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발발 이후 폐업으로 인한 해고 사례가 늘어나면서 재택이 가능한 비대면 직업이 각광받고 있다. 유튜버, 디자이너, 에디터 등 프리랜서 직군이 대표적인 사례다.
패션 포토그래퍼로 성공해 베이징과 뉴욕을 오가며 활동하고 있는 린하이인(林海音)도 여기에 해당한다. 현재 린하이인은 주로 패션지 화보를 촬영하지만,사진 작가가 되기로 마음 먹은 동기는 선한 호기심에서 시작됐다.
생애 첫번째 ‘종양 사진’ 촬영이 인생을 바꾸다
린하이인은 푸저우(福州) 출신이다. 푸단대학(复旦大学)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뒤, 콜롬비아 대학에서 경제/교육 전공 석사과정을 밟기 위해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계획대로라면 대학원 졸업 후 경제 금융 관련 종사자가 됐어야 하지만, 예기치 못한 경험으로 인해 사진 작가라는 전혀 딴판의 직업을 택하게 된다.
때는 2012년, 콜롬비아 대학에서 공부하던 린하이인은 친구와 함께 중국 시안(安做)으로 사회 조사를 나갔다가 종양으로 얼굴이 변형된 리훙팡(李红芳)을 만난다. 당시 리훙팡은 돈이 없어 치료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암세포가 커질 대로 커져버렸고, 거대한 종양 7개로 얼굴이 뒤덮여 있었다. 리훙팡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한 린하이인은 사진을 찍어 모금 활동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환자 리훙팡과 함께 먹고 자고 하며 수백장의 사진을 찍었고, 이를 정리해 다큐멘터리 사진집 ‘7개의 종양(七个肿瘤)’을 만들었다. 이 작품집은 인터넷 업로드 후 수많은 네티즌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결국 리훙장은 현지 정부의 보조금과 민간 기금의 지원을 받게 됐다. 성금 모금의 일등공신인 사진집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당시 린하이인은 대학원 졸업 1년을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 촬영에 보람을 느낀 그녀는 이후 사진 촬영에 몰두한다. 졸업 즈음에는 촬영 수입으로 뉴욕에서의 생활비를 충당할 만큼 일이 늘었다. ‘7개의 종양’ 사진집으로 사진의 힘을 경험한 린하이인은 진로를 바꿔 전업 사진작가를 하기로 결심한다.
“전 한번도 이 선택을 후회한 적 없어요. 정말 기쁜 마음으로 이 직업을 택했죠. 자유롭게 제 삶을 꾸려나갈 수 있게 해 준 일이니까요. 다양한 장소에 가서 풍경을 찍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저에게 사진 작가는 매우 신선하고 재미있는 직업이에요.”
매일 18시간씩 사진만 찍은 열정이 이룬 성취
시작이 늦었고, 경험도 적었지만 린하이인에게는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2016년, 린하이인은 장만위(张曼玉 장만옥), 왕리훙(王力宏), 야오천(姚晨), 둥리야(佟丽娅), 류원(刘雯) 등 중국의 내로라하는 스타들과 함께 작업을 했다. 사진 일에 뛰어든 지 고작 4년밖에 되지 않은 때였다. 보그(VOGUE), 엘르(ELLE) 등 글로벌 패션잡지에 화보를 발표했으며, 2016 영국 빅 벤 어워드(Big Ben Award) ‘글로벌 10대 걸출한 청년’에 선정되는 영광도 얻었다.
어느 정도 행운이 따르기도 했지만, 이 같은 성과 뒤에는 린하이인의 선한 마음과 피땀눈물, 그리고 열정이 숨어 있다.
처음 사진을 배울 때, 린하이인은 집착하다시피 '사진'이라는 세계에 빠져들었다. 매일 거의 18시간 동안 사진을 찍고 보정을 했다. 업계에서 어느정도 인지도를 쌓은 지금도 여전히 사진을 공부한다.
팔로워들과의 소통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사진을 쉽고 효과적으로 찍을 수 있는지 그 방법에 대해 자주 공유한다.
현재 린하이인은 뉴욕과 베이징 두 곳에 작업실을 둔 사진작가로 성장했다. 웨이보 팔로워는 135만 명, 터우탸오 계정 팔로워는 24만 명이다.
생애 첫 사진 작품이 암 환자였기 때문일까. 린하이린은 이후로도 환자들의 병상 일기를 기록해왔다. 매년 중화샤오녠(中华少年) 자선아동기금회 9958아동 긴급구호센터와 함께 도움이 필요한 아동의 가족을 촬영, 이들을 위한 모금을 돕는다. 린하이린이 운영하는 터우탸오(头条) 계정에도 쓰촨성 거주 16세 활막육종 환자에 대한 취재 기록이 남아있다.
중국 네티즌들은 그녀를 "마음이 따뜻한 사진 작가"라고 칭한다. "내가 온종일 폰만 갖고 놀 때 18시간씩 사진 공부를 했구나"라는 아쉬움 섞인 댓글은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천에 옮기는 사람은 적다"는 말을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