다. 1면의 첫 등장. 스타로 향하는 과정이 시작됐음을 세상에 알리는 메시지다.
'Messi's first day at MARCA'
82년 된 스페인 유력지 '마르카'가 최근 게재한 기사다. 지난 20년 동안 지면에 실린 기사를 분석한 뒤, 세계 최고의 스타가 된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를 마르카가 '처음으로' 소개한 날을 기념했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51년의 역사를 가진 스포츠지 일간스포츠도 특별기획을 준비했다. 한국에서 등장한 '메시의 사례'를 소개한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 동안 '생애 첫 1면'을 장식한 축구 스타 이야기다. 〈편집자 주〉
지소연(29·첼시 레이디스)은 올해 2월 열린 2020 도쿄 올림픽 여자축구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A조 2차전 베트남과 경기에서 후반 38분, 3-0 승리를 확정짓는 쐐기골이자 자신의 A매치 통산 58호골을 터뜨렸다. A매치 58골은 차범근 전 감독이 보유한 역대 남자 대표팀 A매치 최다 득점 기록과 타이로, 2006년 만 15세의 역대 최연소 나이로 A매치에 데뷔한 뒤 123경기 만에 달성한 기록이다.
지소연이 걸어온 길을 증명하는 건 그 스스로 써내려간 성적과 기록들이다. '한국 여자축구의 에이스', '지메시'라는 별명은 괜히 붙은 것이 아니다. 한국 여자축구 최근 10년을 관통하는 이름이 바로 지소연이다.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연령별 대표팀에 발탁되고, A매치 최연소 데뷔 기록까지 세우면서 꾸준히 주목받았던 '지메시' 지소연의 진가가 확연히 드러난 건 2010년 여름이었다. 독일에서 열린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여자월드컵 조별리그 1차전, 태극마크를 달고 나선 지소연은 스위스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존재감을 폭발시켰다. 남녀를 통틀어 한국 축구 역사상 처음으로 FIFA 주관 대회에서 나온 해트트릭 기록이었다. 연령별 대회라곤 해도 월드컵 무대에서 모두를 놀라게 한 해트트릭을 터뜨린 지소연은 이어진 2차전 가나와 경기에서도 멀티골을 터뜨렸다. 지소연의 이 골들은 한국을 조별리그 성적 2승1패, 8강 진출로 이끄는 발판이 됐다.
지소연의 활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멕시코와 8강전에 이어 1-5로 완패한 독일과 4강전에서도 골을 넣었다. 콜롬비아와 치른 3·4위전에서도 지소연의 결승골이 터지며 한국 여자축구는 U-20 여자월드컵을 3위로 마무리했다. 이렇게 2010년은 같은 해 U-17 여자 월드컵 우승과 함께 한국 여자축구 '최고의 해'로 기록됐고, 6경기 8골을 터뜨린 지소연은 대회 실버볼과 실버슈를 수상했다. 이런 활약을 바탕으로 지소연은 2010년 FIFA 발롱도르 여자 부문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일간스포츠 1면에 지소연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 무렵인 2010년 7월 30일이었다.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월드컵 무대에서 맹활약한 지소연은 여러 구단들의 러브콜을 받았는데, 당시 기준으로 독일과 미국 프로축구팀이 지소연 영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기사였다. 국내 실업축구리그인 WK리그 관계자들도 "지소연을 잡을 방법이 없냐"고 애를 태운다는 소식도 함께 전했다. 지소연은 미국 진출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황이었으나, 공교롭게도 미국 여자프로축구의 재정난이 심화되는 등 불안정한 상황이 이어졌다. 결국 지소연은 일본행을 선택했고, 고베 아이낙에서 활약하다 2014년 잉글랜드 여자프로축구 첼시 레이디스로 이적했다. 예정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구단 역대 최고 대우를 받으며 꿈에 그리던 해외 무대에 진출한 지소연은 매 시즌 맹활약을 펼치며 최근 2022년까지 계약을 연장했다.
지소연의 유럽행은 한국 여자축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지소연 이후 조소현(32)이 2018년 노르웨이 아발드네스IL를 거쳐 2019년 지소연과 같은 잉글랜드 여자프로축구 웨스트햄으로 이적하고, 같은 해 이금민(26)이 맨체스터 시티, 장슬기(26)가 스페인 마드리드CFF 유니폼을 입는 등 여자축구선수들의 유럽 이적이 활발해졌다. 결과적으로 지소연을 기점으로, 젊은 선수들이 더 넓은 무대에 적극적으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10년 전 세계 축구계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던 소녀는 어느덧 한국 여자축구의 '큰 언니' 대열에 합류했다. 윤영글(33·한국수력원자력) 심서연(31·인천 현대제철) 김혜리(30·인천 현대제철) 등 몇몇을 제외하면 '최고참' 반열에 든다. 자신을 보고 대표팀의 꿈을 키운 후배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는 지소연은 또 한 번, 한국 여자축구의 새 역사를 쓰기 위해 준비 중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연기된 2020 도쿄 올림픽 플레이오프가 바로 그 무대다. 플레이오프에서 골을 넣으면 차범근 전 감독을 넘어 A매치 최다 득점 기록을 새로 쓰게 된다. 그러나 지소연은 자신의 기록보다 사상 첫 올림픽 본선 진출이라는 더 큰 목표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올림픽 나갈 때까지 절대 은퇴하지 않겠다"며 간절함을 내비친 지소연이 그 꿈을 이룰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